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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꿈을 걸다 / 남태희

by 부흐고비 2022. 5. 2.

건너편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에 간판이 오른다. 입주를 시작한 지 일 년여, 먹다 버린 옥수수처럼 드문드문 불 꺼진 빈 가게가 현실로 다가왔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서로 들어오려 경쟁을 했을 텐데 팬데믹은 창업의 수요마저 줄게 했다. 한해의 시간을 보냈으나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비어있던 상가에 간혹 새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또 하나의 간판을 달고 있다. 규격에 맞추어 돋아나는 얼굴은 몸단장을 마치고 데이트에 나가는 젊은이처럼 말끔하다. 새 옷을 입은 신입생처럼 기대와 설렘, 불안이 교차한다.

'SKY 영어학원'은 흰 바탕색에 진파랑 얼굴을 걸었다. 울울창창한 미래가 보장이라도 된 듯 간판은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대한민국의 세 개의 명문대학을 합친 sky, 푸른 하늘의 sky, 학원이란 글씨체는 하늘을 향해 비상하듯 끝을 뻗어 올렸다. 등록한 학생들 모두 탄탄대로는 문제없을 듯 간판은 보증서가 된다.

'세탁' 붉은 글씨체가 방금 다림질을 마친 바지처럼 정연하다. 품질보증 세탁소, 수거배달이란 푸른 글씨체는 신뢰감을 준다. 우뚝 들어선 주상복합건물의 2층에 당당히 간판을 옮겨 단 세탁소 주인은 상가의 주인이기도 하다. 임대인의 눈치나 월세 걱정은 싹 사라져 버렸으니 본연의 임무만 열심히 하면 걱정할 게 없어 보인다. 십여 년 전 한 건물에 세를 들어 살던 세탁소 주인과 나는 살뜰히 챙기며 사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의 성공이 기쁜 것은 세입자라는 같은 처지에 처한 적이 있던 까닭이다.

더디기는 하지만 하나둘 간판들이 걸렸다. 편의점, 피아노 교습소, 태권도 학원, 미술교습소, 커피숍, 식육점, 과일가게가 생겼다. 그래도 아직 반을 겨우 채웠을까. 한산한 가게를 바라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유동인구나 고객층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업종을 선택한 것을 보면 살얼음판에 아이를 내보낸 듯 걱정이 앞서 오가며 곁눈질로 살피게 된다.

맥없는 젊은이가 시간을 세고 있다. 새 아파트에는 대부분 주인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게 특약을 쓴다. 애완동물들이 긁거나 배설을 하여 새집에 흠집이 생기거나 냄새가 배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을 모르고 2층에 턱 하니 애완동물 미용과 호텔을 겸한 가게를 차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젊은 주인은 일 년 여의 시간 동안 희망마저 잃어버린 듯 망연한 표정이다.

동종업종이나 상품이 겹쳐지는 가게가 들어오면 난감하다. 식육점 옆 채소 과일전, 부동산 옆 실내 장식 가게는 궁합이 좋다. 하지만 마트가 있는데 편의점이 들어서고 세탁소가 있는 곳에 코인 세탁소가 들어서면 한정된 고객을 나누어야 한다. 소규모 카페 창업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가게를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가 문을 여는 순간 작은 카페는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상가에 간판 하나 올리면 주변의 많은 사람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쳐다본다. 자신의 밥그릇이 줄어드는 일일지 모르기에 여유로운 척하지만 내심 불안하다. 자존심에 대놓고 나가보지도 못하고 창밖에 오감을 집중하느라 죽을 맛인 경우도 있다. 매번 월세 날은 다가오는데 수입은 같은 업종의 숫자만큼 나누어야 하니 심기가 편치 않다. 일면식도 없는 동종업종의 새내기 주인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그 역시 먹고사는 일이다.

최근 가게 앞에 세워둔 세움 간판이 널브러져 있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연이어 몇 번이나 생기자 단순한 실수가 아닌 고의란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짐작이 가는 사람을 함부로 나열하기도 했지만, 짐작은 짐작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시선을 끌기 위해 도로 가장자리에 세워둔 잘못이 있으니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건너 상가를 무연히 바라본다.

무심을 가장하고 건너다보지만, 속마음은 복잡하다. 번듯한 새 상가, 화려한 조명 세련된 간판은 고객의 눈길을 끌 만하다. 반면 오래된 상가주택 한구석을 차지한 사무실에 걸린 초라한 간판이 내 모습인 양 자꾸 움츠러든다. 항상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눈길을 확 끄는 새 간판으로 바꾸어야 하나. 소파 천갈이라도 해야 하나. 실내 장식이라도 다시 손봐야 하나.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 맬 방도가 없다. 간판이란 놈이 고객의 선택범위를 조종하고 밥그릇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듯해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간판은 어쩌면 고객보다 주인이 더 자주 쳐다보는 윗전일지 모른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오래된 상가에는 유난히 간판을 내리고 거는 일이 드물다. 업종제한, 영업시간 제한으로 상인들은 한계에 달했다. 단골이 찾아주는 곳은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그저 하루를 버티어 내야 한다. 불경기에 누군가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 않기에 문 닫힌 상가, 불 꺼진 가게들이 즐비하다. 예전 누군가의 화려한 이력처럼 반짝이던 거리는 일찍 어두워지고 썰렁한 기운만이 감돈다. 흥청거렸던 예전은 꿈이었나 싶다.

봄날의 초록 이파리처럼 한때는 누군가의 희망으로 불리던 간판. 새 상가에 오랜만에 넝쿨손처럼 올라오는 커다란 간판에 한 가장의 꿈이, 딸린 가족의 소망이 줄줄이 따라 오른다. 이 겨울이 지나면 꽃망울이 오랜 숨결을 토해내듯, 참았던 긴 호흡을 안심하며 할 수 있을까. 가족과 친구를 이끌고 음식점에도 가고 소주잔도 기울이면서 왁자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공연장, 영화관도 다니며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진심으로 소망하며 믿음을 가져본다.

승리의 깃발처럼 건물 외벽에 단단히 붙박이 한 간판에 드디어 불빛이 깜박이며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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