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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이소호 시인

부흐고비 2022. 4. 29. 08:36

이소호 시인
1988년 서울 여의도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국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석사 4학기 재학 중 이경진에서 이소호로 개명. 월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캣콜링』,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와 에세이집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가 있다.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캣콜링 / 이소호
헤이뷰티풀 순백의 빅토리아 시크릿 이메진 웨얼아유고잉 허밍으로 돈츄스피크잉글리쉬 침 튀기는 엔초비 프린스 두유해브타임 개들이 살 비비는 센트럴 파크 따발총 칭챙총 호퍼의 창문 하루 종일 키스미 미트볼 뚱뚱한 금요일 고져스 에이비씨 에비뉴 전깃줄에 묶인 발레리나 행아웃위드미 한밤중의 컴히얼 망아지 산책교실 인용구로 남은 스마일걸 아유얼론 뒤뚱뒤뚱 섬마을의 소낙비 드링크위드미 계단 위의 미로 허드슨리버 가운데 굶주린 바케쓰 왓츠유얼폰넘버 소호 허니 도살장 나이스바디 플라타너스 아이러브 교회 탑 사방의 호각소리 마이럽 엉킨 바지를 벗었다 룩앳미 여러 켤레의 히치하이커 헤이 헤이룩앳미 젖은 레코드판 빈티지 미녀 룩앳미걸 두유워너퍽 수수깡으로 지은 경찰청 헬로헬로 종이컵 속에서 짤랑짤랑 우는 치나 오솔길 지름길 아유이그노잉미 낯선 몸과 학교로 가고 구석에서 조는 퍼킹비취 엄마 괜찮아요 잘 살고 있어요 행복해요 그 사이 나의 소원은 고백투유어컨트리//
* 캣콜링: 남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추근거리는 등의 말을 하는 것으로, 성희롱적인 행동 또는 언어적 표현의 일종.

동거 / 이소호
내가 태어났는데 어쩌다 너도 태어났다. 하나에서 둘. 우리는 비좁은 유모차에 구겨 앉는다.// 우리는 같은 교복을, 남자를, 방을 쓴다.// 언니, 의사 선생님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래. 그러니까 언니, 나 이제 너라고 부를래. 사랑하니까 너라고 부를래. 사실 너 같은 건 언니도 아니지. 동생은 식칼로 사과를 깎으면서 말한다. 마지막 사과니까 남기면 죽어. 동생은 나를 향해 식칼을 들고, 사과를 깎는다. 바득바득 사과를 먹는다.// 나는 동생의 팔목을 대신 그어 준다. 넌 배 속에 있을 때 무덤처럼 잠만 잤대. 한 번 더 동생의 팔목을 그었다. 자장자장. 넌 잘 때가 제일 예뻐. 동생을 뒤집어 놓고 재운다. 이불이 머리끝까지 덮어 주고 재운다. 비좁다 비좁다 밤이. 하나에서 둘. 하나에서 둘.//

​일곱 살 / 이소호
아직 숲을 통과하지 못했다 사막 한가운데 모서리들이 모여 빈 방을 다발로 낳았다 크레파스로 그린 창살에 갇히기 위해, 빨강 파랑 노랑 채집된 지문은 둥글게 앉았다 오후 다섯 시부터 나는 바람으로 빚은 짐승. 지는 해를 먹고 나날이 자라온 나는 방으로 들어가 스케치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코끼리를 기린을 하마를 사냥했다 이마에 새겨진 서로의 꼭짓점을 맹렬히 공격하며 등줄기를 횡단하던 식은땀 한줄기 햇볕에 볼록렌즈를 갖다 대고 숲을 몽땅 태워버렸다 어떠한 소문도 박수갈채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동물들은 방 안에서 뜨겁게 소화되고 있었다 코를 흔들어대며 이름 대신 가죽 같은 재를 남기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손바닥 위로 뒤축을 구긴 신발이 달리고.//

연습 / 이소호
밥 한 끼 먹자던 가벼운 약속처럼, 시간이 자리를 내어주면 우리는 비로소 체온을 잃지. 울창한 육체 사이로 마지막 잎새 같은 당신의 손바닥. 깍지를 끼고 날마다 빗금을 그으며 남겨진 날들. 접시 위에 살갗을 거슬러 절반의 옆모습 절반의 뒷모습을 포개어 두고 재회한 우리.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전에 명복을 빌어. 우리가 즐겨했던 거룩하신 뜻에 따라 수포로 돌아가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서. 반복되고 반복되는 오늘과 같이 벌거벗은 우리는 멀미를 하고 여전히 귓가엔 고백들이 방을 나서는 소리. 당신과 온 생애를 거슬러 마지막 음표를 마치고,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길. 당신이 끝끝내 가지고 돌아온 나는 이미 오래전 잊혀진 걸 알게 되더라도 놀라지 않는 연습을 할 테니, 당신은 오늘의 거짓말을 영영 들키지 말길//

얼굴 / 이소호
주름을 더듬었다. 멍든 눈동자에서 내가 쏟아졌다. 차곡차곡. 나는 눈동자에 빗방울을 매달아 떠나보냈다. 전속력으로 사라졌다. 인중을 따라 베개 위에 하얗게 깎인 입술. 누워있다. 벼랑 끝으로 내몰려졌다.// 낼름 목소리를 높여 읽어본다./ 낼름 밑줄을 쳐본다./ 낼름 배고픈 혀가 말의 눈을 감겨버린다.// 말이 밖으로 나갔다. 말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지 않았다. 의문부호만큼 많은 시침을 가진 밤이 아직도 오고 있었다. 뒤뜰에서 떨어진 별들은 쓸데없이 목숨이 많았다. 몸부림 한번 치지 않던 전화기가 아가미를 열었다. 얼굴을 핥았다.//

송년회 / 이소호
내가 요즘 신인들 시집을 자주 보잖아. 잘 들어 시라는 건 말이야 미치는 거야. 지금 네 상태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지. 독자들을 니 발밑에 무릎 꿇게 만들어야지. 선배들 니들 좆도 아니야 이런 마음으로 나도 뛰어넘어야 하는 거야. 그래 알지 너 시 잘 쓰거든? 시를 못 쓰면 내가 이런 얘기 하지도 않아. 근데 니가 가족 시를 쓴다는 그 행위 자체에 매몰되어 있는 거 같아. 니가 이해를 못하는 거 같으니까 예를 들어 볼게 너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야. 그래 최승자처럼 되고 싶다며, 근데 넌 최승자가 될 수 없어. 다르거든 이 세상에 최승자는 최승자 하나야. 니 시는 말야 뭐랄까. 끝까지 안 간 느낌? 더 갈 수 있는데, 지금보다 더 극단으로 가야 한단 말이야. 예를 들어 볼게 극단으로 간 시인이 누가 있을까 그래 최승자.//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니가 착한데 나쁜 척을 하니까 그런 거라고. 그게 진짜 너라고 생각하면 독하게 밀고 가란 말이야 미친년처럼. 시의 끝에 매달려 있으란 말이야.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란 말이야. 말해 봐 넌 어떤 시인이란 싸워서 이길 거야? 어떤 시인이랑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해 니가. 니 시는 말야 솔직히 아직 아무도 못 이겨.//

사과문 / 이소호
안녕하세요, 시 쓰는 이소호입니다/ 먼저 저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문단이라는 곳에서 살아남고자 매번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이 같은 실수를 빚었습니다. 특히 별생각 없이 쓴 말 한마디에 몇몇의 독자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라는 틀 안에서는 어떤 문장이든 용인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일을 발판 삼아 앞으로는 자극적인 단어는 지양하고 작가로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문학으로 빚어진 실수를 더 좋은 문학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망상 해수욕장 / 이소호
서로의 얼굴에 모래성을 쌓는 해변의 연인. 파도는 전화벨처럼 밀려와 발자국을 밀어냈다. 나는 내 발자국으로부터 구명당하고 싶어 양손을 흔들었다. 파도를 걸어온 우리. 여전히 망망대해의 스티로폼보다 못한 우리. 그는 고무 튜브라서. 나는 불어도 불어도 부풀지 않는 튜브라서 우리는 가라앉지도 못했다.// 우린 알록달록한 거대한 우산 아래 누워 햇빛을 피했다. 그가 쓰레기를 모아 기타를 퉁기며 쓰레기만도 못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여전히 주둥이부터 꽂힌 빈 병처럼 그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해변이란 모래알들이 알알이 모여 영원히 하나가 되지 못하는 곳. 손에 손잡고 아이엠그라운드를 외치면서도 이름은 끝까지 모르는 곳. 나는 망상이 신다 버린 슬리퍼 한 짝과 다정히 걸었다. 방차제 우뚝 솟은 자리부터 모래가 한 움큼 씹히는 비닐 돗자리까지 서로를 나누어 먹으며//

서울에서 남쪽으로 8시간 5분 / 이소호
시진아/ 언제부터 흉터가 우리의 놀이가 되었을까?/ 싸워서 얻는 게 당연하잖아// 삶은 지옥/ 평화는 초현실// 남반구와 북반구/ 우리는 서로의 환자가 되고// “적도에서 즐기는 치킨게임”// 언니 입 조심 하는 게 좋을 거야./ 요즘 나에 대해서 함부로 말 하고 다닌다며// 나도 들었어 그 소문// 동생은 도끼를 들고 새빨간 군화를 툭툭 끊고 빨갛게 물들고 나는/ 엉거주춤 울었다// 다리를 잃었으니 이제/ 걷지도 기지도 못할 거야/ 당할 일만 남은 거지// 나는 잘린 다리로 콩콩 뛰었다 나의 싸움은 전설이 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더러워지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커다란 폭탄 하나를 시진이 땅에 묻고 저지르고 눈을 감았다 셋 둘 하나 빵!// “케언즈산 코카인 300달러에 1그램”// 언니 잘 들어 우린 중독된 거야/ 내가 영원히 집에 못 돌아가게 머리를 다/ 날려버릴 거야// 슛슛/ 뱅뱅/ “배신자에게는 혁명도 동지도 없을 뿐이라네”// 집행대 위에서// 나는 행잉행잉 춤을/ 추고 춤은 나를/ 추고// 더 세게 묶어줘 더는 떠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알아/ 엄마 아빠는 역시 우리를 버렸나봐/ 말해 뭐해 언니 너도 날 버렸지// 하필 우리 살아 있으니까/ 겨누는 일을 멈추지 못하니까// 슬펐어// 우리는/ 없는 명분을 만들어 서로의 귓구녕에 대고/ 쏘았다 갈겼다 바쁘니까// “아침 먹고 점심 먹고 드디어 저녁 먹고 땡”// 자 이제 우리 누구 손목에 선이 더 많은지 세어볼래?// 너는 말년 병장이구나 나는 고작 이등병인데// 별을 보려면 얼마나 많은 밤을 치고/ 받아야 하는 걸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는 서로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다/ 하시시 웃으며 빙글뱅글 춤을/ 추며// 언니 세상에 사랑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이제 알았지?/ 베드로도 사랑했어 예수를// 고백할게// 사랑해// 그러니까 다시는 살아나지 말자 다시는 깨어나지 말자 다시는 눈 뜨지 말자 다시는 빤스도 흔들지 말자 다시는 투항도 포기도 하지 말자 쫄지 말자 울지 말자 잡지도 잡히지도 말자 다시는 다시는 살아서 보지 말자 누구든 쓰러져 죽으면// 그게 이기는 거야//

사라진 사람과 사라지지 않은 숲 혹은 그 반대 / 이소호
너는 쓴다// 아름드리나무 사각사각 부서지는 햇볕 속에/ 당신은 나 홀로 종이 위를 걷게 하고. 거기 섬, 숲, 나무, 다리 없는 의자, 아귀가 안 맞는 조개껍데기, 무리를 짓다 홀로 툭 떨어져버린 새 한 마리를/ 쓴다 페이지의 끝에서 너는/ 마침표 한 줌을 사고// 다시/ 나는 적힌다/ 만남이 커피로 맥주로 침대로/ 너무나 익숙해진/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원래 인물이란 입체적인 거잖아/ 변하는 게 뭐가 나빠?// 나는 따옴표를 열고/ 너의 문장으로만 울었다// “좋은 사람. 좋은 사람 그럼에도 좋은 사람”// 바닥에 널브러진 뻣뻣한 빨래들처럼/ 아무렇게나 구겨지고 흩어지다 마구잡이로 입혀진다/ 너의 알몸 그대로 나는// 슬픔이 리듬을 잃어가는 일을 묵묵히 바라보며// 서로의 눈동자 속을 잠영하는// 이제 우린// 인사는 가끔 하고 안부는 영영 모르는 세계로 간다// 이 빼기 일은 영// 아무것도 아닌 채로/ 적힌다. 소호야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 색색깔로 칠 해봐. 밀가루 반죽처럼 온종일 치대다 어거지로 뚝뚝 떨어졌던 시간을, 그려봐. 멀고도 먼 눈을, 손을 그 보다 더 멀리 멀리 놓여질 등을, 상상해봐. 검은 크레파스로 덧칠한 우리 둘만의 밤을. 잘 봐 이제 거길 클립으로 파서 단 하나뿐인 세계를 만들자// 어때 이정도면 더는 슬프지 않지?// 우리는 숯처럼 새까만 숲을 걸었다/ 네 뒤를 졸졸 따르며 가끔/ 내가 실수로/ 클립으로/ 도려낸 너의 마음에/ 가슴을 대었다/ 떼 본다/ 춥다//

밤섬 / 이소호
물어뜯긴 손톱이 비로소 마음을 들켰다/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나는/ 우산에서 쫒겨난 어깨처럼/ 젖어있었다//

복어국 / 이소호
죽겠다고 고백한 날 동생도 고백했다.// 너 사람 죽여 봤어?/ 성녀인 척하지 마 너도 중절 수술한 적 있지/ 자궁에 혹도 있을 거야 더러운 년// 그러니까 약을 꼬박꼬박 먹었어야지 멍청한 년아// 그날 우리는 미역국 대신 복어국을 먹었다. 각자 방에 가서 먹었다. 아무리 발라내도 복어에는 독이 있을 것 같아. 우린 죽을지도 몰라. 우리는 복어국을 먹고 부르르 떨었다. 며칠 뒤 복어 냄비에 구더기가 들끓었다. 우리는 그걸 국자로 퍼먹었다. 똑똑히 들어. 내가 꼭 너보다 먼저 죽을 거야. 구더기를 씹던 동생이 말했다.// 지긋지긋하게도 오래 사네/ 죽겠다더니 아직도 살아 있잖아?// 걱정 마 니가 죽으면 나도 그때 죽어 버릴 거야// 밤마다// 나는 동생의 살가죽을 덮고 동생 방문 앞에 섰다. 방 안에서 비닐봉지를 얼굴에 쓴 동생을 봤다. 행거에 걸린 허리띠로 제 목을 조르는 동생을, 눈앞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는 동생을 봤다. 방바닥에 말라 비틀어진 하루하루를 지우며, 나는 흔들리는 동생의 목에서 허리띠를 풀었다. 노크를 한다.// 똑똑/ 내가 미안해// 죽겠다고 고백한 날 나도 고백했다.// 똑똑/ 너 사람 죽여 봤어?/ 성녀인 척하지 마 너 같은 게 제일 더러워//

엄마를 가랑이 사이에 달고 / 이소호
잘린 배를 사각빤스로 가렸다/ 두피가 훤히 드러나는 정수리를 들켰다/ 나는 헤진 머리카락을 가발로 덧씌우고/ 엄마를 아빠 몰래 배 안에 숨긴다// 하루 이틀 나는 엄마를 가랑이 사이에 달고 숫자를 센다 사흘 나흘 그렇게 열 달 동안 꾹꾹 밟고 나온 방광으로 질질 엄마를 낳고 엄마를 키우고 엄마를 먹이고 입히는 동안, 아빠는 노랗게 물든 사각빤스 안에 고추를 넣고 밤마다 고무줄놀이를 했다 한 달 두 달// 퉁퉁// 고추는 오줌보를 터트리고 배를 터트리고 다리 사이를 터트렸다// 자장자장 우리 엄마// 나는 엄마 입안에 밤을 송이째 물리고 아빠의 갈비뼈를 고아 재웠다 알지? 다 엄마를 위해 그런 거야 그러니까 찍소리도 내지 마 우린 아빠 갈비에서 태어났잖아 일요일에 조느라 또 못 들었지? 아빠는 하늘 우리는 땅 하늘 땅 별 땅// 퉤퉤// 나는 대추처럼 잔뜩 쪼그라든 채로, 음부를 명주실로 꿰매고 연고를 덕지덕지 바르고 한 달 두 달 열 달 퉁퉁/ 기다렸다 나를// 있잖아 엄마, 배 안에 누굴 태운다는 것은 정말 징그러운/ 일이야/ 징글징글하지 그러니까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내가 아직 여자라는 건// 나는 닭처럼 돋은 살을 다 뜯어냈다/ 물었다 엄마에게/ 솔직히 말해 봐 이젠 처녀 같아?//

우리는 낯선 사람의 눈빛이 무서워 서로가 서로를 / 이소호
언니야 우리 둘이 살자 엄마 아빠랑은 전화도 하지 마 가끔 죽는 시늉은 정말 멋진 것 같아 이래야 니가 나를 보잖아 그러는데 폭력은 좋은 거래 폭력은 내가 아프지 않다는 증거래 봐 봐 몸 무좀 생겼어 화가 분출되는 중이어서 이렇게 빨갛대 나는 말야 언니가 종교를 믿었으면 좋겠어 불평불만은 니가 좋아하는 그 신한테나 하는 게 좋겠어 그러니까 영원히 시집가지 말고 이렇게 둘이 살자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의지하면서 살자 다음 생에도 언니랑 자매랑 태어나면 정말 좋겠다 그치? 잊지 마 너 같은 거 사랑하는 건 나밖에 없어 우린 가족이잖아 엊그제 내가 프라이팬으로 네 머릴 친 건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 알겠지 언니는 맞아야 말귀를 알아듣는 거 같아 같이 살 수 없다면 같이 없어지는 게 좋겠어 한날한시에 죽자 뻘리 맹세해 니네 신한테 나랑 영원히 같이 살고 죽겠다고 이게 생각할 일이야? 정말이지 언니는 신기해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어 애초에 대화라는 걸 할 줄 모르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걸 때우려 하지마 어떻게 너 같은 게 대학에 갔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멍청한데 때려야만 말을 알아듣잖아 개새끼처럼//




시진이네 ㅡ죽은 돌의 집 / 이소호
집을 지었다/ 손끝이 빨개질 때까지 블록으로 집을 지었다/ 블록 조각이 사라질까 두려워 졸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방을 지었다// 언니는 마지막으로 내 방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나를 버릴 거야// 아냐 언니/ 내가 언니를 위해 거실에 천원점도 박아 놨어/ 이제 여기 기둥서방만 박아 넣으면 돼/ 잊지 마 나는 언니를 사랑해// 내가 형부를 언니처럼 어르고 달래고 만지는/ 사이// 언니는 천원점을 잊고, 언니는 언니를 앓고 날마다 방구석에서 말라 갔다// 더러운 책걸상 머리카락 침대 그리고/ 잠만 자는 언니의 삼십 년간의 주말// 그러니까 언니 대신/ 내가 형부를 언니처럼 어르고 달래고 만지는/ 사이// 형부와 나는 거실 가운데 땅따먹기를 하고/ 언니에게 펀치를 날린다// 바보야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의 차이는 한 끗 차이 아니겠어?/ 그러니까 우리는 가해자가 아냐/ 울지 말고 일어나 언니// 언니는 여전히 집 안에 있다// 우리는 숨구멍을 철 수세미로 찔러 놓고 쇠붙이를 잘근잘근 씹어 대는 언니의 숨소리를 들었다 집을 짓던 빨간 손으로, 피도 가시지 않은 언니를 먹는다 뼈는 남기고 살코기만 먹었다 언니를 빨던 빨간 우리의 손가락도/ 먹었다// 네모로 만든 집 우리가 우리로 묶이는 네모난 식탁// 언니는 길 잃은 치매 노인처럼 집이 없다고 했다// 나쁜 년// 우린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아무도/ 아무도 우리였던 우리를 기억하지 못했다// 언니는 여전히 집 안에 있다// 우리는 거실에 두 집 살림을 차리고 하얀 블록을 집었다 언니는 남겨진 까만 블록을 집고, 쌓으며 울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까만 블록은 언제나 불리하다/ 까만 블록이 전부 공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누워 있는 경진 / 이소호
처음/ 봤다 천장에 비스듬히 난 거울로 경진이*를/ 훔쳐봤다 베개 선에 맞춰 모가지를 비틀고 말했다/ 위를 봐 새끼야 똑바로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나는 경진이의 목을 조르고 묻는다// 좋아?// 밤, 나는 밝히기만 할 뿐 어둠을 몰랐다/ 우리는 한 무더기의 별을 땄다/ 별빛 아래 경진이를 눕히고 좋아서 고추로 질질 울었다/ 경진이는 우는 나를 달랬다/ 입안 가득 나를 물고/ 물었다// 왜 너만 좋아?// 바보야 네가 처음이라 모르나 본데/ 사랑한다는 말은 말로 하는 게 아냐/ 행동으로 보여 줄게/ 나는 하룻밤에 다섯 번도 사랑할 수 있어// 대답 대신 경진이는 자기 주둥이를 다잡고/ 왼손으로 지문을 오른손으로 대화를/ 썼다 짝짝이 속옷이 벌린 다리보다 부끄러웠던 그날을/ 썼다/ 좆도 모르면서 큰 구멍만 탓하던 그날을/ 내 것이 얇고 가는 줄도 모르던 나를 기리던 그날을, 썼다// 경진:(침대를 박차고 나오며) 그러게, 내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사이) 원래 끝까지 너만 좋아?// 우리는 단숨에/ 짧아졌다//
* 경진: 현대 미술관의 작가 이경진의 첫 남자 친구 이름. 그녀는 동명이인과 연애를 하면서 자아 분열, 분리 불안,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며, 그것이 예술의 영감이 되었다고 밝혔다.

경진이네 ㅡ거미집 / 이소호
엄마는 다리를 혐오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우리를// 언제나 비좁은 우리의 요람/ 밤마다 침대에는 온 가족의 다리가 뒤엉켰다/ 이 이는 사 이 사 팔/ 시팔/ 그날, 엄마가 낳은 1989개의 동생// 햇빛이 사라지면/ 거미는 줄을 타고 올라간다// 가진 게 다리뿐인 우리는 살아야 했다/ 배고플 때마다 이불 속에서 똥구멍을 조이는 연습을 했다/ 한 호흡에 한 번씩 조여지는 똥구멍, 수축하는 질// 불행히도 엄마의 자궁은 1989개의 동생을 낳은 후로 늙고 닳았다/ 젖을 빠는 대신 우리는 자궁에 인술린을 꽂고 매일매일 번갈아 가며 엄마 다리 사이에 사정을 했다/ 그때마다 개미가 들끓었다// 잘 들어 엄마/ 엄마는 이제 여자도 뭣도 아냐/ 내가 이렇게 엄마 다리 사이를 핥아도 웃지를 않잖아// 봐 봐/ 이렇게 손가락 제 개를 꽂아도 느낄 줄 몰라 엄마는// 나는 문을 꼭 닫았다// 천구백팔십구 천구백팔십팔 천구백팔십칠 천구백팔십육 천구백팔십오 천구백팔십사 천구백팔십삼 천구백, 천구백, 천구백// 백/ ......빽 ......빽// 가진 게 다리뿐인 나는/ 살아야 했다// 엄마를 향해 사정을 했다 다리 사이로 개미들은 끓고, 턱을 벌리고 엄마의 축 처진 살을 꼬집었다/ 울었다 엄마는/ 영등포 로터리에서 핑크색 유두를 잃어버린 소녀처럼 똥파리가 들끓는 1989명의 동생을 뜯어 먹으며// 비가 오고 줄은 끊어졌다/ 거미는 줄을 타고 내려간다// 하얀 천과 삼베 탄수화물과 초콜릿 구더기와 거머리 그리고 씨 다른 아빠, 아빠, 아빠// 나는 이미 죽음의 추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제 /가족을 말하지 않고 나를 말하는 방법은/ 핑계 뿐이다// “엄마는 늘 내게 욕을 했어요/ 애미 잡아먹는 거미 같은 년이라고”*// 햇빛은 사라지고 나는/ 다리를 모두 벌린 채 다른 가지에 집을 지었다/ 빗방울에도 쉽게 부서지는 집을//
* 벨벳 거미는 자살적 모성 보호가 있는 곤충으로, 산란 후 어미가 자식들에게 자기 몸을 먹이로 내어준 다. 이는 모성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그리고 그 극단적 모성은 숙명이다. 자식의 미래는 어미 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는 이것에 관한 다큐를 보고 엄마에게 욕을 하셨다. “거미 같은 년"이 라고.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엄마는 아이처럼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서럽게 울었다.

경진이네 ㅡ원룸 / 이소호
애인은 무릎이 나온 바지를 입고 나는 그보다 더 나온 무릎으로 방바닥을 기고 엎어진 상처럼 운다 맥주 같은 서른 그보다 한 병 더 까먹은 나는, 좆처럼 물면 희박하고 불면 무한한 밤이 완성되고 또 또 울면 여자가 된다 나는 여자처럼 새끼의 그늘이 된다 새끼는 뒤꿈치의 옹이에 붙어 나를 빨아먹고 직박구리처럼 신음한다 나를 빨던 애인은 내 시가 구리다고 했다 내가들었다고 더럽다고 했다// 나는 다 자란 애인을 남편으로 고쳐 적는다// 그러니까 남편/ 늙으면 죽어야 해// 잘하면, 늙어 죽을지도 몰라/ 냉장고에 꽁꽁 얼린 한 움큼의 남편, 남편의 뺨을 개수대에 치대 본다 방바닥에 쾅쾅 치대 본다// 왜 우린 그대로지?//
네년이 나를 떼어 먹으니 그렇지/ 입이 있음 처먹지를 말든가/ 말을 마//
거짓말/ 네놈이 나를/ 살림을 같이 파먹고 살아서 그렇지//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 주둥이를 사왔다 남편은 비닐봉지를 비집고 나와 내 종아리를 꽉 물었다 물고 덤벼도 빛처럼 나는/ 척추를 한껏 오므리고, 남편 이에 정수리가 눌린다 빛처럼/ 벌어진 입이라고 벌린 입으로 남편은 내 시가 구리다고/ 했다 들었다고 더럽다고/ 했다 나는 오징어처럼 질겅질겅 씹히고/ 나 말고/ 그년은 다시 남편을 향해 맥주 한 병을 더 따고//

경진이네 ㅡ5월 8일 / 이소호
그날은 할머니 비가 오고/ 아버지의 넥타이를 가슴에 묶어 자른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비옷을 잘라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호상이든 죽상이든// 그날이면 할아버지는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온 가족의 머리를 깎아 제사상에 올렸다 홀수여야 하는데 우리는 둘둘 넷이잖아 어떡하지? 아빠는 밖에서 다른 여자를 주워다가 머리를 깎여 우리 집 식탁에 앉혔다 자 이제 우리 모두 모였구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보살의 마음으로 까까머리가 되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밥상의 머리 사과의 머리, 배 머리 밭머리 깃머리 모든 머리를 잘랐다 홀수가 될 때까지 계속 계속 머리를 잘라/ 상에 올렸다// 누군가는 늘 외로웠다// 아버지는 제기 위에 온 가족의 손바닥을 두고 못을 쿵쿵 박았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단다 가족이니까 아빠는 마지막으로 못 머리를 자르고 영원히 뽑지 못하게 두었다.// 이제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흰 쌀밥에 숟가락을 꽂고 찬물에 말아 먹었다 한지에 붓펜으로 우리 이름을 적고, 서걱 서걱 과도로 우리를 갈라 먹고 그렇게 우리는 글이 되었다 우리는 문장에 머물렀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 꾸깃한 종이로 서로를 감싸 안고 까맣게 까맣게 종이를 채웠다// 그날부터 우리는 언제나//

루즈벨트 아일랜드 / 이소호
빛 속에서 그늘을 들쳐 업고 너와/ 섬에서// 물담배 피우고 싶다. 글라스로 와인 한 잔을 시키고 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럼 넌 내 눈을 보고 그림 이야기를 하겠지. 여러 개의 시선이 뒤섞인 세잔에 대해서. 세잔을 말할 때 반짝이던 네 눈에 대해서, 쓰겠지. 좁은 캔버스에 갇힌 검은 침대와 컵과 흰 장미를. 한 쌍의 브래지어를 우리에게 채우는 나라에 대해서. 그럼 우린 왜 이 순간이 위대한지 말하겠지. 우린 섬에서 또 다른 섬에 가 눕겠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네 방에 앉아서 맨해튼을 바라보겠지. 내일은 그랜드 센트럴에 가서 우리 주니어스 치즈케이크를 먹자. 먹으면서 왕가위 영화를 보자. 이랑의 노래를 듣자. 들키지 말자. 그리고 우리 참 지질하다고 웃겠지. 목에 커튼을 걸고 거울 앞에 서서 우린 잘 어울린다고 말하겠지.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째서 사랑이 아니야?// 웃겠지// 내가 돌아가는 그날은 눈이 아주 많이 왔다고 네가 그랬다. 뉴욕에 있는 사람들 그 누구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그랬다 네가.//

마시면 문득 그리운 / 이소호
소호 뭐해? 다른 사람들한테 아직 내 이야기 안 했지? 나중에 우리 여행 갈래. 이 말을 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고 그냥 오늘 너무 슬퍼.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나 있는 곳으로 올래? 여기 연남동이거든 택시 타면 금방이야. 이상하게 술 마시니까 네 생각이 나네. 그냥 너 같은 여자랑 사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 생각. 아니다. 우리는 남들처럼 그렇게 유치하게 만나지 말자. 그냥 좋으면 좋은 대로. 나는 소호가 쿨해서 좋아. 예술하는 여자들은 보통 여자들이랑 다르잖아. 자유롭잖아. 얽매어 있는 거 싫어하지 나처럼. 그러니까 구속하지 말자. 마음이 서로 맞는다는 게 중요한 거잖아. 그냥 이렇게 만나서 술 먹고 더 맞으면 자고 그러자. 야 우리가 무슨 사이냐니. 그게 뭐가 중요해. 너나 나나 나이 먹을 만큼 먹었잖아. 도대체 네가 생각하는 연애의 기준이 대체 뭔데? 남녀가 정기적으로 만나 놀고 먹고 자고. 그거 우리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 꼭 연인끼리만 그런 걸 해야 해? 난 아직도 네가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어. 여자들은 정말 이상하지. 멀쩡히 잘 만나다 꼭 이러더라. 됐어 기분 다 망쳤어. 너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볼 줄 몰라.//

마망 / 이소호
나는 자궁/ 대신 붉은 실 더미에서 태어났다/ 아빠가 운명이라 믿는 년들 사이에서 실을 꿰매는 동안/ 엄마의 바늘구멍은 점점 넓어지고/ 그년의 구멍은 점점 좁아졌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자라는 중이야/ 말씀을 섬기고 믿음을 가지렴// 아빠가 손끝으로 놓친 몇 개의 올/ 사타구니 위 풀린 올에 목을 걸고/ 엄마는 울었다 실타래로 십자가를 묶는다 엄마는/ 십자가를 다리 사이에 꽂고 빌었다// 아가, 외로울 때 신을 믿으렴/ 신을 믿는 사람들은 다 착해// 그럼 아빠는요?/ 아빠는 모두를 사랑한단다 죄라면 그게/ 죄란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믿음의 축척을 재려고/ 아빠의 발바닥만큼 기었다/ 주상절리처럼 툭툭 끊어진 대화// 엄마가 막달레나에서 성모 마리아가 되어 가는 동안/ 나는 바늘구멍을 보듯/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우리를 보았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이어 붙인 운명선을/ 운명선을 맞대고 새벽마다 기도하던 두 손을// 이제 우리는 천국을 향해 자라는 중이야/ 말씀을 섬기고 믿음을 가지렴// 아빠에게 젖을 물리다 아빠에게 물린 엄마// 밀실, 붉은 방, 출구 없음// 4월 4일 고난 주간/ 오늘도 꽃피우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나는 메시아로서 몽우리를 피우려 하였다 바람처럼, 나는 모두를 사랑하나니 모든 자매님들을 사랑했나니// 4월 5일 부활절/ 아버지 나를 사랑하시니 꽃을 피우라 마리아의 젖가슴을 빨던 그때처럼 오직 나만을 아끼고 사랑하라// 바늘을 들어 아빠의 말씀을 수선하는 엄마/ 아빠의 머리털을 쥐어뜯고 다시 꿰매는 엄마 아빠를 기르는 엄마 젖을 먹이는 엄마 혓바닥이 헐 때까지 엄마는 계속해서 아빠의 기둥을 세웠다 이제 아빠의 모든 말씀은 희미하다// 엄마는 가족을 사랑했단다 죄라면 그게/ 죄란다// 집이 자란 만큼 바늘도 자랐다/ 문도 창문도 자랐다 밀실처럼/ 어둠 속에서 엄마는 손가락에 몇 개의 코바늘을 더 걸고/ 그년들과 아빠 목에 딱 맞는 붉은 스웨터를 입혔다/ 붉은 방, 아빠는 사지를 뒤틀고 웃었다/ 나는 그년들과 아빠가 붙어먹는 모습을 훔쳐봤다 거기,/ 한 쌍의 베개를 비집고/ 바늘을 바짝 세우고/ 엄마는 말했다// 너무 미워하지 마/ 아빠는 모두의 아버지란다/ 하나님 아버지가 모두의 아버지이듯//

함께 세우는 교회 / 이소호
섬에 갔다// 아버지는 언제나 기도를 했다/ 무너진 교회에서 자매님과 자고/ 이미 지은 죄를 입고 그 위에 예복을 입고/ 우리에게 축복을 내렸다// 아버지는 일요일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비밀을/ 용서하셨다// 우리는 뜻에 따라 두 손을 모으고 지붕이 없는 비밀에 대해 생각했다/ 루프탑에서 기도 끝에 죽은 동물을 즐겨 먹었다/ 할랄, 알라의 이름으로/ 자매님의 자궁 속 루프를 생각했다/ 숨소리까지 루프를 걸었다/ 루프를 건 모든 것들을 지키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엄마와 나는 바짝 손톱을 깎아 놓고 잘못 깎은 손톱이 여기저기 튀어 오르고 옛날이야기처럼 아버지 거기는 팔뚝만 한 쥐가/ 되었다 밤이 낮이고 낮도 밤으로 다 가리고 아버지는 이불 속에서 숨죽여 찍찍거렸다 찍찍 믿었다 아래층 침대에 내가 누우면 아버지는 위층에서 침대를 흔들었다 아버지가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렸다 오늘의 말씀 찍찍 아무도 십자가를 지지 않았는데 죄만 있었다// 스팽글을 단 죄들은 빛도 없이 빛났다// 나는 숯을 깎아서 아버지의 비밀을 적었다 여기서는 보이고 거기서는 보이지 않는 말을 뾰족하게 깎아 엄마를 찔렀다// 보이지 않는 빛들이 말처럼 빛났다//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 / 이소호
밤에는 낮을 생각했다/ 형광등에 들어가 죽은 나방을 생각했다/ 까무룩 까마득한 삶/ 셀 수 없는 0 앞에서 우리// 대각선으로 누워 식탁에 버려진 아귀의 시체를 센다/ 삭아 가는 아귀의 눈알을 판다 우리는 저녁으로 아귀가 저지른 잘잘못을 울궈 먹었다 벙긋 벌리고 헤집고/ 닫는다 나는// 곰팡이가 핀 아귀찜의 여린 살을 발라 먹는다 엄마는 부엌에서 아귀를 발라 내게 입힌다 나는 가방도 되고 통장도 되고 남편도/ 된다 면장갑에 고무장갑을 끼고서야 내 손을 잡는 엄마/ 남기지 마 이런 건 가시까지 씹어 먹는 거야 엄마는 내 입을 벌리고 젖을 물렸다 엄마는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하니까 나는 입안 가득 우유를 쏟고 우유가 묻은 팬티를 입고 우유가 묻은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고 삼키지 못해 둥둥 떠다니는 내/ 혀// 두루마리 휴지처럼 흐느끼는 엄마// 엄마와/ 숟가락에 넘치는 아귀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밤이면 낮을 생각했다/ 우리는 식탁을 뒤로 걸었다/ 낯선 곳에 있으면 다정해졌다//

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 / 이소호
말하고싶어? 아프면죽이나끊여먹지왜나한테전화해?나이제욕하는 것도지쳐너욕하고싶은거참고 있는거지그런거지뭐가두려워?나는내모든것을나눠줬는데던만족할줄을몰라이래서난우울한여자는싫어야징징짜지말고똑바로말해그리고말하기전에다시한번생각좀해봐내가이렇게무식한여자랑사귀었었다?너똑똑하잖아그런것아니잖아대화가되잖아그러니까몰아는것처럼행동하지마오빠가차근차근알려줄게다널위한거야야너나못믿는거야?농담인데왜정색을하고그래전에도말했지만니가기세고예민해서우리연애까지불행해진거야다른남자였으면진작헤어졌겠다이번에도봐줬다내가다음부터그러지마정힘들면술마시고잠이나자너그런거잘하잖아어차피너곧풀릴건데지금그냥기분좋게끊으면안돼?아까너입은옷못봐주겠더라돈생기면옷이나한벌사라보세말고브랜드있는걸로나안쪽팔리게야나니까이런소리하는거야나만한남자어디가서못만나오빠는년한게아니라니가변한거야초반엔꾸미는척이라도하더니요즘엔긴장도안하나봐아무튼난바빠서그래그것도이해못해?일없으면취미을가지던가티비를봐나만쳐다보지말고난생산적인여자가좋더라오늘뭐했는지알아서뭐하게그만좀물어봐지금의심하는거야?집착하는것도아니고니가이럴때마다미칠것같아이러니까네가그동안남자들한테차인거야나니까지금까지같이사귀는거야서운하게생각하지마연인사이에이런말도못해?우린이세상누구보다제일가까운사이잖아너생각하는건나뿐이야잊지마그러니까너오빠한테잘해//

비밀리에 암암리에 / 이소호
핑킹가위는 살인을 즐겼다 나는 핑킹가위를 든다는 것만으로도 예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아 초롱초롱 별을 빼다 박은 두 눈을 몇 개의 세모로 만들었다 턱은 보다 갸름한 편이 좋겠다 구석구석 모서리를 만들어놓았다 아아 그런데도 여전히 예뻤다 다이어트가 필요했을 뿐 엄지와 중지를 동그랗게 말아 발목이 가득 찰 때까지 잘랐다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지그재그로 썰린 발가락은 분홍 신을 신은 것 같았다 거꾸로 뛰어봤다 펄쩍! 빠끔히 도망 나온 얼굴만 남긴 채 지퍼를 잠그고 누워, 입 맞추길 기다렸다, 빨갛게 깨어난양 볼. 그런대로 여전히 예뻤디 예컨대 공장장님께서는 갈비뼈가 아니고 만물을 점과 선으로 빚었다 목구멍 똥구멍 속으로 엿 하나를 크게 먹이시고 속을 크게 크게 파냈다 팔과 다리 몸뚱이는 앙상하게 자라 쉽게 툭, 부러졌다 아아, 지겨워라 그냥 내일 쓰레기통에서 침이랑 뒤섞인 채 벼락이나 맞았으면 좋겠다 다음날 나는 옆구리 실밥이 터진 옷을 입고 서랍에서 떨어져 죽었다 미미와 쥬쥬도 다들 그렇게 죽었다고, 언니가 그랬다//

혜화 / 이소호
나는 나 같은 너에 대해 말한다 당신이 파놓은 구멍마다 들어가보는 고양이처럼 너라는 나에 대해 말한다 모자란 2월의 날들을 걸어놓은 옷걸이 푹 삶은 하얀 양말을 신고 건너간 수화기 너머에는 내가 버려놓은 말들이 떨고 있다 먼지 위에 쌓아올린 일기처럼 문턱을 넘지 못한 발가락처럼 나는 나보다 멀리 가 떨고 있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있다// 동그라미를 닮은 정오, 정오와 정오가 붙은 무한한 궤도 조금씩 어긋난 시침과 초침이 동그라미를 자꾸 그린다 동그라미가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 하루 한 번 당신은 동그라미의 갈비뼈다// 침묵은 손톱처럼 길다 네 침대에 놓인 긴 머리카락보다 나는 말이 없다 말을 뒤집어 우리는 뒷면을 응시한다 하루의 뒷면, 칫솔의 뒷면, 크랜베리빵의 뒷면, 미키마우스 티셔츠의 뒷면, 그리고 섬의 뒷면 당신은 잘린 손톱처럼 외롭다 섬, 섬 나는 스위치를 내리고 불 꺼진 등대를 생각한다//

가족에 관한 명상 1 / 이소호
우리는/ 물수제비처럼/ 둥둥/ 물 위를 걸었다/ 내리지 못한 한 덩어리의 우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홈 스위트 홈 / 이소호
가정주부로 살아온 자는/ 죽을 때도 주부로 죽는다// 집안일에는 은퇴가 없으니까// 내 꿈은 가정주부/ 사계절 일용직/ 시인은 비정규직이에요/ 저는 집이 없어요/ 재산도 없어요// 저는 남편을 찾으러 여기 나왔어요// 지금 가족은 너무 낡았어요// 그러니까 내 꿈은/ 은퇴 없이 살고 싶어요// 말을 더 덧붙여야 할까요?// 엄마는 주부, 아버지는 교편을 잡고/ 동생은 호주에서 커피를 내려요// 라고 결혼정보회사에 솔직하게 썼다// 몇 번째인지 모를 그 남자는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이름을 검색했고// 도망쳤다// 무슨 문장이 그를 달아나게 했을까?// 나는// 오늘의 진귀한 불행을 잊을까/ 타자기 앞에 손을 올린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는 소리쳤다/ 딸년은 고고하게 앉아 글이나 쓰고 있는데/ 내가 저 돈을 다 대야 한단 말이야?// 당신도 희망을 버려// 아빠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얼굴 앞에서 거칠게 거수했고, 모서리를 향해 발길질하겠다고, 겁을 줬다 단지 겁을 줬을 뿐인데 내 연필은 부서졌고, 혀로 휘둘렸다// 그날// 나는 방 안에 꼼짝 않고 밤새 노안은 절대로 살필 수 없을 만한 크기의 글씨로 빈 바닥을 조용히 채웠다// 살려주세요//

형상과 그림자 그리고 허상* / 이소호
책을 펼친다/ 한쪽 눈을 감고// 연필에 가만히 네 얼굴을 댄다// 너 그릴 줄은 알고 이러는 거니?// 그럼요/ 말씀만 하세요/ 무엇을 보고 싶으세요?// 다// 나는 종이의 거친 면에/ 흑심이 다 닳을 때까지/ 그었다// 너와 함께 아주 오랫동안// 이 종이가 밤이 될 때까지//
* 안경진 작가의 〈형상과 그림자 그리고 허상〉 제목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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