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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숙제처럼 마음에 품고 있었다. 무심히 잊고 살다 어떤 기억의 끝에서 되살아날 때면 조급증이 일기도 했다. 그는 늘 거기 있으니 언제든 가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지 모른다. 우연히 일어난 한 생각도 만삭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문득, 출산의 기미처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충동이 찾아왔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한산했다. 그늘 한 점 없이 땡볕만 자글거렸다. 도로는 근래 포장된 듯 산뜻했으나 길을 따라 줄지어 선 대여섯 곳의 서점들은 오래된 건물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60년대 거리가 형성될 당시 헌책방이 40여 군데나 있었다는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찾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냥공장이며 양조장 등 한 시절을 구가하던 일대 기간산업들은 진작 사라지고 박물관이나 허름한 창고로 당시의 자취를 전하고 있었다. 한때의 흥성했던 기억을 안고 비상의 꿈이라도 꾸는 걸까. 퇴락한 거리 낡은 회벽에 그려진 고양이의 치켜든 앞발이 꽤나 앙칼져 보였다.
‘배다리 작은 책, 시가 있는 길’ 서점 간판에 이끌려 들어갔다. 문을 열자 낡은 종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반백의 주인 혼자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책상 밑에서 선풍기 한 대가 윙윙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서가에 빼곡한 책들은 주인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였다. 누렇게 빛이 바랬으나 표지만큼은 한때의 영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변덕스러운 세속의 부침에 잊힌 유명배우의 뒷모습이 저러할까. 더러는 귀한 인연을 만나 다시 생을 이어가기도 할 테지만 대부분 적막하게 제 활자의 무게를 감당하다 스러지리라.
인기척에 눈을 뜬 주인의 반응이 덤덤했다. 헌책방거리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오가는 사람은 늘었으나 구경삼아 지나친 적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머쓱해져서 서가 쪽으로 눈을 돌렸다. 장강으로 흘러드는 수많은 물길처럼 헌책방거리까지 흘러온 책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일 테다. 조곤조곤 말을 걸어오는 오래된 책들에 귀를 기울였다. 저마다 순도 높은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인내와 몰입 들끓는 욕망의 황홀한 자기 연소로 탄생된 것이리라. 한 줄의 묘비명처럼 압축된 제목들을 훑어보는 일은 숙연하기조차 했다. 그중에 최민식의 흑백 사진집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다 울컥했다. 아이들이 뛰노는 골목 풍경 속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막내 동생 생각이 나서였다. 삶이 햇살처럼 명랑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왜 늘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새롭게 복받치는 것일까.
안병욱 김형석, 반가운 이름도 눈에 띄었다. 당시 쌍벽을 이루던 두 학자의 인생론은 젊은 날의 이정표 같은 책이었다. 큰맘 먹고 할부로 전집을 사던 때의 뿌듯한 기억이 새로웠다. 언제부터인가 새록새록 발간되는 책들에 밀려 그 책은 구석으로 밀려났다. 친정어머니 돌아가시고 짐을 정리하던 날 책장에 꽂혀 있던 그 책들은 모두 폐기물이 되어 자루에 담겼다. 책 등을 장식하는 화려한 금박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 청춘의 한때도 자루에 실려 그렇게 사라졌다. 두 분의 글이 들어있는 에세이집과 최민식의 사진집을 샀다.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젊은 날의 순정한 다짐을 바스락거리는 가슴에 되새기고 싶었다.
해가 기울어도 좀체 열기는 가시지 않았다. 헌책방거리를 가로지르는 Y자형 큰 도로 외에 주택가로 연결되는 골목들은 막다른 곳인가 하면 다시 이어지는 달동네와 비슷했다. 그 골목들에는 북 카페 등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어슬렁거리듯 골목을 기웃거리다 ‘시와 예술’이란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 주인은 젊은 사진가였다. 책방에서는 재즈 풍의 노래가 흘러 나왔고 묵은 종이 냄새는 많이 나지 않았다. 오래된 책보다는 최근 출간된 시집과 사진집 위주로 진열되어 있었다. 헌책은 책갈피를 넣어 새것과 구별해 놓았다. 묵은 시집 두 권과 사진집 한 권을 더 샀다. 새 책의 모서리는 날카로웠고 헌책의 모서리는 부드러웠다. ‘사진은 묘사다. 무엇을 원하는가, 거기 부합하는 묘사의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사진가의 말은 내 외눈박이 시야를 열어주었다.
젊은 주인은 한 편의 시가 적인 종이 한 장을 곱게 접어 건넸다. 케케묵은 시집 속에서 뜯어낸 낱장이었다. 집에 가서 읽어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어떤 시가 내게 왔을까, 기대 속에 펼쳐보는 재미를 선물하고 싶다는 말에 나는 미소 지었다. 이 업으로 밥이 되는 일은 평생 불가능해 보이는데도 낯빛이 해맑았다. 그녀가 찍었다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세 평 남짓한 공간 벽에 걸리기는 좀 큰 사진이었다. 회색 배경에 흘러내린 머리칼, 반만 드러난 얼굴,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은 흐릿했다. 분위기 연출을 위한 의도적인 흐림, 그녀가 말한 묘사였다. 선명하게 드러난 피사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련함이 묻어났다. ‘그래, 대놓고 보여주는 것은 재미없지.’ 언제나 선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한 내 글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건네준 쪽지에는 1912년 메리 헤스켈이란 작가가 펴낸 시집의 서문이 들어 있었다. 사랑에 대한 절절한 헌사, 시공을 초월한 옛 시인과의 교감이 자못 감동적이었다. 옛것과 새것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헌책방거리를 지키고 있는 젊은 주인이 고마웠다.
한때는 은성했던 ‘배다리 헌책방거리’. 어떤 이는 미래를 찾아 떠났고, 어떤 이는 과거와 함께 머물러 있었다. 속도와 변화만이 미덕인 세태를 살아남아 인문人文의 근력으로 거리를 지키는 오래된 책방들, 길이 되고 이정표가 되어준 인문의 보고, 갈피갈피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추억을 소환해내는 거리. 그들이 밝혀놓은 빛 때문에 세상의 어둠이 조금은 환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헌, 그 쓸쓸하고 다정한 느림의 미학 공간 속에서 미래와 과거라는 크레바스에 낀 채 무기력한 감상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을 반성했다. 멀고 아득한 인문의 항해, 나는 언제 그 중심의 젖줄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만삭의 그리움을 부려놓고 돌아서는 거리에 노을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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