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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오후의 독서 / 염귀순

부흐고비 2022. 2. 22. 08:58

적막의 한쪽을 깨며 신호가 왔다. 소통 부재의 장막을 걷어 올리라는 듯 애타게 부르며 숨넘어가는 '카톡카톡'. 그 성마른 기계음에 이끌린 여자가 더듬더듬, 스마트폰 창을 연다. 색깔 찬연한 영상이 깔리면서 세상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금방 풀어놓은 화제로 찧고 까불고 와그르르 끓어 넘친다. 소리에도 열기가 있다. 잠시 듣고 보다가 뒤 베란다 보조주방에 얹힌 '노래하는 주전자'가 떠올랐다.

"그래! 뭐든 펄펄 끓여보자."

청청한 오월에, 하필이면 감기에 사로잡힌 일주일째다. 몸속을 휘돌아 나오는 바람이 바깥 냉기보다 더으슬으슬한 만큼 마음도 아슬아슬한 지대에 있다. 누가 다정한 온도로 말을 건다면 눌러둔 감정들이 틈새 빗물 새듯 줄줄 흘러나올 것 같고, 또 누군가 신경 줄을 긁으면 다시는 그 사람 안 볼 것도 같은 극단적인 심사가 교차한다. 무한 고립의 늪과 대책 없는 허虛에 빠져 내내 허우적거린다. 한기 때문이다. 몸 어디쯤 뙤리를 튼 그것은 감기바이러스에 침범당하기 훨씬 전부터 감기를 치러왔다.

통유리창 안이 부산해진다. 오랫동안 정물인 양 앉혀두었던 주전자에 물과 대추를 가득 채워 달이는 중이다. 파랗게 일어난 불꽃이 춤사위를 펼치며 으르고 구슬리자 환희의 가락을 뽑는 주전자. 삐이~ 삐~삐이익~ 드디어 물이 끓는다며, 용케 제 기능을 살려낸다. 덤덤하던 표정과는 달리 속으론 열정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있었나 보다. 아니, 활활 타오르는 불꽃 위에서 열렬했던 삶의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을지도 모른다. 주전자의 노랫가락이 고조된다. 완숙의 음절을 향해 절절해지기까지 한다.

살아있다는 건 뜨거움일까. 산다는 건 누구에 의해, 무엇으로 말미암아 뜨거워지는 것일까.

넉넉한 몸통에 엉덩이가 팡파짐한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사다놓고 엄마는 날마다 보리차를 끓이셨다. 잘 덖은 보리로 식구들이 마실 물을 우러내며 연하게 웃음 지으신 어머니. 쉽사리 녹슬거나 찌그러지지 않으며 말간 빛과 독특한 소리기능을 가진 주전자를 '노래하는 주전자'라고 흡족해하신 분. 세상 가장 푸근한 엄마의 치마폭에서 내 기운은 상승하였고, 커다란 주전자에서 끓여낸 보리차로 혹한의 저녁도 구수했다. 어버이는 자식에게 온기의 근원지였으며 보호 창이었다.

오늘은 뜨거운 대추차 한잔을 들고 거실 창 앞에 다가선다. 창밖으로 보이는 낯익은 아파트 광장이 어느새 초록 화폭이다. 며칠 계절을 잊은 찬바람에 움츠렸던 나무들이 활짝 기지개를 켰다. 왕성하게 번지는 잎들의 푸른 기세에 오래된 상가 간판들이 주눅 든 모양새지만, 그래도 서로 봐달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물고 있는 게 기특하다. 금샘사우나, 국제어학당, 참 고등수학, 늘사랑 가정의학과 등. 층을 이룬 간판들을 일별하고 정원 가득해진 동백나무 모과나무 향나무 홍가시나무 이파리들을 대추차에 타서 후후 마신다. 아, 뜨겁고 시원한 맛. 뜨거움과 시원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맛. 오늘 특제 감기약의 효험을 기대하며 한기와 열기 사이에 내가 서있다.

날이면 크고 작은 창들을 여닫는 일. 창 안팎에서 하루를 극복하고 열광하고 열망하는 일. 그게 냉랭한 세상을 몸으로 데우며 사는 일과다. 창을 열고 닫고 드나들며 수많은 오늘이 갔다. 청춘이 지나가고 절정의 날이 넘어갔다. 한 생애가 간다. 창이 있어 안에서도 세상과 통할 수 있으며 창 안에서 외려 추위를 타기도 한다.

창 안에 있으되 자신을 벗어나 되비쳐본다. 삶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는 한, 창은 단절 가운데서도 소통으로 존재한다. 노래하는 주전자가 온기를 내뿜는 날의 창은 생기가 흐르는 통로다. 꽉 막힌 벽에 숨통을 틔워 햇볕과 바람을 통과시킬 줄 알며 창 너머 존재에게 다가가는 문이다. 무기력한 육신도 때로 시선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꼿꼿해지는 기운을 느낀다. 만약 창을 굳게 닫아건다면, 흐름이 끊기고 교류가 차단된 벽일 테다. 일순간에 문도 되고 벽도 되는 창 아닌가. 창의 아이러니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함께 지켜본다.

가까이서 베란다 창들이 소곤거린다. 창은 위치가 어디든 모양이 어떻든 소통을 전제로 한다며, '열고 닫음'은 세상이 달라지는 거라며 은근히 일러준다. 창도 환한 영상으로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고 싶을 게다.

투명할수록 빛이 잘 통과하지만 단절과 소통의 틈바구니를 오르내리는 창이 사람 몸에도 있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명암이 교차하는 마음, 수없이 열고 닫히는 눈은 따로따로이면서 함께인 창이다. 마음이 어둡거나 흐리면 시야도 그늘지고 막막하며, 사는 일조차 시들해버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난관에서 마음의 창부터 닦는 것도 삶의 빛과 열기熱氣를 잃지 않으려는 어기찬 다짐 아닐까. 삶이란 시리고 껌껌한 것들을 따뜻하게 덥히고 환하게 밝히며 서로 소통하는 일이겠다.

어느 날 홀연히 내려놓은 어버이의 싸늘한 창 앞에선 가슴 저 깊은 쪽이 먹먹했다. 파란만장한 세상에 오직 몸 하나로 여섯의 자식을 뼈아프게 끌어안아야 했던 일평생. 휘어진 삶의 끝에서나마 한 잔 풍요도 허락되지 않았음인지, 자식들 키워놓자 병마에 잡힌 두 분이 앞서고 뒤따르며 서둘러 몸의 창을 닫아버렸었다. 냉혹한 운명의 신을 원망해 봤지만 아무에게도 두 번의 세상살이는 없던 터, 무심한 태양은 여전히 찬란하고 계절은 제 흥에 부풀고 세상은 왁자지껄했다. 눈을 뜬 순간만큼은 혼신으로 창을 들어 올리고 열렬히 데울 수밖에 없는 일생一生임을, 서러움의 바닥에 새겨두었다.

햇살도 창창한 봄날, 독한 감기에 붙들려 책 한 권을 읽고 있다. 가능한 두 눈의 창을 크게 열고, 여태 '나'이면서 내게 가장 난해했던 '몸신'을 열독한다. 반백년을 지나고 이순의 고개를 넘는 동안 소진된 열기도 축적된 나이테도 변형된 모양새도 짚어가며, 내 이력과 지식과 영혼이 깃든 몸을, 찬찬히 읽는다, 살려면 뜨거워봐야 한다는 것을. 하루를 살아도 새날을 빚어야 할 사람에게 열기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창밖 광장의 오후 햇살이 눈을 반짝이며 튀어 오르고 뜨끈한 대추차가 목줄을 타고내리며 "뜨겁게 살라." 몸을 다독여준다.



염귀순 님은 부산문인협회 이사, 부경수필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민족통일문예공모전 통일부장관상을 비롯해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다. 수필집으로 『펜을 문 소리새』(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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