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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는 두 종류의 거울이 있다.
하나는 반신용 거울인데 빛이 잘 드는 쪽 벽에 걸려 있다. 다른 하나는 화장대에 걸린 거울인데 적당히 그늘이 지는 곳에 세워져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두 거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볼 때 마다 이 두 거울은 전혀 판이한 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 거울 모두 서로 다른 재질이나 성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 거울은 그냥 거울일 따름이다. 그리고 내 모습을 비춰줄 뿐인데도 두 거울에는 각기 다른 모습이 들어 있다.
나는 늘 어떤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해 거울 사이를 맴돌이 하며 이리저리 생각을 굴린다. 전혀 다른 내 모습을 보며 저울질 한다.
어느 쪽이 진짜 내 모습일까.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더 많이 보여지는 걸까. 궁금증을 버리지 못한 채 거울 앞에서 노심초사한다. 거울 앞에만 서면 혼란의 굴렁쇠가 굴러가는 것이다.
햇빛이 잘 들어 늘 환한 벽걸이 거울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더군다나 이 거울 앞에 서면 내가 가진 결점은 보따리째 풀어 놓아야 한다. 못난 여자는 거울만 나무란다고 처음에는 이 거울에 익숙하지 않아서 보는 걸 꺼려했었다. 아니 거울 보기가 겁이 났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리라. 거울을 볼 때마다 풀이 죽고 짜증이 났었다.
이 거울은 눈 주위의 잔주름과 잡티, 기미, 일그러져가는 얼굴 모습까지 숨김없이 지적해낸다. 거의 온 종일 빛을 담고 있는 이 거울은 얄미울 정도로 한결같이 나의 약점만 솎아낸다. 조금도 사정을 봐준다거나 하는 덧두리가 없다.
오후쯤 되면 피곤해서 충혈된 눈, 화장이 곱게 먹지 않아 허옇게 일어난 분, 우울한 일상의 훈장같은 뾰루지까지 내 얼굴 위에서 아우성친다.
차라리 화장으로 나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주면 그래도 순수해 보이지 않을까하여 맨얼굴을 들이대면 더 가관이다. 창백한 안색에 성깔처럼 붉게 터진 실핏줄 등, 영락없는 서리병아리다. 거르지 않은 내 빤한 삶이 거울에 담겨 있어 거울을 대할 때마다 나를 작은 분노 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벽걸이 거울은 정직한 충고자다. 숨길 수 없는, 나일 수 밖에 없는 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 주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내게 따끔한 지적을 마다하지 않는 친구같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거울 속의 나를 애써 부정하려 한다. 저 여인은 내가 아냐. 각도가 맞지 않아 잘못 비춰진 것뿐이지. 이렇게 마음속으로 우김질을 한다. 아직도 부룩 송아지, 생나무 같던 내 스무 살 무렵의 젊음을 포기하지 못해 초라하고 볼품 없어지는 나를 지워버리려는 듯 애꿎은 거울만 홀치개질을 해댄다.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오갈 데 없이 사그랑주머니인 내 삶이 엿보여 가슴 속에서 울화가 일렁인다. 이토록 내 속을 휘젓고 마는 흑싸리 같은 거울인데도 나는 선뜻 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비록 내가 마음을 약간 상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에 대해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를 원하고 있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화장대에 걸려 있는 큰 거울은 요술 주머니 같다.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치료사다. 화장을 하느라 얼굴을 두드리고 요리조리 움직이며 들여다보면 10년은 젊어보이는 내가 그 속에 있다. 눈가의 잔주름이나 처진 볼 등은 간 곳이 없고 화장을 곱게 한 여인이 거울 속에서 생글거리고 있다. 게다가 형광들 불빛이 조명으로 비춰주면 그늘진 곳 없는 얼굴이 화사하게 살아난다. 꿈 많던 20대, 잃었다고 생각했던 젊음이 거울 안에서 손짓하고 있을 뿐이다. 화장대 거울은 어찌 보면 내가 원하는 달콤한 거짓말로 비위를 맞춰주고 가식에 넌지시 동조를 해 주는 곰살맞은 친구같다.
그래서 화장대 거울은 언제 봐도 신바람이 난다. 화장대 앞에서는 나는 나도 모르게 튀길 힘을 받는다. 이 거울은 삶에 대해 열려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장대 거울은 가뭄에 단비처럼, 가슴이 갈라진 내게 촉촉한 기운을 준다. 화장대 거울은 나의 약점을 잘 가려주며 애채같은 젊음과 순수함, 기백만을 재주껏 돋보이게 한다.
화장대 거울은 내게는 위대한 격려자요, 삶에 대한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찾게 해주는 트레이너다.
날마다 나는 이 두 거울을 둥글대 삼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려 나름대로 애써 본다.
무릇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구나 이런 양면의 거울을 갖고 있다고 본다. 애오라지 아름답고 좋은 면만을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관계에서나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이렇게 서로를 적절히 조절해 주는 두 거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람에 이는 물결처럼 세상사에 흔들리고 부대끼면서 우리는 서로를 비춰주는 두 개의 물거울을 축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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