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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홍시 / 강순지

부흐고비 2022. 3. 18. 08:52

빌라 화단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에 밤톨만 한 열매가 열리면 잘 익은 감을 그리곤 한다. 토종이라 씨알이 굵지는 않아도 익으면 단맛이 좋다. 성급하게 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감이 완전히 붉은색을 될 때까지 기다린다. 감은 이슬을 받고 가을 찬바람을 견뎌야 무르익어 제맛이 난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보면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홍시가 생각나 설레곤 했다.

지난가을에는 감나무에도 병충해가 생겨 감을 수확하지 못했다. 감이 익을 무렵 묽은 주황빛이 돌더니 툭 툭 떨어져 버린다. 현관 앞 시멘트 바닥에 물컹하게 밟히는 감으로 성가실 정도다. 까치밥으로 남길 것도 없이 다 떨어졌다. 마른 감꼭지가 앙상한 가지에 까만 별 모양으로 붙어있다. 까맣게 굳은 채로 아쉬운 결실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나무는 헛헛하게 빈 가지를 흔들고 서 있다. 봄에 때맞춰 병해충 방제를 했다면, 예년처럼 달콤한 맛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한다. 그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열매도 실하게 달려 나무 관리에 무심했던 탓이다. 살아가면서 ‘때’를 놓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후회 끝에 오래전에 있었던 일의 기억이 떠오른다.

부둣가에 있는 사무실에 다닌 적이 있다. 직장엘 다니려고 세 살이 채 안 된 둘째 아이까지 서둘러 어린이집엘 보냈다. 둘째는 나와 떨어지기 싫다고 어린이집 대문을 붙잡고 운다. 아이를 밀어 넣듯 떼어놓고 바쁜 하루를 살았다.

어느 가을 오후 바람이 건들건들 부는 날이다. 오후가 되자 어판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생동감이 넘치던 아침 풍경과는 달리 한산한 부둣가는 나른하고 쓸쓸함마저 든다. 사무실 앞에 허름한 포장마차가 있었다. 간혹 여행하는 사람들이 들리기도 하고 어판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국수 한 그릇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한다. 해 질 무렵 포장마차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이 선원들이다. 그들은 일상처럼 그곳으로 모여든다.

선박 일이 힘들어 선원들은 이직률이 높다. 그 이유로 외지에서 들어오는 떠돌이 선원들도 종종 있다. 말 못 할 사연을 가진 이들도 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취기를 핑계로 마주한 이를 붙잡고서 제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취기 오른 목소리와 큰 들통 안에서 끊는 국물 냄새가 섞여 하루가 저물어간다. 비슥이 비치는 노을빛으로 빛바랜 포장마차 안은 더욱 고즈넉해 보였다.

포장마차 안에선 싸움이 잦았다. 고성이 오가고 서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댄다. 그곳에서는 흔한 광경이다. 그런데 한 사내가 검은 봉지를 안고 흐느낀다. 취객들은 하나둘 몸을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난다. 사내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운다. 다쳐서인지 맞은 데가 아파서인지 때마침 술기운을 빌어 우는 것인지, 달래는 이도 없이 그는 한참을 운다. 울음을 그친 그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어디론가 걸어간다. 터진 비닐봉지 구멍에서 주황색 과육이 바닥으로 뚝 뚝 떨어진다.

다음날 그의 사연을 들었다. 같이 술을 마시던 이가 비닐봉지 속에 홍시를 한 개 먹자고 장난처럼 시작했다. 그는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하며 실랑이 끝에 싸움이 된 것이다. 형 동생 하는 사이에 감 하나를 두고 뭘 그리 인색하게 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홍시는 그의 어머니가 좋아했다. 그는 청소년기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밖을 떠돌았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가을이 되면 그는 홍시 한 봉지를 사 들고 술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먹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주지도 않고 어머니에게 바치는 속죄의 제물처럼 한동안 들고 다닌다. 그날도 눈물 섞인 소주 한잔을 마시고 숙소로 들어갔으면 그만이었다.

그는 부끄러움도 모른 채 목놓아 울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나 어머니에게 홍시 한 봉지 사드리지 못한 때늦은 후회 같은 것인가. 그의 울음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섞여 있었다.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는 듯했다.

작은애가 여덟 살 되던 해 시내로 이사를 했다. 애들은 전학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남편은 새로 구한 직장에서 바쁜 날이 계속됐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다반사였다. 큰애는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작은애는 늦게까지 혼자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이사하고 삼 년쯤 지났을 무렵, 작은 아이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표정에 말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학교생활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본다. 엄마인 내 탓이다. 아이를 모질게 떼어놓고 직장으로 향하던 나를, 집이 낯설 수도 있다는 걸 헤아리지 못한 나를, 아이가 겪었을 외로움에 무심했던 나를 참회하고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말 없는 아이 곁에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노력 끝에 아이는 조금씩 밝아졌다. 발그레한 미소를 지으며 내 품에 안긴다. 아이를 안는 순간 나는 안도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이와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 말고 문뜩 생각난 듯이 말을 한다.

“엄마!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어둑해지는 저녁이 제일 무서웠어. 검은 그림자가 정말 싫었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무서웠던 기억을 꺼내놓는 걸 보면 괜찮아졌구나. 아이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 고민하던 그 시간과 노력이 약이 됐구나 싶어진다.

잘 살고 있다는 건 사랑할 때, 용서할 때, 참회할 때. 고백할 때. 기다릴 때 그리고 용기내야 할 때 같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 그 ‘때’라는 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감나무 꼭대기에 저녁노을이 걸려 발그레하다. 빈 가지에도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다. 으깨진 홍시가 담긴 검은 봉지를 들고 걸어가던 선원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삶에도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달고 있으면 좋겠다. 떫은맛 나는 방황기를 지나 붉은 홍시처럼 그의 삶이 무르익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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