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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1/N / 양희용(일섶)

부흐고비 2022. 2. 21. 07:55

알파벳 'N'의 전성시대다. 영어 약자 N은 품사 중에서 명사를, 원소기호에서 질소를, 의학 관련 용어에서 신경을, 자동차 기어에서 중립을, 방위 표시에서 북쪽을, 설문지 'Y/N'에서 'No'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다.

N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수학 시간의 힘들었던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 √ lim log를 사용한 방정식과 함수에 부정不定정수 'n'이 따라다녔다. 부정 정수는 정해진 숫자 없이 환경에 따라 값이 변하는 수를 말한다. 최근에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 n수생, n포세대, 코로나19n차 감염, 성범죄사건 텔레그램 n번방, 등에 나오는 n도 같은 의미이다.

직장인들에게 N은 더욱 친숙한 용어다. 동료들과 식사나 술좌석을 끝낸 후, 비용을 각자 분담하는 '1/N' 방식을 자주 선택한다. 여기서 사용하는 N도 부정정수로, 세 명이면 1/3, 일곱 명이면 1/7로 계산한다. 요즘은 1/N을 쉽게 계산하는 앱까지 개발되어 분담금을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1/N이란 말은 영어 'Dutch pay'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Dutch'는 네덜란드를 뜻한다. 여러 국적의 사람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네덜란드인이 자기 밥값만 계산하는 것을 보고, 네덜란드인은 인색한 사람이라고 조롱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각자 비용을 부담하는 계산방식의 의미로 변형되었고, 1/N이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일부 호사가들은 1/N을 좀스러운 방식이라고 비아냥거린다.

35년이 훨씬 지났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직장선배들과 함께 시장통에 있는 횟집에 자주 갔다. 술좌석이 파한 후 아무도 계산을 하지 않은 채 그냥 헤어졌다. 누군가 먼저 계산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며칠 후, 다른 선배들과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의문점은 월급날 해결되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가 갈 때마다 참석자의 이름과 술값을 장부에 적어두었다. 월급날이 되면 각자 부담해야 할 금액을 나누고 합한 개인 외상장부를 만들어 청구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경험한 1/N이었지만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1/N을 잘하는 친구가 있다. 그와 포장집에서 만나면 안주 두 접시에 소주 서너 병을 마신다. 술값은 4만 원 안팎이다. 그는 술좌석이 끝날 때쯤 2만 원을 나에게 주면서 같이 계산하라고 한다. 처음에는 약간 기분이 나빴지만, 며칠이 지나면 그 친구랑 또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먼저 2만 원을 주기도 한다. 이제 술좌석이 끝날 때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테이블 위에 2만 원씩 올려놓는다. 그는 누구보다 쉽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다.

사는 형편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밥값이나 술값을 혼자만 계속 계산하다 보면 관계는 점점 소원해진다. 한 번 얻어먹었으면 다음에 사든지, 아니면 1/N로 계산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 몇천 원, 몇만 원을 나눈다는 게 졸렬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친구의 얼굴을 자주 보고 즐겁게 지내려면 더 이상 좋은 방법은 없다. 가까울수록 금전 관계는 명확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어릴 때, 음식 문제로 형제들 간에 가끔 다툰 적이 있다. 어머니가 자식 세 명을 위해 찹쌀떡 세 개를 사왔다. 1/N로 나누어 하나씩 먹으면 공평하다. 장남이라고 두 개를 먹고, 나머지 하나를 동생 둘이 나눠 먹으라고 하는 것은 1/N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1/N은 똑같이 나누어 모두가 평등하게 계산하는 방식이다. 한 사람이라도 계산에서 빠지거나 더 많이 가져간다면 다른 사람의 부담과 불만이 커진다.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각자의 능력에 맞게 업무를 나누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작은 힘이 모이고 모이면 건강한 사회가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각자의 몫을 나누는 1/N을 모두 합치면 N/N, 즉 '1'이 된다. 결국, 1/N은 전체를 하나로 만들기 위한 나눔이다.



양희용 님은 필명 양일. 충남 금산 출생.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2015) ·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상(2016) •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2017) - 제5회 금샘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2013) · 수영구문화예술문인회 우수작가상(2019) -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2019) - (수필과비평》 올해의 수필 10선 선정(2020) - 부산문인협회, 수영문인회 회원 • 부산수필과비평작가회의 감사 · 부경수필문인협회 홍보국장 - 부산수필문인협회 사무국장 • 수필집 『꽃놀이패 (2017), 산복도로 계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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