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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특별한 커피 한잔 / 문해성

부흐고비 2022. 3. 21. 08:35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기려나. 정초부터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고 보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온종일 나를 사로잡는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더 고맙고 행복하다. 매일 쏟아지는 어두운 뉴스 속에서 가끔 들려오는 누군가의 선행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커피를 주문하고 값을 치르려는데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들었다. 앞 사람이 내 커피값을 이미 지급했다는 것이다. 나와는 얼굴 한번 마주친 적이 없는 사람이. 앞 사람이 뒷사람의 커피나 음식값을 내주는 일이 있다고 얼핏 들은 적은 있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얼떨결에 받아 든 특별한 커피 한잔, 그 향이 깊숙하게 파고 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자기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요즘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지갑을 열었던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단지 한 잔의 커피라고 하기에는 그 울림이 너무 크다. 커피 한 잔 값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행복이다. 아주 소소한 것이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멈출 수 없다. 그 사람처럼 내가 베풀면 다음 누군가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 다음의 누군가도 또…. 그렇게 훈훈한 마음이 행복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는 따뜻한 세상을 그려 본다.

커피 한 잔의 배려가 기부를 생각하게 한다. 컴퓨터 자판에 기부라고 쳤다. 그러자 그 뜻과 방법, 기부 기관들이 수없이 화면에 떴다.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기부의 방법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신발 한 켤레를 사면 한 켤레가 제3국 어린이에게 가는 자동 기부, 댓글 개수나 리트윗 개수에 따라 기부가 되는 소셜 기부, 재능기부, 포인트 기부 등 참 다양하다. 그러나 기부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 같다.

내 이름으로 기부를 한 적이 있었던가. 새해가 될 때마다 세웠던 많은 계획과 목표 중에도 기부가 들어있지 않았다. 기부는 여유 있는 사람이 좋은 일에 큰돈을 후원하는 것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최근 커뮤니티 일간지에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에 대한 글을 읽었다.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얼마를 내야 하지? 적은 금액을 내자니 왠지 부끄럽고 큰 금액을 내기에는 부담이 갔다.

그렇다고 기부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 하는 기부에는 열심히 참여했다. 이름이나 금액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어서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것은 남들 따라 그냥 무심코 한 행동에 불과했다. 마음이 담기지 않는 허울뿐인 기부였다.

내가 의식을 가지고 하는 기부도 있다. 현금 기부는 주저하게 되지만 식료품 기부에는 선뜻 마음이 간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이 기부는 꼭 필요해 보였다. 미국에 살면서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해왔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배고픈 사람이 있다는 게 슬퍼서이다.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식료품을 사서 그것을 놓고 올 때면 마음이 뿌듯하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에게 돈은 주지 않지만, 먹을 것과 음료수는 건넨다.

해오면서도 썩 믿음이 가지 않았던 기부도 있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강아지에게 줄 음식들을 사고 계산을 하는데 점원이 물었다. 유기견을 돕는데 5불을 기부하지 않겠느냐고. 크지 않은 금액과 유기견이란 말에 예스, 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매번 마음 한쪽에 그 돈이 정말 제대로 전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불쌍한 유기견을 잘 돌봐주기를 바라면서 믿기로 했다.

기부는 내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서로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배려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커피 한 잔으로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 한 그 사람처럼 나도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세상에 누구도 혼자만 잘살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절실하게 느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은 너와 내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아직 새해를 시작하는 첫 달이다. 올해 계획 중에 기부도 넣어야겠다.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내린다. 이런 날에는 바닐라 향에 달콤한 카페라테 생각이 간절하다. 커피를 마시러 집을 나섰다. 이미 드라이브 스루로 커피를 주문하려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내 커피값을 내주었던 이름 모를 그 사람처럼 나도 뒷사람의 커피값을 내주고 싶다. 내가 받은 기분 좋은 행복 바이러스가 누군가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카드를 건넨다.

“뒷사람 커피값도 계산해 주세요!”



문해성 님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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