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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대물림 / 이부림

부흐고비 2022. 2. 17. 13:45

시어머님이 쓰시던 옷장 문을 열고 생전에 즐겨 입으시던 옷 주에서 흰색 여름옷 한 벌을 꺼내입고 거울을 본다.

요즘 유행하는 팔부 소매에 짧은 웃옷이 마음에 든다. 발목만 드러낸 주름치마도 아래쪽에 밤 뼘 만짓 넓이로 레이스를 빙 둘러 시원하게 보인다. 내가 새댁이었을 때 시어머님이 당신의 친정어머니 상복으로 맞춰 입으신 옷이다.

몸집이 작으셨지만 젖가슴 바로 아래까지 올려 입으셨던 치마인지라 내 허리에도 잘 맞는다. 옷 치수는 나이대로 입는다더니 보기보다 큰 옷이었다. 어느 한 곳 손볼 데 없이 넉넉하게 어울려 오래 입어왔던 옷인 양 편안하다.

시어머님은 옷을 잘 입으셨다. 옷을 보는 안목이 대단하셔서 옷가게에 들어서서 한 번만 둘러보시면 썩 괜찮은 옷을 단번에 골라내셨다. 사다 드리는 놋은 웬만해서는 눈에 차지않아 맞춰 입거나 직접 사 입으셨는데 바느질 솜씨가 좋으셨기 때문인지 모른다.

물건을 고를 줄 모르는 나는 언제나 내 옷보다 어머님 옷이 더 좋아보였다. 깔끔한 성품만큼이나 옷도 정갈하게 입으셔서 한철에 한두 번 입은 옷도 반드시 세탁하거나 클리닝을 해서 두었다. 몇 해 동안 거동이 불편하셔서 거의 외출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옷마다 클리닝 딱지가 붙어 있다.

좋은 감으로 골라 바느질을 꼼꼼이 살핀 옷들을 깨끗이 간수해 두시기 때문에 몇십 년이 지난 놋도 새옷처럼 말끔하다.

집안에서만 지내시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장롱서랍을 열고 옷가지를 만지셨다. 옷을 찾으시는 것인지 다시 정리하시는 건지 모르지만 보따리 보따리 챙겨 두신 옷들을 풀어 보시면서 옷과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며 무료함을 달래시는 것 같았다.

버리지도, 남 주지도 않고 구석구석 넣어둔 옷을 모두 꺼내니 방 하나 가득했다. 생전에 옷 탐이 그리도 많으시더니 이 많은 옷을 두고 어떻게 가셨을까. 올해 같은 더운 여름에 미수(米壽)를 앞두고 돌아가셨으니.

요즘에는 환자용 기저귀가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면 걸레감이 많아야 한다고 젊어서 입으셨던 무명 속곳이며 적삼이랑 헤져서 못 입을 것들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넣어두셨다.

딸, 며느리, 친척들이 가져다 입을 것들을 골라내고 장례 후 선산에서 태울 옷과 동네부녀회에서 설치한 의류함에 넣을 옷을 가려내는 작업도 큰 일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타인들이 마음대로 정리하는 무엄한 절차였음으로.

30년을 동고동락하면서 고부간에 겉옷을 바꿔입거나 물려준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속옷은 가끔 바뀐 적이 있었다.

모양이 같은 흰색 속옷이 바뀌었을 때마다 죄송해하는 며느리에게 “시집간 딸하고는 아래 속옷을 바꿔 입지 않는 법이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같은 성(姓)받이니까 괜찮은 법이다”고 하셨다.

당신 임종 후 바로 입혀 달라는 새옷과 수의를 손수 장만해 놓으시면서도 며느리가 당신의 옷을 당신의 상복으로 입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을 텐데 무례가 되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도리어 당신의 옷을 버리지 않고 잘 입혀 주는 자손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복이라도 내려 주시지 않을는지.

우리는 체격이나 성격 취향가지도 너무나 달랐었다. 며느리는 개켜 넣어두었던 옷도 두어 번 털어서 그냥 입고 나가는데 어른은 동네 마실만 다녀와도 언제나 옷을 벗어 문 밖에서 몇 번이고 털으셨다.

정갈하고 솜씨 좋은 시어머니와 매사에 털털한 며느리인데도 남들이 친정어머니와 딸 사이냐고 물을 만큼 외모가 비슷했기 때문일까. 고인의 옷을 입고 있으니 거울 속에 시어머님이 금방 살아 돌아오신 듯하다. 가족이나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지만 모습만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일상이 나의 생활과 겹쳐서 당신의 인생이 내 안에 시나브로 스며들어 그 조왕(竈王)에 그 며느리를 낳으신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긴 시간을 한 집에서 보낸 분이 시어머니시다. 모녀관계는 허물없는 사이로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하기가 쉬워 늘그막에 한 집에서 오순도순 지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고부간은 법도가 있어 조심하기 때문에 도리어 무난하게 산다던가. 고부 사이에 남다른 정이 있는 줄 몰랐는데 시어머니 흉 보면서 배운다더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면서 장단점을 그대로 닮아왔나 보다.

내 옷만큼이나 눈에 익은 옷들. 두고 가신 놋 속에 자손들에 대한 사랑을 고스란히 남겨놓고 가셨는데 시어머니의 모습으로 서 있는 내 가슴에는 회한만이 가득하다. 요도를 하려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만 있었으면 무슨 소용인가.

옷이 사람을 만든다. 내가 입은 시어머님의 옷은 상복이 아니라 장손며느리로서 집안의 어른이 되는 예복이었다. 나는 이제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시던 어른의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 결혼한 아래 줄곧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인지 주부다운 주인의식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내 집의 명실상부한 안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그런데 위로만 바라보이던 어른의 자리가 버거워지고 순리에 따라 어른의 나이에 와있는 내가 어설프고 한심스럽다. 물려 입은 옷값을 제대로 해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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