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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명 시인
충남 부여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한남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 《한울문학》으로 등단. 한울문학상, 대전문학상, 한국인터넷문학상, 역옹인문학상, 대전펜문학상 수상. 한울문학문인협회 충청지회장 역임, 호서문학, 사비문학, 문학방송, 대전문협, PEN문학, 대전문총, 시사랑시백과사전 회원. 시집으로 『사랑하며 살기도 짧다』, 『그대를 더 사랑하는 것은』, 『세월을 다 쓰다가』, 『향기는 스스로 만든다』, 『봄은 그냔 오지 않는다』, 『처음 눈빛』, 『제 이름으로 핀 꽃』 등과 전자시집이 있다.
내려가는 법 / 조남명
내가/ 산에 오르는 것은/ 잘 내려가기 위해서다// 내려가며/ 길옆도/ 보기 위함이다// 오를 때 못 본 것들 보며/ 보람있게 내려가는 법/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네 삶이/ 앞만 보며 오르는/ 산 오름과 무엇이 다르랴.//
접시꽃 / 조남명
마당가에/ 홀로 서/ 붉게 피어난 꽃// 어릴 적/ 대문 나와 기다려 주던/ 어머니// 가신지 오래 되도/ 그 모습/ 눈에 밟혀// 그 꽃/ 해마다 심어놓고/ 곁에서 봅니다//
* 고운식물원(충남 청양군 청양읍)에 '접시꽃' 詩碑가 있다.
구절초 / 조남명
청초하고 서늘함 스민/ 애처로운 꽃// 야트막 산길 비탈에/ 나무와 어우러 피어/ 하얀 눈 안쓰럽게 마주치면/ 끌어안고 싶다// 순수히 웃음 짓는/ 노란 꽃술은 아기 얼굴/ 바람에 일렁이는/ 귀여운 손사래// 통통한 달님 내려와/ 은은한 향기 속/ 하얀 소복자락에 갇혀/ 시린 가슴 녹여주고/ 밤이슬 맞고 떠난다// 이 꽃 시들면 가을이 가는 것/ 가을 잎들은/ 쉽게 지지 않기를 내색하고/ 굽어진 마디마다 채운 그리움/ 지기 서러워 하늘거린다//
복수초(福壽草) / 조남명
얼음눈 틈새를 뚫고/ 밀어올린/ 노란 얼음새꽃/ 볼수록 눈을 뗄 수 없다// 저 병아리 같은/ 여린 것이/ 당당이도 꽃가슴 열어젖히고/ 시린 바람에 떤다// 누가 시켰으랴/ 타고난 천성으로 피워낸/ 노란 꽃술의 울림은/ 용케도 벌이 찾아들고// 계절의 맨 앞에 선/ 노란 복수초는/ 버들갱이, 목련을 깨워/ 어김없이 봄을 만들어간다//
네 잎 클로버 / 조남명
네 잎 찾으려/ 눈을 부릅뜨고/ 세 잎새 짓밟으며/ 헤매고 있는 사람들// 지천에 깔린 행복/ 외면하면서// 행복 속에서/ 그 소중함 모른 채// 요행(僥倖)으로/ 행운만을 잡기 위해/ 방황하고 있는가.//
*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다.
나뭇잎 하나 / 조남명
질 때를 아는 나뭇잎/ 변해가는 얼굴색을 보고/ 서로를 위로하며/ 작별을 준비하는 늦가을// 많지 않은 시간/ 아름답게 마감하려고/ 단풍잎 붉게도/ 참나무는 갈색 옷으로/ 은행잎 노란 옷 정갈히도 입고/ 기다리고 있다// 무더위, 천둥 번개를 함께 겪던/ 지난 삶 돌아보고/ 헤어지는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붙어 있는 나뭇잎 하나//
눈사람 / 조남명
동네 어귀 홀로/ 앉은 듯 서 있는/ 야윈 눈사람/ 그리움/ 몸 속에 안고/ 제 속을 비우며/ 망부석인 양 서 있다/ 녹아/ 먼지만 남을 때까지/ 그리워하다/ 거기 남는다//
광복을 되새기며 / 조남명
잠시도 맘 못 놓았던/ 그 많은 외침에도/ 이 터전을 지키고 있는 우리는/ 위대한 겨레의 혼이 있었다// 이 땅을 욕심내는/ 쉴 새 없는 침략의 짓들/ 지금도 그 근성 놓지 않았으니/ 독도를 제 것이라고// 삼십 육년 총칼 짓에/ 숱하게도 머리통은 뒹굴고/ 몸은 뒤집어 쓰러져도/ 불굴의 민족 영혼은 더 살아났다// 그리도 갈망하던/ 조국의 되찾음/ 그 감격의 목멘 소리/ 귓전에 생생히 다가온다/ 이걸 못 보고 먼저 가신/ 선열의 헛됨이 아니어야 하리// 그 정신 가슴 깊이 되담아/ 후손들이 소중히 이어가게 하소서/ 이 땅을 영원히 간직하며/ 번영된 나라 이끌어 가게 하소서//
그리 살아야겠다 / 조남명
작은 게 홀로 떠서/ 어두운 밤 밝혀주면서도/ 외로움 견뎌내는 달// 쉬지 않고/ 갈 길 흘러가는/ 언제나 낮은 곳만 선택하는/ 겸손한 물// 더러운 똥오줌/ 마지막 주검도/ 다 덮어주고 받아주는/ 정직한 흙// 오직 한 자리에/ 옆도 넘보지 않고 불평 없이/ 그늘이 되고 기둥이 되어주는 나무// 거부하지 않고/ 어느 물이나/ 다 수용하는 가슴 넓은 바다처럼//
미안합니다 / 조남명
아침에 나와 하루 일할 곳 있어/ 두 발로 혼자 걸어 나올 수 있어/ 그렇지 못한 이에게 미안합니다.//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어/ 밥을 내 손으로 먹을 수 있어/ 그렇지 못한 이에게 미안합니다.// 남 이야기 듣고 내 이야기 줄 수 있어/ 어디든 보며 갈 수 있어/ 그렇지 못한 이에게 미안합니다.// 들어 살 수 있는 허름한 집 한 채 있어/ 그 안에 의지하며 사는 가족이 있어/ 그렇지 못한 이에게 진정 미안합니다//
독도(獨島) / 조남명
동해 드넓은 검푸른 바다 위/ 외로이 떠있는 한반도의 분신/ 부모 섬 울릉도 자락에/ 동도 서도 딸린 팔십 구개 섬// 신라 우산국을 거쳐거센 파도 비바람에 시달려도굳건히 한반도를 지켜온애처롭게 씻겨 내린 자태여!!그 혼이여! 이제 외롭지 않게/ 혼자가 아니게/ 모두 나서 감싸줘야 하리/ 지켜줘야 하리// 바다 건너 별의별 짓 다 함은/ 침략 근성 보여 주는 것/ 우리 민족은 분개하노라/ 되레, 대마도가 우리의 섬인 것을// 독도/ 삼국부터 혈통 내려온/ 울릉도와 부자지간의 도근(島根)/ 보라! /독도 몸에 있는 한반도 형상을,// 우리는 독도를 왜곡하는 짓들을/ 바로 잡아야 하느니/ 독도는 모국을 향해 애원한다/ 영원히 지켜 달라고,//
새해의 소망 / 조남명
원단元旦새벽을 밝힌 붉은 태양은/ 상서로운 얼굴로/ 영롱한 빛을 내리며 솟구쳤다// 올해, 올 한해는/ 이 나라가 바로 서고/ 신의와 배려가 깃든 터로 거듭나/ 빈 가슴은 채워지고/ 까만 속은 씻어 내리는/ 한 해가 되어라// 모든 이기적 마음일랑/ 함께함으로 포용되고/ 더불어 살려하는/ 따뜻한 바람 쉬잖고 일렁이는/ 이 땅이 되어라// 소신과 가치가 되살아나고/ 앙금과 엉킨 줄이 풀어져/ 약한, 외로운, 성치 못한 이에게도/ 눈과 귀를 더 기울이는/ 베푸는 게 희망이고 행복이 되는/ 그런 위대한 나라가 이루어지어라//
겨울이 있어 / 조남명
겨울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런가/ 이게 없다면/ 식물도 꽃들도 답답할 거다// 쉼을 한번 가질 여유도 없이/ 식물들은 계속 자라기만 해야 하고/ 누가 반기지 않는다 해도/ 꽃들은 계속 피어나기만 할 거다// 겨울이 있어/ 가슴 맞대고 뜨거움 깊이 나눌 수 있고/ 털옷과 작은방 그 따뜻함의/ 고마움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랴// 쉬어 갈 수 있기에/ 잎을 떨군 홀가분한 나무들은/ 봄 이파리 다시 돋을 채비를 하고/ 꽃들은/ 피어 날 몽우리를 매만질 수 있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과정인가.//
가족 / 조남명
부부둥지 만들어/ 사랑의 흔적으로/ 태워준 자식// 천륜으로 맺어진/ 뗄 수 없는 불변/ 보듬고 사는 맨 가까운 붙이// 믿음, 사랑으로/ 마음 넓히고 덕 기르는/ 부모, 부모의 부모/ 자식, 자식의 자식// 모자람 여유 속/ 사랑으로 숨쉬는/ 눈빛, 표정으로 사는/ 보금자리가 있어 내가 살고 산다//
그때 행복 / 조남명
나한테도/ 행복한 날 오겠지/ 쉬는 것도 잊고/ 정싱 없이 일만 하며// 고대하며 기다렸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 어느 날 되돌아보니// 그게 행복이었어/ 그때가//
칭찬 / 조남명
누구나 바라는/ 자연스런 욕구/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그게 있으면/ 흐뭇하고 자신감이 솟아난다// 받아서 싫은 사람 있으랴/ 마음의 활력소/ 기쁨을 만드는 촉진제/ 윤기 있는 삶에 필요한/ 사람을 바꾸는 큰 요소로다// 어린애도, 부하도, 부부도, 윗사람도/ 갈망하는 것/ 생물과 무생물도 반응하는 것/ 해 준 사람 잊지 않는/ 힘과 의욕을 솟게 하는 칭찬/ 이만한 게 있으랴//
가을 길 걸을 때는 / 조남명
가을에/ 길을 걸을 때는/ 꽃만 보고 가지마세요/ 가을 들녘에/ 눈길이라도 한번 주고가요// 천둥 번개/ 비바람을 겪은 사랑이/ 영글어 가고 있어요// 동그라니 웃음 짓는 호박/ 흙 두렁 틈 벌린 붉은 고구마/ 수없이 매달린 들깨 알 콩꼬투리/ 벼 조 수수는 절까지 하네요// 꽃은 눈을 유혹하지만/ 곡식은 진실이 여문 것/ 한해살이를 아쉬워하며/ 결실을 주고/ 일생을 마치는 서글픈 것들// 눈길이라도 주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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