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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숨바꼭질 / 한상렬

by 부흐고비 2022. 4. 6.

코로나 19가 '집콕'을 하라 한다. 모든 강의가 묶여 거지반 이 년째 두문불출이다. 생애 최초의 긴 휴식 기간이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들긴다. 그러다 쉼이 필요하면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돌린다. 별반 시청할 게 없다. 다행히 엣지에선 일천 회를 넘었던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원일기>를 방영하고 있다. 잠시 시신을 화면에 둔다. 고전적 냄새가 나지만 그 풍미만은 여전하다.

양지마을엔 꼬마들이 몇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아버지는 눈을 가리고 숫자를 센다. 아이는 묘지를 가림막 삼아 숨는다. 곁에서 보면 보일락 말락하다. 숨었지만 숨은 게 아니다. 숫자를 센 아버지가 주변을 둘러보며 아이를 찾는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아이는 꼭꼭 숨고, 아버지는 건성으로 아들을 찾는 시늉만 한다.

숨바꼭질은 사라짐과 나타남, 이별과 상봉의 반복인가 보다. 이 둘은 같이 있지만 늘 다른 곳에 존재한다. 즉자와 타자 사이, 나는 여기에 다른 이는 거기에 존재한다. 숨은 자와 찾는 자. 양자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마치 숨은 그림을 찾기라도 하듯 미로 찾기에 열중한다. 하지만 미로가 그러하듯 숨은 자를 찾는 일이 그리 용이하지만은 않다. 숨바꼭질은 몸으로 하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그래 애착과 기쁨, 갈등과 공포가 재현되는 게 숨바꼭질이 아닌가 한다. 아이들의 숨바꼭질은 들키려고 하는 놀이다. 아이들은 숨고 술래는 숨은 아이들을 찾아낸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찾으려 한다. 숨은 아이는 자신을 최대한 위장하여 몸을 숨기려 한다. 술래는 그런 아이를 찾으려고 숨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찾기에는 전통적 문법이 맞춤하고 통속적 습관도 유의미하다.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숨은 아이를 찾아내기란 때론 불가사의할 만큼 알 듯 모를 듯할 경우도 없지 않다. 숨은 아이는 더욱 몸을 움츠리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찾으려는 아이와 숨은 아이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만 간다. 그러다 들키면 찾는 아이나 숨은 아이 모두가 기뻐한다. 들키지 않으면 숨은 아이는 그만 실망한다. 아이들의 숨바꼭질은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어른들의 숨바꼭질은 숨으려 하는 놀이다. 어른들은 가급적 꼭꼭 숨는다. 변신과 위장에 보다 능숙한 이들이 어른이다. 상대방이 영원히 찾을 수 없도록 사전 방비를 한다. 능란한 언변으로 보호막을 치고 타자에게 전가시키거나 정교한 법망(法網)도 교묘하게 피해 나갈 방책을 세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창처럼 투명하건만 진실은 가뭇없이 사라져 알쏭달쏭하다. 상대가 미로 찾기 하듯 전혀 눈치챌 수 없게 한다. 그러다 들키면 저들은 오래도록 절망한다. 상대를 찾는 순간 어른들의 숨바꼭질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아이의 놀이는 관계를 잇는 놀이지만, 어른은 이기기 위한 놀이다. 아이들은 숨고 찾으려는 놀이 자체에 만족한다. 숨은 아이를 찾기 위해서 때론 갈등과 공포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숨은 아이를 찾았을 때의 그 애착과 기쁨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어른들의 놀이는 상대를 제압하고 승리의 열매를 쟁취하려는 노련함이 서려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사악한 논리적 그물망을 예비해 놓고 상대가 그 그물에 빠져 자멸하길 기대한다. 세 치 혀로써 현란한 수사를 동원하여 포획의 그물을 조인다.

누구나 자신을 숨기면서 산다. 그래서 가급적 남이 나를 알아볼 수 없게 가면을 쓴다. 나를 지나치게 노출하면 생존 자체가 흔들린다. 그렇기에 숨김은 그 자신의 능력이요, 부담이기도 하다. 만일 숨긴 것을 들키게 되면 애를 태우게 된다. 될수록 현란한 수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사실을 숨기려 한다. 그리하여 다른 이가 찾지 못하면 그는 기뻐하고 만족해한다.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진실은 영원히 숨길 수가 없다. 숨겼다 해도 들키기 직전이라는 말과 진배없다. 그래 계속 감출 것인지, 털어놓을 것인지에 대해 갈등하게 된다.

숨고 밝히는 게임이 숨바꼭질이다. 잘못이 있어도 법에 의해 진실이 감춰지기도 한다. 아니면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남의 잘못을 속속들이 뒤져내고 내 잘못을 꼭꼭 감추기도 한다. 곡학아세(曲學阿世), 언어의 상찬도 일삼는다. 때로는 비난과 공격에 일일이 반응하거나 무시하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면 싸움에서 잠시 이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영원한 건 아니다. 진실은 언제든 밝혀지기 마련이어서다. 그때 그 비밀이 밝혀지면 숨겼던 사람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인생은 숨기고 찾고 알아내고 나누는 게임인가 보다. 숨기면 누구는 보호받고, 누구는 다치게 된다. 아니, 숨기면 누구는 자유롭고, 누구는 구속당하기도 한다. 또한 숨기면 어떤 이는 평안하고, 누구는 괴롭고 상처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들켜도 걱정이 없다는 데에 진실이 숨바꼭질한다. 침묵이나 변명, 물타기나 발뺌으로도 모든 게 해결되기도 한다. 그래 형식적 사과도 약효가 있지 싶다.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는 보도들이 이를 방증(傍證) 하지 않는가.

아이들의 숨바꼭질에는 어른들의 것과 달리 계산이 깔려 있지 않다. 그저 놀이로 만족한다. 하지만 어른의 숨바꼭질에는 속내가 꼭꼭 숨어있다. 머리카락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하여 사특(邪慝)하거나 사전에 계산된 이득에 눈이 먼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싸움이 오래도록 질기게 이어졌다. 흡사 숨바꼭질을 닮아 있었다. 그 후 LH 투기가 한창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더니, 이제는 대선을 앞두고 ‘고발 사주’, ‘대장동’ 의혹으로 여야 정치권의 공방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숨으려 하는 자와 찾으려 하는 자의 숨바꼭질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그네들은 지금 아이들의 것과는 다른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과연 누가 웃고 누가 울까. 그런데 관중은 재미있어한다. 남의 일 같은 내 일이 지금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아이들의 숨바꼭질이 그립다. 숨고 숨기려는 어른의 숨바꼭질은 별반 재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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