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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꽃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 안영순

by 부흐고비 2022. 5. 4.

저녁 산책길에 금계국을 만난다. 산기슭이 물감을 들인 듯 노란색이 일렁인다. 큰 키에 쭉 뻗은 몸매가 이국적이다. 어린 시절엔 못 보던 꽃이다. 그럴 것이 그들의 고향은 북아메리카란다. 무슨 연유로 한국으로 이민 와 다문화 가족이 되어 살고 있을까. 노란 꽃받침과 검은 씨방은 해바라기의 동생일 것 같은 엉뚱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잔디와 클로버 사이에 숨은 듯 피어있는 동색의 민들레가 가엽게 보인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다 했던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다. 엎드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개망초의 큰 키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개망초 꽃은 나름 당당한 모습이다 비록 꽃잎은 작아도 금계국 키와 비슷해서인지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잎사귀도 거의 비슷하다. 꽃 크기와 색깔만 다를 뿐이다. 닮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고향은 비슷한 지역이다. 우리나라에는 구한말에 도입되었으니 어릴 적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던 꽃이다. 왜풀이란 방언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음을 암시한다.

개망초는 우리 어머니들이 입던 검정 치마 흰 저고리를 닮았다. 오래전에 귀화를 했었다고 차림새가 설명을 대신한다. 행주산성 전투 때 치마폭에 돌을 나르던 여인네를 보는 듯하다. 어리숙하고 소박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가냘프지만 강인함이 엿보인다.

바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가 온다. 금계국 꽃대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더러는 못 버티고 아예 드러누운 아이도 있다. 멀대같은 키에 여러 송이 매달린 꽃대가 버거워서 일 것이다. 반면에 꽃잎이 작은 개망초 꽃은 비바람에도 꼿꼿이 고개를 치켜들고 잘도 버티고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게 해준다’는 꽃말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개망초 꽃 밑에 엎드려 있는 듯 없는 듯 피어있는 민들레를 깨운다. 노란 눈꺼풀을 비비고 못 이긴 듯 쳐다본다. 땅 바닥에 달라붙어있기에 비바람도 남의 일 같게 여기는 것 같다. 민들레 잎에 눈길이 간다. 성긴 톱날 형태다. 처음 톱을 만든 사람은 민들레 잎을 보고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민들레가 말을 건다. 엉뚱한 상상이 아니라고. …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이 진보해도 자연은 영원한 스승임을 깨닫는다.

톱날 같은 잎을 보니 옛날 집이 생각난다. 돌과 흙 나무 자연재료로만 지어진 집이 얼마나 가치 있는 집인지 그땐 모르고 살았다. 그 시절엔 톱과 망치 끌 같은 연장뿐이었다. 수동으로만 쓸 수 있는 연장과 사람의 힘으로만 집을 지었다. 그런 집이 몇 백 년이나 잘 보존 되고 있다. 근간에 와서 나무나 흙으로 지은 자연친화적인 집이 주목을 받는다. 진실은 항상 한발 늦게 깨닫게 되나 보다.

여름이 다가온다. 일찍 핀 꽃들이 내년을 기약한다. 씨앗들이 여문다. 여무는 씨앗에도 꽃의 성정이 읽힌다. 금계국 씨앗에는 까맣게 밤이 스며있다. 자신은 지금부터 잠을 잘 거라는 걸 모두에게 알린다. 존재에 대한 확실한 자각이 아닐까.

민들레 씨앗은 잠들지 않는 것처럼 위장술에 능하다. 자신의 몸을 흰털로 위장 한다. 솜사탕 같은 씨앗은 꽃인지 씨앗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꽃 보다 더 예뻐 보인다. 흰털로 덮인 씨앗은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가벼워지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바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 바람이 어디로 데려다 줄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걱정하지도 묻지도 않고 몸을 맡긴다.

코로나가 오기 전, 열 세 시간을 구름 위에 머물다 프라하 공항에 발을 디뎠다. 동틀 무렵 내린 공항 활주로 근처 지천으로 핀 민들레꽃 노란색이 화인처럼 심장에 새겨져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민들레다. 어떻게 하여 먼 유렵까지 오게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누군가의 가방이나 옷깃에 묻어왔을 것이다. 아니면 비행기 바퀴나 날개 위에 탑승한 씨앗이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민들레꽃 덕분에 그곳이 산 설고 물 설은 이국, 프라하라는 사실도 망각 하고 이방인이라는 현실도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고향 까마귀가 여기에도 산다는 사실에 가슴이 따뜻해져 오고 긴 여행의 두려움도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 빠른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펜데믹으로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있다. 백신 접종으로 한 숨 돌리나 했는데 변이 바이러스 생성으로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꽃들이 하하 웃는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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