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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별 / 한복용

부흐고비 2022. 2. 17. 09:11

별은 금방이라도 내 얼굴 위에 쏟아질 기세였다. 하늘은 심청색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서강西江이 흐르고, 그 강이 빛을 쏘아 올려 하늘에 별을 띄워놓은 것 같았다. 나는 펜션 잔디밭 돌의자에 앉아 하늘과 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어줄 것만 같은 밤이었다.

문학회 회원들과 이틀 일정 잡아 가을소풍을 왔다. 영월이다. 어둠이 내릴 즈음부터 마신 술이 거나해져 밖으로 나왔다. 그때까지도 밤이 깊었는지 별이 떴는지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술에 취해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운전할 사람을 불러 펜션을 벗어날 궁리를 하였다. 술이 더 필요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 주위는 적막으로 가득했다. 가끔 걸음을 옮기는 바람의 숨소리만 짐작되었다. 이제 남은 건 나와 하늘과 별, 그리고 캄캄한 사위, 이따금 먼 터널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바퀴의 마찰음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떠 있는 별은 묵묵히 나를 향해 눈만 반짝거렸다. 나는 별과 눈 맞춤하며 잔디마당을 서성거렸다. 더 많은 별을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아직은 10월. 서너 밤을 더 보내야 11월이다.

10월의 늦은 밤은 생각이 깊어지게 한다. 없던 여유도 생기게 한다. 나는 그것을 붙잡고 싶어 오랫동안 마당을 서성였다. 폭신한 잔디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돌의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 서강西江이 흐르고 여전히 터널을 벗어나는 차량의 질주는 힘차다. 잠을 잊은 도로, 새벽으로 가는 시간은 하늘을 더욱 밝게 물들였다. 언제 왔는지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눈을 비비며 내 옆으로 와 앉았다. 그녀는 창문으로 스며드는 별빛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은 더욱 밝은 빛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아가씨의 어깨 위에 내 지친 머리를 가만히 기댔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시간, 신비로운 기운이 우리 주변을 감쌌다. 여전히 별은 반짝이고, 강물은 더욱 그 빛을 끌어내리고, 밤나무 숲에서는 단내를 흘리며 나뭇잎이 구른다. 밤夜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무서울 수 있겠으나 스테파네트 아가씨나 나는 다행히도 밤을 좋아했다. 특히 길을 잃어 깊은 산을 헤맸던 경험이 있었던 우리는 별이 많은 밤을 두근거리며 즐길 줄 알았다.

아가씨는 오래 전 만났던 목동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얼마 전 알게 된 길동무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면 우리는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아가씨와 나는 그 별똥별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누군가의 영혼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가 그랬어. 별 중에 가장 아름다운 별은 목동의 별이라고. 새벽녘에 양떼들을 몰러 나올 때나 저녁나절 양떼들을 몰고 들어올 때도 그 별은 머리 위에서 반짝인대나. 마그론느라 불리는 그 별은 피에르 드 프로방스(토성)의 뒤를 쫓아가 7년마다 한 번씩 그와 결혼을 한다지?”

“별들도 결혼을 해?

나는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목동에게 그랬던 것처럼 물었다.

“그렇대. 그런데 뒤에 이어진 이야기를 나는 듣지 못했어. 너무 졸려서 곧 잠이 들었거든.”

나는 목동별 이야기보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과, 잠시 후 온순한 양떼처럼 새벽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설렜다.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는 아가씨의 손길을 바람결인 듯 느끼며 그녀의 어깨에 다시 머리를 기댔다. 꿈인 듯 꿈이 아닌 시간이었다.

한복용 님은 《에세이스트》 등단. 수필집 『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 『지중해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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