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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봄밤의 꿈 / 이부림

부흐고비 2022. 2. 17. 09:03

자정이 되려면 조금 이른 시각. 대로변은 실내조명보다 밝았고 사람과 차들은 깜박이는 네온만큼이나 바빠지고 있었다. 주위의 불빛에 익숙해지자 갈 곳이 막막해졌다. ‘어디로 간다?’ 어렸을 때처럼 손바닥에 침을 뱉어 손가락으로 탁 쳐서 침이 튀는 방향으로 갈까.

어느 봄 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개비가 가볍게 날리던 촉촉한 하늘에 가로수는 팔을 벌리고 서서 막 피어난 어린잎들에게 단비를 마시게 하고 있었다.

‘가정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누구인가.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치르고 함께 산다.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낳아 가족을 이룬다. 수십억의 인구 중 천륜의 관계라는 부모와 자식. 그 가운데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여자는 가정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연기를 해야 명배우가 될 수 있을까.’

그냥 큰길을 따라 걷는다. 한 집 두 집 가게문이 닫힌다. 빗발이 굵어지는지 머리에 물방울이 맺힌다. 동네 뒤 쪽. 모르는 길이라 불안하지만 한참을 갔다. 인적이 뜸한 차도 옆에서 ‘타악탁’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따뜻한 기운이 몸을 당긴다. 판자 조각이며 각목 베니어판 같은 것들을 태우고 있었다. 노란 불길이 모아져서 짙은 회색빛 하늘로 오르다가 사라진다.

나를 옥죄고 있는 좀스런 감정들도 저렇게 얼기설기 쌓아 놓고 소올솔 태워 불꽃으로 날려 버리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 건데… 제대로 타지 않는다고 쑤석거려 검은 연기만 올렸더니 타다 남은 가슴에는 그을음만 남을 수밖에.

불길의 끝을 본다. 봄비에 가려진 무한대의 공간이다.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왜소함을 느낀다. 인간 이상의 힘을 가진 초능력자를 생각하게 한다. 이 밤에 이 길을 가리라 미리 알았을까. 누군가 나를 위해 쉴 자리를 마련해 주었구나.

‘인륜지대사로 맺어진 부부는 서로가 결혼 전의 사고방식이나 생활태도에서 벗어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인가.’

굵어진 빗줄기에 남은 잿불마저 사그라져 버리고 불가에 쪼그리고 앉았던 다리가 저리면서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한다. 무릎을 덮은 청치마와 블라우스 차림으로 4월 중순의 밤비가 사뭇 춥기까지 했다. 어디라도 들어가 비를 피하고 몸을 추슬러야 할 텐데… 간판의 화살표를 따라 골목으로 접어 여인숙 문을 들어섰다. 비 맞은 여자를 훑어본다.

“저어, 방 있어요? 방값은 내일 드릴게요.”

미리 셈을 치러야 잠을 재워준다는 숙박업소의 기본도 모르는, 지갑도 챙기지 않고 무작정 문을 나선 지혜롭지 못한 여자.

자정도 훨씬 지났고 봄비는 낙화를 겨냥한 듯 빠르게 내리고 있었다. 골목은 흑백 영화의 을씨년스런 장면처럼 무섭기까지 했다. 커다란 대문 처마 밑에 섰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빗줄기가 파랗게 일렁인다. 앉고 싶다. 어디나 물기가 있어 엉덩이를 붙일 곳이 없다.

‘모양이 다른 두 개의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고 굴리면 서로 부딪쳐 깎인다. 와각다각 소리가 나고 닳고 깎이는 동안 가루도 날고 스파크도 일고, 모나지 않은 자갈이 되어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겠지.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고 한 집에서 생활할 때 서로 다른 개성 때문에 생기는 마찰음을 피할 수는 없다. 하물며 겨우 맞닿기 시작한 자갈 사이에 더 큰 돌멩이가 섞여 있다면 주머니 속은 얼마나 요란하겠는가. 누가 먼저 다듬어지느냐도 중요하지만 서로 맞비벼 빨리 어우러지는 것만이 상책이겠다.’

마땅한 곳을 찾아 기웃거린다. 기둥과 천장만 보이는 시꺼먼 집이 있다. 발더듬으로 들어섰다. 여기 앉아 이 밤을 새우리라. 발밑에 판자가 삐걱거린다. 소리를 피해 신발을 미는데 “누구얏!” 하는 천둥 같은 소리와 내치는 문소리. 외마디 소리가 나올 뻔했다. ‘목소리를 들키면 큰일이지.’ 손으로 입을 막고 돌아서서 뛰었다. 공사장을 지키는 인부가 자다가 발자국 소리를 들었던 게지.

얼마나 달렸을까. 또 비 내리는 길 위에 서 있다. 이 시간에 왜 이 길을 걷고 있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목줄기를 타고 흐른다. ‘위를 향해 걷자.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울면서 걷는 혼자만의 봄밤’이라는 일본 노래를 무심히 부르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눈물이 흐르지 않게 위를 보고 걷지 않아도 되는 이 밤.

취객이 손짓한다. 뒷모습만으로 제 또래나 되는 줄 알고 쫓아온다. 새벽은 언제 오려나.

파출소가 있다. 통행금지 시절이라면 지금쯤 이런 집 신세를 지고 있을 텐데 하필이면 해제되어 갈 곳 없이 거리를 헤매게 하다니. 이따금 헤드라이트가 빈 거리를 달리고 있다.

‘밤길을 두 대의 차가 마주 보고 달릴 때 양쪽에서 계속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으면 서로 눈이 부셔 앞을 헤아리기 어렵다. 함께 라이트의 조명을 낮추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상대편이 그대로 마주올 때는 한쪽이라도 불을 줄이고 비켜가야 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화가 났을 때 두 사람이 쌍심지를 돋우면 불꽃만 인다. 눈을 반쯤 감고 상대방의 눈길을 조금 외면한 채 숨을 깊이 들여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어 보자.’

파출소 문을 밀었다.

‘여기 있게 해 주세요. 날만 새면 나갈게요“ 중년 여인의 행색이 궁금했는지 졸리던 차에 흥밋거리가 굴러 왔다는 셈인가. 자꾸 말을 시킨다. 순간적인 감정의 불꽃이 제풀에 꺼질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온몸의 열기를 빗방울로 식히며 돌아다니던 내 모습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할까.

구석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앉기만 하면 살 것 같았는데 이제 앉으니 눕고 싶다. 경찰아저씨의 염려를 귀에 담는 척하는데 눈이 감긴다. 옷은 젖어 으슬으슬 춥다. 이런 상황에서도 졸음이 오니 ‘서면 뛰고 앉으면 자는 아이’라고 하시던 친정어머니 말씀이 정확한 표현이었구나.

오늘은 초등학생 딸아이가 소풍가는 날이다. 비몽사몽간에 도시락이 없다고 울상 짓는 아이 얼굴이 보인다. 새벽이 오는지 창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젖은 옷이 체온으로 마르는 동안 내내 몸은 식었고 마음은 추웠다. 비는 개어 있었다.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가족이 모여 사는 가정. 며느리와 아내, 엄마의 역할 중 어느것이 우선인가. 선택의 여지없이 나를 엄마로 태어난 아이들. 그들에게 나는 온 세상이요 애들의 생활자체가 아니냐. 출산과 육아가 결혼생활의 전부인가를 따질 때인가. 가로수처럼 두 팔을 벌려 애들을 보듬고 서서 젖물 같은 봄비를 받아 먹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집으로 가는 길을 어림으로 더듬었다. 큰길이나 골목이나 거기가 거기였는데 어둠 속에서는 어쩌면 그리도 낯설었는지.

봄비에 젖은 하룻밤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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