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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친구 몇이 자신들을 '지공거사'라 부른다 했다. '지하철 공짜로 타는 백수 남자'란 뜻이다. 무임승차가 겸연쩍은 어떤 노인이 만들어 낸 것 같다. 우습기도 하지만 조금 서글프기도 한 별명이다. 무임승차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 있어서 '건달'이라 하지 않고 '거사'라 한 것 같다.

어쨌든 나도 지공거사가 된 지 15년이 넘었다. 70살까지는 공짜 표 받기가 쑥스러워 돈을 내고 타는 일이 많았지만, 경로카드가 나온 후부터는 후안무치가 되고 말았다. 10여 년이나 공짜로 타다 보니 이런저런 버릇도 생기고 나름대로 행동수칙도 갖게 되었다.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두 가지 지하철 승차수칙을 지키기로 했다. 경로석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다는 것이다.

첫째 수칙은 순수 염치수칙이다. 한때 대중매체에 좀 등장한 덕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내가 일반석 쪽에 가면 십중팔구는 누군가 자리를 양보할 것 같다. 아무리 버릇없는 젊은이라도 나같이 몸이 가냘프고 머리는 허연 영감이 코앞에 서 있으면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종일 힘들게 일한 사람들이 조금 쉬는 기회까지 백수건달이 빼앗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고, 요금도 내지 않는 주제에 요금 내는 사람들의 자리까지 차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경로석은 만원이고 일반석은 텅텅 비어 있어도 그 쪽에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앉지 않고 서 있겠다는 둘째 수칙은 얼핏 보면 첫째 못지않게 착하고 신사적인 것 같다. 다 같은 노인이지만 다른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니 얼마나 멋진가? 그러나 거기에는 이기적인 요소도 좀 들어있다. 서 있으면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이 비결은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믿을만한 의학자가 알려 준 것이다. 연세의료원 전 원장이며 한국금연운동협희회 회장인 김일순 박사가 자신이 그렇게 한다면서 나에게 권고한 것이다. 그는 한 술 더 떠서 웬만하면 아무것도 잡지 말라 했다. 노인들이 잃기 쉬운 균형감각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했다. 나와 동갑인데도 나보다 더 건강하고 젊어 보이므로 그의 충고는 그대로 믿기로 했다.

그런데 건강에도 좋고 신사적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둘째 수직은 잘 못 지킨다. 대한민국 국회가 국회법 지키는 것보다 준법 성적이 더 나쁘다. 자리가 나면 거의 대부분 앉고 마는 것이다. 처음 몇 달은 일부러 경로석이 만원인 칸을 골라 타기까지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가장 큰 유혹은 말할 것도 없이 내가 받는 유혹이다. 서 있기보다 앉는 것이 더 편하고, 특히 노인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별난 사람'으로 비치기가 싫은 것이다. 바로 코앞에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80이 넘은 노인이 앉지 않고 서 있는 것은 인지상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가 쉽고, '다른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는 착한 노인'이란 칭찬보다는 "좀 착한 척하는 것 아냐?" 하며 위선자로 욕할 것 같아서다.

거기다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 다른 노인들이 내가 서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리가 나면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 어떤 때는 심지어 등을 약간 밀거나 옷깃을 당겨서라도 기어코 앉히는 것이다. 서 있는 내가 가엾기도 하지만 내가 서 있는 것이 그들에게 좀 불편한 것 같다.

언젠가 나는 <지키지도 않는 법, 왜 만드나?>란 제목으로 신문 칼럼을 쓴 일이 있다. 나의 두 번째 지하철 승차수칙이 바로 그런 신세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완전히 버리지 않았는데 몇 가지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하철을 탈 때 빈 자리가 있을까 하고 서두르지 않거나 자리가 있는가 두리번거리지 않을 만큼 여유를 주고, 또 하나는 나보다 약해 보이는 노인에게 쉽게 자리를 양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번은 경로석에 두 자리가 비어 있기에 구석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다음 역에서 나보다 몸집이 두 배쯤 되는 젊은 노인 하나가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어쩔 수 없이 양쪽에 앉은 두 사람은 압박을 받았고 몸이 조여서 좀 불편했다. 그런데 다음 역에서 어떤 안노인 한 분이 탔는데 몸이 작을 뿐 아니라 매우 약해서 어떻게 역에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의심할 정도였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했다. 둘째 수칙을 지킨 것이다. 그런데 그때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내가 일어서자마자 그 뚱보 노인도 벌떡 일어난 것이다. 자신이 양보할 기회를 내가 낚아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도로 앉으라 했다. 괜찮다고 사양했으나 그는 강원하다시피 기어코 나를 앉혔다. 물론 몸집이 작은 노인들끼리 앉았으니 자리가 넉넉해서 한결 편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노인 하나가 한 마디 거들었다. "거, 서로들 양보하시는 거 보기가 좋네요!" 다른 노인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다.

비록 잘 지키지는 못하지만 두 번째 수칙도 그대로 두길 잘한 것 같다.



손봉호 님은 고신대 석좌교수. 경북 포항 출생.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대학원 신학 석사,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전국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철학회 회장, 동덕여대 총장 역임. 주요 저서 『고통 받는 인간』, 『잠깐 쉬었다가』, 『오늘을 위한 철학』, 『생각을 담아 세상을 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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