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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떤 장미 / 장호병

부흐고비 2022. 4. 13. 08:48

"아휴, 장미 곱기도 하여라. 안개꽃이 여왕으로 떠받들고 있네.”
불꽃놀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각, 밤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된 몸을 녹이고자 사람들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상해 동방명주에서 내려다보이는 한 레스토랑 입구에 자리하여 주인보다 먼저 손님들을 맞이한다.
"어쩜 이렇게 싱싱할까. 보통 솜씨가 아니네."
내 덕분에 주인은 꽃꽂이 실력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다.
가끔은,
“진짜예요?"
‘속고만 살았나?'
무슨 생각을 하건대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궁금하단 말인가.
중년 신사가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푸른 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윤이 나는 내 잎사귀를 손으로 어루만진다. 뒤이어 들어오던 부인인 듯한 여자가 내 몸 가까이 코를 컹컹대면서 다가온다.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녀도 조 스럽게 나의 잎사귀에 손을 올린다.
"아야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남자는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손톱을 세워 잎사귀를 힘껏 누르던 그의 손에 내가 반사적으로 일침을 놓았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다. 이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나의 첫 번째 임무가 아니던가. 그가 공격적 자세만 취하지 않았다면 나에게는 그를 해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장미에게 가시는 이래서 필요한 거야.'
당황한 나 자신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달걀도 만든다는 중국인들의 손재주로 탄생하였다. 잎이나 가시, 꽃 중 어느 하나에라도 어설픈 구석이 있었다면 나는 가짜 소리를 듣지 않았을 것이다.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완벽해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짜란 소리를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어야 한다.
그때마다 나는 가짜가 아니라고 도리질하지만 “가짜지요?” 라는 소 리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어느 사이에 나도 가짜일 수 있다고 세뇌될 때가 있다.
내가 왜 가짜야! 나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태어난 꽃이다. 물을 얻어먹은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나는 물 달라 보채거나, 시들지도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주인이야 관심을 주든 말든 이 세상에 올 때의 처음 마음 그대로이다. 한결같이 낯선 사람들에게도 상냥하게 미소를 건네며, 한 번도 딴마음 먹은 적이 없다. 인사를 받아주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무심히 지나쳐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가짜지요?”
나에겐 귀가 있을 뿐, 입이 없다. 가짜란 말을 들어도 나는 얼굴을 찡 그린 적이 없다. 내색하진 않지만 속마음마저 편한 것은 아니다. 속이 부글거려도 참을 뿐이다. 나의 천성은 언제나 상냥한 미소, 서운해하지 않는 게 나의 숙명이다.
사나흘이면 시들어버리는 꽃은 진짜이고, 처음 마음 그대로 언제고 버티는 내가 왜 가짜란 말인가.
너무 완벽해서?
향기가 없어서!
‘향기 나지 않는 당신들이 가짜가 아니듯, 나도 가짜가 아니랍니다.’
"나는 진짜 조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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