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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담장이 오래된 절을 더욱 쇠락해 보이게 한다. 볕에 바래 윤기를 잃은 기와지붕마저 한쪽이 내려앉아 있다. 단청을 하지 않은 추녀 아래로 삭풍이 휘돌아 나간다. 풀도 사위고 잎도 다 진, 겨울 동안만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고적한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나지막이 엎드린 요사채의 처마 밑에 달려 있던 곶감이 소리 없는 풍경처럼 흔들린다. 기척을 느꼈는지 스님이 장지문을 열고 내다본다.
가끔씩 찾아오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마치 색계를 떠나오기라도 한 듯 온통 무채색의 풍경 속에서 오직 곶감의 다홍색만이 두 눈에 가득 찬다. 아마도 절 입구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에서 딴 감 들이지 싶다. 족히 두 아름은 되어 보이는 그 감나무는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우리만치 오래된 고목이다. 초파일에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작은 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었다. 하마 생산을 그칠 나이가 되지는 않았을까 싶었지만, 해마다 적잖은 양의 수확을 보는 모양이다.
세월의 저편, 우리 동네에도 감나무가 있는 집이 많았다. 마당 한쪽이나 뒷마당에는 반들거리는 잎을 쓱쓱 내미는 무람없는 감나무가 한 그루씩은 있기 마련이었다. 약간은 수다스러워면서도 인정이 많은 아낙처럼 감나무는 봄이 되면 무수한 감꽃들을 달았다. 그중 더러는 여름 비바람에 떨어지고, 대개는 가을이 되면 가지 끝에서 햇살로 채워진 주머니 같은 다홍색 감이 되었다.
할머니는 모양이 좋고 흠집이 없는 감들을 골라 항아리에 담았다. 홍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찔한 허공에서 줄타기하듯 하늘에 걸려 있던 감들이 항아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편안히 좌정했다. 항아리는 집안에서도 서늘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모셔졌다. 이제 감들은 제 속의 떫은맛이 가실 때까지 한잠 푹 자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에 걸쳐 온전한 하나의 감으로 영그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인가 보았다. 감 껍질이 채 야물기도 전에 곧잘 태풍이 오곤 했다. 어지러이 가지가 스칠 때마다 여린 껍질에는 생채기가 났다. 유년 시절의 상처처럼 그 생채기는 감이 커질 대로 커진 뒤에도 거뭇한 상흔을 남겼다. 감에 어느 정도 과즙이 들자 벌레가 파먹고 새가 쪼아댔다. 용케 끝까지 버틴 감에는 속살이 보이는 천공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 다 다 되었다고 방심을 한 탓일까. 돌연 땅에 떨어져 멍이 들기도 했다.
식구들은 둘러앉아 따로 모아두었던 상처 난 감들을 깎았다. 밑에서부터 꼭지 쪽으로 돌려가며 깎았다. 상처가 심할수록 칼은 깊이 들어가고 껍질은 두껍게 베어져 나갔다. 반들거리고 질긴 껍질을 벗은 맨살의 감들은 자신의 심지를 지나갈 외줄을 예감한 듯했다. 주황색 낯빛이 상기되어 더욱 붉어지는 것이었다.
이내 한 줄에 매달린 감들은 처마 밑에서 주렴처럼 흔들렸다. 맨살에 닿는 뭇시선이 따가울까 염려해서였을까. 남향의 처마는 하루 종일 반그늘을 만들며 부르튼 맨살의 감들을 가려 주었다.
아마도 상처가 난 껍질을 깎아내지 않았더라면 썩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감으로서의 일생은 그것으로 끝이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달콤한 홍시가 되리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말이다. 상처 이은 감들은 자신의 껍질을 송두리째 깎아 내는 쓰라린 의식을 치르고서야 곶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껍질을 깎아 낸 곶감처럼 나에게도 맨살로 세상에 나앉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렸는데, 은행 잔고는 바닥을 지나 마이너스 눈금을 가리키며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별일 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무더위에 하루하루 범위를 넓히며 썩어 가는 과일처럼 속수무책의 시간들이 쌓여 갔다. 나는 외면할 수 있을 때까지 외면하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 그러는 사이 애초 원인이 되었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상처의 부위가 커졌다.
이상하게도 고통이 가중되자 종종 비현실인 감각들이 찾아왔다. 문득 계절을 잊는다거나, 마치 허공을 밟은 것처럼 발부터 붕붕 뜨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느닷없이 시장 한쪽에서 분식집을 시작한 것도 그런 비현실적인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유일한 외출이 도서관 출입이고, 밤이나 낮이나 틈만 나면 책을 읽은 여자가 분식집을 연 것이다.
말이 가게지 난전을 조금 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 우동과 김밥을 만들어 팔았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장사였다. 곁눈질로라도 이익을 챙기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먹을 것을 주고 돈을 받는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잔일로 이어지는 노동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시대 때도 없이 엄습하는 작열감이었다.
손님들을 대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 가게를 둘러보거나 하면 가슴이 따가워서 가게 뒤편으로 숨기도 했다. 늦은 밤이면 가게를 닫고 돌아서는 내 등 뒤로 텅 빈 시장터를 휩쓸고 온 찬바람이 불어왔다. 온몸이 쓰라렸다. 나는 껍질을 벗고 생계라는 외줄에 꿰인 채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합류한 남편이라는 처마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 시간들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해 겨울, 곶감은 사방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IMF라는 한파가 몰고 온 풍경이기도 했다. 포장마차가 늘어나고, 행상 트럭도 많아졌다. 돌이켜보면 열심히 일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익숙하던 껍질을 벗고 돌연히 낯선 환경에 노출된 것으로부터 느끼는 아픔이었다. 무릇 고통이란 급격한 변화를 겪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던가.
가게가 시장가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을 들락거렸다. 때때로 난전에서 채소를 구입하는 일도 잦았다. 찬바람이 길가에 앉아있는 그들의 얼굴을 곶감처럼 발갛게 익히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을 틈타 뜨거운 커피를 가지고 가 그들 옆에서 노닥거렸다. 간간이 그들로부터 상처 난 껍질을 도려낸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작열감이 하루가 다르게 가라앉았다. 여전히 찬바람은 불었지만, 어느덧 맨살에 굳은살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굳은살이 생기자 작열감이 멈추고 생활 속에 조금씩 단맛이 고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도 곶감처럼 제 속의 떫은맛을 삭히며 맨몸으로 익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스님이 곶감 몇 개를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 산사의 처마 밑에도 찬바람이 불었을 게다. 한 겨울밤,, 외줄에 매달려 한껏 움츠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얼음조각 같은 별빛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한숨도 쉬었으리라. 그러나 그 숨결이 멀리 가지 못하고 되레 제 얼굴에 하얗게 달라붙어 버린 것이었을까. 동통의 새벽이 지나고. 닳아 버린 싸리비같이 짧아진 겨울 햇살이 한숨을 말려 분을 만들었나 보았다. 살짝 그을린 얼굴에 발라진 하얀 분이 제법 곱다.
꾸덕꾸덕해진 몸집에서는 쫄깃한 긴장감과 적당한 탄력이 느껴진다. 한 입 베어 문다. 모진 겨울을 맨몸으로 흔들리며 건너온 곶감의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김응숙 님은 2015 『에세이문학』 등단. 2017 천강문학상 우수상 외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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