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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서봉교 시인

by 부흐고비 2022. 5. 12.

서봉교 시인
1969년 강원 영월 출생. 2006년 《조선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계모 같은 마누라』, 『침을 허락하다』가 있다. 13회 원주문학상 수상.

국제PEN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조선문학문인회, 강원문협, 원주문협, 영월문협, 동강문학회, 요선문학회, 형상21문학회 회원.

 

 

 

서봉교시인의서재입니다

시집<계모같은마누라>의저자 서봉교시인의 서재입니다 글과사진 <저작권적용됨>

blog.daum.net

 


밥맛 / 서봉교
오십을 바라보는 집사람이 공부 가기 전/ 식은 밥을 뜨다가 대뜸 쌀 맛이 없다고 한다/ 칠십 넘은 시아부지가 지은 쌀인데/ 내심 괘씸하고 서운해도/ 당신 입맛이 늙었다고 얼버무리는데/ 가슴 한편이 뻥 뚫렸다/ 식구들 모두 목욕탕 가고/ 혼자 밥을 안치는데 쌀이 부족하다/ 이태 전 논농사로 지은 쌀이 동이 난 것이다/ 이미 쌀을 사먹으란 말은 들었는데도/ 모친께 확인전화를 한다/ 아 쌀 떨어졌나 그럼 마트에서 한 포 사라/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화를 끊고 나니/ 이미 아들 가슴은 뚫렸는데/ 노인네 가슴에 또 다른 구멍을 낸 못난 큰아들 귀로/ 모친 수화기 놓는 소리가// 치악산 비로봉의 날벼락 치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겨울 이사 / 서봉교
전세를 사는 것도 죄인지 모르지/ 손 없는 날이라고 받은 날이/ 하필/ 청양고추처럼 매운 날이니/ 복 없는 년은 가지밭에만 엎어진다고/ 해는 치악산 마빡을 비추고 있는데/ 형님 같은 아파트 그림자는 연실/ 이삿짐 곤돌라를 타고 오르고/ 입김은 나오고 해는 저무는데/ 이제 어디로 갈까나/ 보따리 실은 짐차는 더 작아만 보이고/ 오늘 밤은 어딘가에 짐을 풀어 버리고/ 애꿎은 주역의 이삿날만 원망할지/ 전세로 사는 게 죄라면 모르지//

나그네 / 서봉교
살다가 가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싶을 때/ 육신의 허락도 없이 쓴 소주를 붇고는/ 끊어진 필름에 게가 풀린 눈으로/ 널브러진 육신을 내려다보라/ 하고 많은 영혼 중에 나를 만나/ 이 만큼 살아왔으니 그 또한 고마운 일/ 내 원한 것은 아니지만/ 추돌당한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도/ 늘 나를 뒷받침해 주던 것은 너/ 새끼도 한둘이 아닌/ 넷을 터울 두며 낳던 쉼 없는 작업, 작업들/ 불혹을 넘긴 후에야 제 몸 귀한 것을 알아/ 돌보고 싶은데/ 자연은 소유권이 없어/ 보호해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듯/ 이 몸도 내가 쓰고 있는 한 고이 써서/ 떠날 때 두고 가야지// 우리도 저 먼 별에서? 마실 왔다가/ 잠시/ 육신에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니//

자벌레 / 서봉교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지/ 아부지께서는/ 저 눔이 한자씩 재서 키를 다 타 넘고 나면/ 그 사람이 죽는다고/ 그래서 몸에 붙으면 기절초풍을 했지/ 한 자 한 자 걷는 것을 보면/ 잠시 부러울 때도 있지/ 나처럼 추돌사고로 허리며 목디스크는/ 모를 것 같아서/ 그래도 기를 쓰고 죽을힘을 다해 걷는 것을 보면/ 오라는 곳이 있는 모양인데/ 혹 어제 뒷집에 꿔준 이슬을 받으러 가는 건 아닐까/ 나도 잠시 잊기 위해// 허리 한 번 굽혔다가/ 곧게 쩍 펴 본다//

그게 그런 것 / 서봉교
내 고향의 앞산과 뒷산은/ 일찌감치 제천의 시멘트 회사에서/ 山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상고머리로 깎아버렸다/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산에서 나오던 그 허연 석회를 무쇠솥에 볶아야/ 시멘트가 된다는 사실을/ 마흔이 넘어서야 기억하려 했지만/ 기억은 복원되지 않았다/ 산이 단발령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내 기억도 함께 잘려 나간 것이다/ 사람도 그런 것이다/ 변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좋은 모습은 다시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그런 것이다/ 다 그런 것이다.//

사재강에서 / 서봉교
장마가 몸을 풀고 간/ 강물바닥은/ 됫병 소주병을/ 깨어서 뿌려 놓은 듯/ 새파랗고// 보(洑)밑에 자리 잡은/ 우리는/ 한 사람씩 튜브에/ 몸을 맡긴다.// 삼십여 년 전/ 내가 놀던 그 자리에서/ 내 아이들도 물장구를 친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훗날 내가 죽고 없어도/ 물은 흐를 것인데//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 맨눈으로 보기 미안한/ 파란 강물에서// 장마의 몸조리와 함께/ 그렇게/ 내 휴가도 저물어 간다.//
* 사재강: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천의 옛 이름.

피 빼고 / 서봉교
한 자루에 오십이만 원 하는 강냉이 작석作石을 하는데/ 사십 키로 오백을 넣으란다/ 실 중량은 40kg인데/ 굳이 500g을 더 넣으라는 것은/ 자루 무게 때문이란다/ 자루가 끽 해봐야 50g인데 450g을 더 넣으면/ 그 차액은 누가 챙기나/ 칠십대 중반인 우리 아부지/ 평생 농사짓고 살면서/ 고추 팔 때도 콩을 팔 때도 들깨를 팔 때도/ 피 값이라는 명목으로 준 500g 혹은 1kg들/ 어디로 갔을까// 그 수많은 피, 피 값은/ 40kg 500g도 훨씬 넘은 앉은뱅이 저울 위에서/ 바가지로 강냉이를 덜어내는/ 어머니를 향해/ 아부지 또 후달구신다// “아, 피 빼고, 피 빼고라니까”//

당신이 이 도시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서봉교
가끔은 당신이/ 나에게 가까운/ 이 도시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생각이 날때마다/ 내가 시간이 허락될때마다/ 한 시간 이내로 달려 올 수 있는/ 당신이/ 이 도시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십분을 보더라도/ 함께 식사 할 시간이 부족하여/ 눈 인사로/ 홍차를 한 잔 하더라도/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당신이/ 이 도시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서로 공간을 달리 하더라도/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 만으로 행복하고/ 늘 감사하며 사랑 할 수 있는/ 당신이/ 이 도시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당신이/ 나에게 가까운/ 이 도시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사랑 찾는 네비게이션 / 서봉교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있다면 며칠 일까// 첫사랑은/ 잊는 것일까/ 혹은/ 잊혀지는 것일까?/ 아니면/ 패자의 가슴에 묻는 것일까// 나는 오늘도/ 그 사랑을 잊지 못해서/ 내 마음 속에/ 네비게이션을/ 달고// 첫 사랑의 이름을/ 입력하고서/ 검색을 누르고 싶다// 마음이 가는 데로/ 네비게이션이 가는 데로/ 몸을 맡기고 싶다// 그리고 찾아 나선다// 이리저리 헤메다/ 닿는 곳/ 종착역// 그 곳은/ 언제나 제자리.//

주천장 가는날 / 서봉교
고추 몇근 머리에 인 엄마 손잡고/ 시오리 길 오일장 가는날/ 푸진 손 발걸음에 들뜬 마음/ 흙먼지나는 신작로를 걸으면// 두릉강가의 방앗간 앞에서/ 중방을 지나 명마동 걸널 때 나룻배 타고/ 북적북적한 장터 입구에 오면/ 서로 고추사려는 장사꾼들의 거간질// 고추을 팔아야 장을 보지/ 적당한 정선상회에 팔아 버리고/ 후덥지근한 장터 한바퀴 돌면/ 엄마냄새는 누런 종이쪼가리에 싸인 고등어 내음// 5일만에 왔으니 살것도 많겠지만/ 고무신 몇켤레 난전에서 고르다 놓아 버리고/ 왕방울 눈깔사탕 하나면 만족하는 것을/ 우시장 간 아부지 오기전에 먼저 집을 향하고// 돌아오는 길 구누터에서/ 사주지도 못할 장넌감 사달라고 떼를쓰던 시절/ 어린 송아지 사오시던 큰아버지가/ 데려가서 백오십원짜리 자동차을 사주고// 어미 떨어진 송아지뒤를/ 제방 둑 따라 걷던 길/ 멀리 다래산 산머리는/ 시멘트회사에서 상고머리로 깍아 버리고// 엄마손 잡고 다니던 비포장 길/ 이제는 참 오래 되었다// 승용차 놓고 어머니랑/ 걸어서 다시 가고 싶은 주천 오일장//

조강지처를 바꾸다, 혹은 / 서봉교
실은 보내기 싫은 것이다// 11년 함께 산 당신의 심장을 이식하고/ 돌아가던 길, 계기판에 들어 온 빨간 경고등/ 참 많이도 살았다 우리는/ 289,000키로// 육신도 주인을 잘 만나야 호강을 하듯/ 애들 많고 장거리 출퇴근 하는 지아비 만나/ 매일 왕복 2백리를 오고 가느라니/ 얼마나 고달팠을까// 한창 때는 힘이 펄펄 넘쳐/ 제 주인을 목숨 걸고 구해준적도/ 여러 번/ 그 증표로 내 등에 찍어준 강렬한 화인(火印)// 너의 동의 없이 난 오늘 결정해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몇 군데/ 건강 검진 후 낯선 곳으로 보내려 한다/ 그런데 그거 알아야 해,아니 알아야지// 새로 오는 것도 쉬이 정이 들지 못하고/ 그거 또 새로 가르치고 길들이려면/ 골 아프다는 것을// 그 고마움에 새로 오일 갈고/ 닝겔 맞춰서 보내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기를// 네가 싫은 게 아니라/ 달리다가 네가 설까 그게 두려운 거지// 그것을 내게 들킨 다는 게.//

침을 허락하다 / 서봉교
맞벌이에 시달리다/ 40중반을 넘긴줄모르는 계모랑/ 나란히 팔다리에 침을 맞는다/ 하기야 바쁘게/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세월/ 승용차도 5천 킬로 넘으면 오일을 교환하고/ 사람도 마흔이 넘으면 철이 들지 않던가/ 이젠 내 몸에도 침을 꽂아/ 잠자고 있는 내 몸의 치유능력을 깨우고 싶은 것이다/ 간호사가 계모의 침을 빼는 것을 보고/ 슬쩍 발동하는 장난기/ 보세요 이 사람 찔러야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이에요/ 내가 이런 사람과 20년을 넘게 살았다고 했더니/ 웃는 간호사 뒤로/ 여섯 번째 뺀 오른쪽 새끼발가락 사이에서/ 나오는 저 붉은 선혈/ 아 ! 그래 당신도 사람이였구나/ 애들도 남들의 두 배를 낳고/ 1인 3역을 해내던 강한 당신도/ 붉고 따뜻한 피를 소유한 사람이였구나/ 내 몸에 꽂힌 침을 몸으로 밀어내는 데// 여섯 구멍의 침자리 자리마다/ 차례차례 미안한 눈물이 솟았다.//

도루묵에 대한 예의 / 서봉교
점심 댓바람부터 바람을 잡던 여직원은/ 무신 날 푸대로 그것도 만원에 샀다고 난리 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 찾는 구내식당의 도루묵찌개/ 그저 태평양은 바다도 아니고/ 중눔 마빡 씻은 물은 할아부지라고/ 식사하는 직원들마다 움찔 움찔하는데/ 냉장고 구석의 이슬님을 꺼내서/ 몇 순배 돌리려는데 너두 나두 외면이다/ 굳이 예의를 지키라고/ 한 잔은 해야 한다고 다그쳤지만/ 돌아오는 싸늘한 냉기/ 살 없는 도루묵은 알이 없어서/ 할복도 못하고 탕속으로 깊이/ 잠수를 하는데/ 찌개 맛이 없는 것은 네 탓이 아니라고/ 굳이 변명하기도 미안해서/ 그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낮술로 세잔/ 연거푸 들이켰다.//

황태 / 서봉교
내가 한때는 오대양 육대주/ 태평양 시린 파도를 가르며/ 잘나가던 내 청춘의 운행을 잠시 멈춘 것은/ 옆집 마실 가다가/ 주문진 어부 김 씨의 그물에 걸리면서였지/ 전라도 어느 염전에서 왔다는/ 그 짜가운 굵은 왕소금 세례에/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은밀한 속까지 할복 당해/ 푹 쏟아 놓고/ 산판에서 힘쓰던 뼈만 남은 트럭에 실려 간/ 용평의 황태덕장/ 서정주시인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였다고 했지만/ 나를 이 꼴로 만들어 가는 것은/ 순전히 태백산맥을 타고 넘어오던 그 거센 바람/ 눈 비 맞아 가며 고드름도 붙여 가며/ 강원도의 기나긴 겨울을 나고 난 후/ 우리들은 하나 둘씩 자대 배치를 받는다./ 구이부대, 안주부대, 해장국부대/ 난 운이 좋아 용케 예쁜 비닐 옷 곱게 차려 입고/ 어느 마트에 누웠더니/ 원주 아무개의 아내가 장바구니에 담더니/ 돼지머리랑 막걸리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그 집 마님 승용차 트렁크에/ 명주실로 중요한 부위만 가리고/ 다시 매달려 있더라/ 날마다 소음도 시끄럽고 멀미도 나고/ 나/ 바다에서 나고 이렇게 여기서 마무리 하나보다/ 국거리로 팔려간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주인댁 출근지로 향하는 불쌍한 내 신세야/ 차라리 엊저녁 과음한 사람들 해장국 속에/ 청양 고춧가루로 샤워를 하고 싶은 날/ 그 날이 내가 부러워하는 날// 작은 어느 여름 날/ 삐쩍 마른 나의 건조한 푸념//

남자가 힘을 쓴다는 것은 / 서봉교
사십 넘은 남자가 힘을 쓴 다는 것은/ 새벽에 일찍 서는 게 다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 주는 데/ 앞동의 웬 호피 무늬 바지 아줌마도 힘을 쓰고/ 대충 뒷모습이 궁금한데/ 우리집 쓰레기는 가지가지/ 맥주병,참치캔,화장품,깨진 컵 골고루 한참 분리하는데/ 호피 아줌마는 대각선으로 분리수거함에 넣고/ 끝내고 오는 길/ 애써 나오지도 않는 재채기를 돌려 하는데/ 돌부처 같은 그 아줌마 스마트폰만 엿물 젓듯 휘젓고/ 흑찰강냉이 물 안 붇고 찜 솥에 불을 당긴 마누라가/ 화천 유격장 조교 모자 같은 붉은 안경을 쓰고/ 한마디 한다/ 자 올빼미들 준비 됬습니까?/ 그렇게 벙어리 냉수 마시듯 저녁을 들고// 우리는 각자 방으로/ 힘을 쓰러 간다.//

늙은총각 장가 보내기 / 서봉교
경상도 사는 마흔 후반의 대학 후배 아무개가/ 보기만 하면/ 형님 장가 보내 달란다/ 이제는 형수님 장가보내주세요 까지/ 아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젊어서 깎지 못한 머리를/ 제 부모님도 못한 것을/ 내가 어찌 한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드는데/ 그러나/ 그도 나에게 이야기 안한게 딱 하나 있으니// 나도 중매 서기가 좀/ 거시기 한 것이다.//

쌍용에는 고래가 산다 / 서봉교
영월군 (구)서면 쌍용리에는/ 한 달에 네 번 하나로마트에서 목요일에만/ 공병을 받는 날이있다//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마을 골짜기 골짜기에서 골골이/ 삽둔,무동,후탄,창원리,장장골,멍앗/ 그리고 방산미까지 빈술병을 싣고/ 공병을 핑계삼아 쌍용장에 오는 나그네들/ 농협 마당에 쌓이는 공병의 양을 보면/ 모르긴 몰라도 분명 이곳은 바다는 없는데도/ 고래가 사는 것이 확실한데/ 아기 돌고래인지 새끼 고래인지는 모르지만/ 그 커다란 덩치를 어디다 잘 숨기고/ 홀짝 홀짝 이슬을 먹고 사는지// 오래전 두고 온 바다가 그리워/ 人間들 몰래 달래는 슬픔을/ 이슬속에서 찾는 건 아닌지// 오늘 저녁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어떤 방생 / 서봉교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명마동 병창 앞에/ 40여명의 신도들이/ 무엇을 빌면서 방생을 하는데/ 희안하게 그 곳은/ 6.25전쟁 때 엄청난 인민군의 시체를 버렸던 곳이고/ 작년에도 배부른 임산부를 두고/ 젊은 신랑이 물에 빠져 죽은 곳을/ 물귀신이 우굴우굴하다고/ 동네 사람들이 얘기하는 곳/ 아니 가끔/ 화장한 영혼 가루도 뿌리는 곳이라/ 그것을 알리 없는 무지한 중생들이/ 빌고 있으니/ 누가 누구에게 누굴 위하여 빈다는 것인가// 알고 빌던가/ 혹은 모르고 빌던가//

인연설(因緣說) / 서봉교
십 수년전 알전 남쪽의 독자분이/ 갑자기 연락이 끊긴지 8년만에 연락이 왔다/ 서로의 반가움에 8년간의 안부는 묻지도 않고/ 스마트폰이 겔럭시 21이 새로 나온것처럼/ 현실적인 안부만 물었다/ 그리고 그가 왔다갔다/ 떠날 때 그는 8년전 내 블러그에서 알던/ 어느 시인을 찾고 있는데 알려 달란다/ 그 시인께 아무개분이 당신과 연락을 하고/ 싶다는 데 알려줘도 되냐고/ 모 시인 왈/ 서 시인님 전 새로운 인연을 다시 알기보단/ 이제는 아는 인연들을 하나 하나씩/ 아름답게 정리하고 싶다고// 난 이 말에/ 무릎을 탁 쳤다//

변명 / 서봉교
화장실로 향하는데 온 마누라 전화/ 설날 보너스 받았다고 했더니/ 대뜸 다 보내란다./ 그게 뭔 소리냐고 했더니/ 그 동안 먹고 재우고 빨래 해 준게 어디냐고/ 밥 얻어먹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반문을 하기에//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휴대폰만 끊었다.//

숙명(宿命) / 서봉교
살면서 가장 싫은 일은 진밥을 먹는 일/ 진밥을 먹는 것보다 더 싫은 일은/ 논 바닥에서/ 물에 잠긴 볏단을 걷는 일이다/ 볏단을 걷는 것보다 싫은 일은/ 낟가리 쌓아 놓고 손 없는 날을 골라/ 탈곡기를 빌리는 일이다/ 탈곡기를 빌리는 것보다 싫은 일은/ 다 여믄 벼이삭들이/ 태풍을 맞아 맥없이 쓰러진 것을/ 3박4일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일으켜 세우는 것보다 더 싫은 것은// 그런 것 운명이라며 받아 들이는 일이다//

온달족발집에서 / 서봉교
원주시 단구동 온달족발집에서/ 매운 족발을 씹다가 문득 그를 만났다/ 그래/ 보신탕집 이름이 된 연개소문보다야 났다는 것을/ 누가 나를 찾겠어 1,300년도 더 된/ 나를/ 매일매일 찾아주는 도반들이/ 정겨운 벗이지/ 가끔은 온달산성을 찾아주는 이도 있더라고/ 원주 사는 서 시인이 작년 문학기행때/ 글쎄 단양 대강막걸리를 사왔더라고/ 산성에서 한잔하고 남은 막걸리를/ 성 밖의 군사들에게 부어주더군/ 감동이였제/ 지금 말하지만 아차산 전투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 신라군을 막으러 갔지만/ 평강공주를 두고 가기가 그랬지/ 이 말을 끝으로 또 한마디 한다// 서 시인 들어봐/ 보신탕집 간판이 된 연개소문보다야/ 내가 더 낫지// 온달족발이//

​시를 쓴다는 건 / 서봉교
사실 시인들은 하 나둘 자신도 모르는 不倫을/ 시와 쌓아 가고 있는지 몰라/ 현실과 영적인 세계를 오가는 그 길을/ 잠시 게을리 한다면/ 그게 가능할지도 몰라// 가끔은 아주 가끔은/ 친한 사람들에게도 외면 당하고/ 세상에도 따돌림 당할 수 있다는 걸/ 시인만 모를 수 있단 말이지/ 벌건 대 낮에도 그 세계를 본다는 건/ 사실 좀 미안한 일이지/ 늘 저곳에 젖어 있다면/ 산다는 건 중요한 것/ 중요한건 산다는 것을 잊을 수도 있지/ 그럼 안 되는 거야// 그건 말이야/ 몇 년전 반계리 은행나무에게 들은 말을/ 옮기지 않은 것처럼/ 반드시/ 혼자만 알아야 하는 것이야.//

이상한 계 / 서봉교
영월군 수주면과 주천면에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처사들이/ 월궁항아 같은 마나님들을 모시고/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딸 셋을 연거푸 내리 낳은 처사들이/ 일곱 명이나 살았는데요// 그 중 무지랭이 중생 한 명이 슬쩍 그들을 모아 계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유사를 뽑아/ 자주 모임을 가졌는데요/ 그때마다 죄 없는 이슬들만 후달궜다지요// 그 중생은 얼마 후 아들을 낳았는데/ 그래도 이 계를 계속 유지하고자/ 정관을 슬쩍 고쳐놨다지요// 다른 처사들 몇몇도 아들을 낳고/ 계원들은 손바닥속의 모래알처럼 모두 흩어졌다나요// 이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시방 생각해봐도 참 신기하지 않나요?/ 어떻게 그런 계를 만들 생각을 하고 또한 이름도 짓지 않고/ 여지껏 유지해 왔는지// 지금도/ 주천 장날이면/ 다래산을 타고 넘어온 바람이 들려주는/ 망산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사람들은 아직도 옥신각신 한답니다//

반계리 은행나무 / 서봉교
오래된 그가 보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가 불러서 갔을 뿐// 말이 그리웠던 그는/ 들어줄 사람이 필요 했던 것이다// 초록 이파리의 초대장을 받고 갔더니/ 연실 이야기한다./ 저러면서/ 입이 간지러워 8백년을 어찌 살았을까// 수 년 동안 묵었던 이야기는 말고/ 최근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지 위 비둘기는 추임새를 넣고/ 앞집의 쇠비듬댁들은 기립을 하는데// 너희는 내 뿌리위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고// 본디 인간이 갈 길과 내 가야 하는 길들이 다르니/ 그냥 그렇게 들어주기만 해도 된다고/ 그러나/ 내게 들은 말은 옮기지는 말라고// 그래도 또 듣고 싶으면/ 다시 와도 된다고.//

주문진 바닷물을 훔치다 / 서봉교
통영 문학기행때/ 거제도 학동해변에서 하루 유 할 때/ 자갈 하나 갖고 나오다 동네 처자에게 혼이 났지/ 몽돌은 거제도 보물입니다/ 가져가시면 아니 아니 아니 된다고/ 문인의 자격으로 갔다가 얼굴이 벌게 내려놓고 나니/ 몽돌이 그것보라고 서로 이죽 거렸는데/ 어제 주문진 해변에서 미역 먹던 조개를 잡아/ 아침 해금물 갈아주려 바닷물 한 바가지 떠오는데/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보는 이도 관심도 없고/ 껍질 속 미물들 몇 시간 살리겠다고/ 도둑 아닌 도둑질을 하고/ 심장이 벌렁 벌렁임을 느끼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일까/ 아직도 미련한 양심은 남아/ 죄책감을 느끼면서 바다를 보는데/ 더도 덜도 말고/ 주문진 바닷물은 딱 그만큼만 있고/ 죄 없는 해변 모래만 용의선상에 올라 시달리다가// 힘없는 사장들을 사정없이/ 내주고만 있었다.//

법흥사 산신각에서 / 서봉교
음력 유월 초 아흐레 손 없는 날/ 일찌감치 법흥사 산신각에 오르는데/ 살생을 하지 말라던 부처님 말씀을 뒤로하고/ 풀 깎는 인부들 예취기의 요란한 독경소리에/ 맥 없이 잘려 나가는 풀들의 주검들/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며/ 약사여래전에 드는 데/ 사자산 벼랑틈에서 메아리로 들려오는/ 부처님 말씀/ 중생아, 중생아,/ 이 어리석은 중생아/ 그게 다 업이고 업일지니/ 너는 그냥 절만하고 가라고// 그러시는 데/ 그러시는 데.//

아빠 시 쓰지 마 / 서봉교
여섯 식구가 둘러 앉아 저녁을 먹는데/ 대뜸 여덟 살짜리 아들이/ 아빠 시 쓰지 마 시 쓰면 다 굶어 죽는다면서/ 우린 식구도 많은데 아빠 죽으면 안돼/ 아빠가 시 쓴다고 늘 자랑스럽게 여기던 녀석인데/ 얼마 전 내 이야기를 맘에 두고 있었나보다/ 시만 쓰면 굶어죽는다고/ 시가 밥도 안 되고 돈도 안 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여덟 살짜리 아들은 이미 깨달은 거다/ 그래도 뭐 하나 써보겠다고 끙끙대는 사람들도 허다 할 텐데/ 아빠는 그래도 직장이 있잖아/ 대한민국의 시인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할까?/ 심란하게 몇 술 뜨고 일어나려는데// 아빠 시 쓰지 마 굶어 죽어/ 또 한마디 한다//

껍데기는 가라고? / 서봉교
부여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날/ 사무국장은 일정표 밑에 그의 시를 넣었다/ 진천을 지날 무렵 어느 시인이 낭송한/ 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버스의 40명 문협회원들 평균나이가/ 쉰 살도 훨씬 넘었는데/ 껍데기는 가라니/ 참석한 회원들 전부가/ 아들 딸 하나에서 많게는 다섯 명까지 낳은/ 빈껍데기들 아닌가?/ 알맹이는 집에 두고/ 이런, 껍데기만 왔으니/ 生家랑 문학관을 돌아보고 잔디밭에서/ 기념촬영을 하는데/ 서른아홉에 돌아가신 신동엽시인이/ 손을 저으며 얼른 가라고// 미소로, 껍데기들은 얼른 가라고/ 배웅을 해주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 서봉교
그 곳에서는 부끄럽지 않단 말이야/ 가식을 훌훌 벗고/ 한 치 아니면 세치들이 자존심을 앞세워/ 아랫배에 힘을 주고 들어서면/ 겸손한 물들은 알아서 드러눕고/ 세상을 다 만져 본 듯한 거북이 등가죽 같은 손바닥으로/ 욕심을 밀고 육신을 밀고/ 거품처럼 빠져 나가는 제 살점의 일부/ 그랬을 거야 그도 그 옛날/ 가마솥에 물을 데워 고무 함태기에서 등을 밀어주던 어머니를/ 뜨거운 탕 속에 엎드려 발장난을 하며/ 떠 올릴 거야/ 시방 잠시 떠 올릴 거야/ 벗고 살던 시대에는 욕심도 근심도 없었다는데/ 아직 세상이 이 만큼 유지되는 것도/ 일주일에 한두 번 목욕탕에서/ 옷을 벗어주는 사람들 염원 때문이라는 데// 아 시원하다/ 참 시원하다.//

증축 그리고 신축에 관하여 / 서봉교
주천 지서 옆 사거리/ 오래된 전파사 건물을 뜯는데/ 시장사람들 기억도 함께 헐어내고 뼈대만 남겨뒀다/ 칼국수를 먹고 오던 직원들이 신기한 듯 물었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 부수고 새로 지으려면/ 비용과 세금 행정절차가 쏘가리를 작살로 찌른 후 뺄 때처럼/ 아주 복잡하고 조심스럽다는 것을/ 여자도 결혼 전 이눔 저눔 만나보다 식을 올리면 초혼이고/ 첫날밤도 수 없이 치렀으면서도/ 정식 결혼 후 치루면 그게 첫날밤이라고/ 뭔 말도 안 된다는 여 직원들 말을 뒤로하고/ 그 집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지붕도 없이 뻥 뚫린 지붕위에서/ 날아온 시멘트 가루가/ 짓궂은 장난 그만하라고 눈 속에 들어가/ 알 수 없는 묘한 눈물을 밀어 냈다//

짜개라는 의미 / 서봉교
어린 시절 집 앞 강에서 잠수를 하면 꼭 들려보는 *짜개/ 그 곳은 늘 쏘가리집이였다/ 한 마리 찌르고 나서 다음에 가도/ 꼭 돌 세간에 붙어있는 쏘가리/ 우린 쏘가리 바위라 부르기로 했지/ 짜개도 사람으로 말하면 쉼터라고나 할까/ 저 강물 속에도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어/ 강한자만이 아니 쉬고 싶은 자만이/ 짜개에 몸을 넣는가 보다/ 열 서너 살 때 본 짜개인데/ 나도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내 몸도 이젠 짜개가 그립다/ 아니 쏘가리가 되고 싶다/ 그렇다고 잡아먹을 사람이야 있겠냐만은/ 짜개에 몸을 쉬고 싶다는 것은 폭풍과 장마에/ 시달린 탓도 있겠지만/ 그런 바위가 다 사라져 가는 요즘/ 사람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짜개 하나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은 아닌지// 오늘 저녁 곰곰이 찾아 볼 일이다.//
* 짜개: 물속에 갈라진 바위틈을 강원도에서는 짜개라고 부름.

임플란트 / 서봉교
*영원 산성 입구 모랑가지 삼거리/ 높은 언덕에/ 식전부터 한창 임플란트 공사 중/ 승용차도 10년 넘으면 수리비에 목돈이 들고/ 사람도 마흔이 넘으면/ 생애 전환기 검진을 받지 않던가/ 평창 동계 올림픽덕분에/ 새 도로가 어디로 뚫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래도 조강지처가 제일이라고 하는 임플란트/ 오가는 승용차 교통정리를 하는 남자 간호사/ 오른쪽이 빈 소매다/ 언젠가 그도 양팔로 뜨거운 세상을/ 으스러지게 안은 날들이 있었으리니/ 왼 팔의 수신호를 받아 그 옆을 지나는데/ 산사태 방지공사보다// 그 사람 오른팔에 잘 맞는/ 임플란트 하나 심어 주고 싶었다.//
* 영원산성: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에 위치한 산성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궁예가 치악산 석남사를 근거로 여러 고을을 공략하였을 때 이용하였을 것으로 전해지며 신라 문무왕때 축조되었다고 한다.

소주 한 병 / 서봉교
일주일을 혹사한 몸들이/ 금요일 저녁 회식을 하는데/ 사람은 여럿이라도 소주는 꼭/ 한 병만 시킨다/ 한 병 돌려봐야 일곱 잔 반인데/ 추가 할 때도 또 한 병이다/ 이른 초가을 새벽 샆속의 민물고기들처럼/ 손님들은 오글오글 하고/ 홀에서 심부름 하는 사람들도 널 뛰듯 죽겠다는데/ 너도 나도 한 병, 한 병이다/ 아니 두병씩 시키면 안되냐고요// 뭐/ 밤술은 홀수라고/ 먼 귀신 닭다리 뜯는 소리여.//

서러운 홀아비들의 저녁식사 / 서봉교
나무가 겨울을 나려면 물이 내리듯/ 새해를 맞기 위해 달려온 12월// 모친 출타중인 본가에/ 사랑방 누룩 뜨는 냄새의 아부지가/ 10년 전 끊은 담배의 마른기침으로/ 기다리시는 곳/ *우무실// 꽁치 통조림을 콘크리트 반죽 비비듯/ 김치와 섞어 버리고/ 여름 낮/ 가마솥에 삶다 식은/ 바가지의 속 같은 찬밥을 떠 넣으면// 먼저 드시고 내내 기다리던 아부지는/ 강아지들이 어미젖을 다 빨고 난후/ 어미개가 밥그릇을 당기듯/ 식은 꽁치찌게에 김 나간 소주를 쏟으신다// 한 잔 거들고 싶은 욕망이/ 발정난 황소처럼 들지만/ 그래도 꾹 참고 침묵하는 게 좋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들은 불혹을 넘었을 거고/ 언제 또 다시/ 모친 출타하고 둘이 오붓하게 식사를 해 볼까// 오늘 밤 각자의 방에서 비름박을 긁으면서/ 또 다른 꿈을 꾸리라/ “아부지 한 잔 하시죠”/ “아들아 한 잔 할까”// 낼 아침 *설귀산의 겨울안개가/ 마른 메아리로 녹을 때까지.//
* 우무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3리지명 우물이 난다고 유래됨.
* 설귀산(雪龜山) :영월군 수주면 중방동 위에 있는 산이다. 주천 구누터에서 바라보면 거북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상이다. 산 전체가 푸른 소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는데 불정사(佛精寺)쪽은 꼬리 부분이 된다. 겨울철 눈이 내리면 마치 흰거북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인다.

조의금 / 서봉교
같은 직장에서 20년 넘게 함께 근무하던/ 띠 동갑 형님이 소천 하셨는데/ 살아생전 문병 근처에도 못 갔다/ 산다는 게 뭐 그리 바쁜지/ 같이 근무하던 시절/ 나도 다른 직원들도 그 형님 도움/ 참 많이도 받았는데/ 막상 부고를 듣고 야근을 하느라고/ 서랍 속 봉투를 꺼내서 조의금을 넣는데/ 하필 주머니에 삼만 원만 있을 게 뭐람/ 같이 근무했던 정으로는 오만원도 십만원도/ 더 넣어야 하지만/ 그냥 넣어 보내면서 왜 그리 미안한지/ 사람은 누구나 저승 갈 때 삼십 원만 갖고/ 간다고 하지 않던가?/ 삼오제 지난 후 그 형님 맏이를 만났는데// 형님을 만난 듯/ 내내 미안했다//

조만간 사라질 말들을 위하여 / 서봉교
봉당,구들,아랫목,웃목,지게,지게작대기,바지랑대,이엉,멍석,소여물통,이엉/ 멍석,묵낫,양낫,소죽가마,소두방,소죽부엌,소여물,보고래,멍애,도리깨,콩깍지,/ 댑싸리비,싸리비,댐박,접때,갯따가,물래,메했다,깍지깡,묵구구덩이,손칼국수/ 홍두깨,국시안반,국수꼬리,문풍지,창호지,엿,수수엿,수수부꾸미,묵구시래기/ 들기름,벌초,성묘,상여,선소리,제사,세배,차사,곡소리,상옷,이장/ 어디 이뿐이랴/ 혹 더 사라질지도 모르는/ 부모,형제,아부지,어머니,오빠,언니,동생,형,누나,사촌,오촌,육촌,사돈까지/ 수천 년 내려온 말들의 부스러기가 살고 살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얼마나 귀한 언어들이 빠르고 각박한 시간들의 핑계에 쫓겨 사라질까?/ 사형선고를 받은 시한부 생명들처럼/ 2010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오늘도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를/ 맨발로 살고 있다//

주천(酒泉)의 연(蓮) / 서봉교
*주천(酒泉)// 그 곳에 가면/ 샘(泉)에는 술(酒)이 솟고/ 논에서는 연꽃이 핀다는데// 아주 오래 전/ 심청이가/ 용궁(龍宮)에서 타고 왔다는/ 꽃 봉오리/ 하늘의 仙女들은/ 모두/ 어디로 숨었을까// 이렇게/ 고운 색 비단들을/ 형형색색(形形色色) 펼쳐 놓고/ 사슴들의 눈이 무서워// 차마/ 날개옷(天衣)을 짓지 못하니// 그냥/ 두고두고/ 볼 수밖에.//
* 주천(酒泉):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지명. 샘에서 청주가 나왔다는 전설이 있음.

​돌아가는곳 / 서봉교
고추 모 가식하다 하우스에서 발견한/ 꿈의 주검 하나/ 작년 여름 그렇게 울어대던/ 수 많던 곤충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구제역 처방전처럼 몰살처분 한 사람도 없는데/ 흔적도 하나 남기지 않고/ 썩을 시간도 부족한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가버리고/ 또 올 때는 누군가 전체 문자 메시지를 보내겠지/ 한 겁도 못 사는 세상을/ 미물들은 일 년을 한 겁으로 살면서도/ 순리를 거르지 않는데/ 그들보다 100배는 더 사는 인간세상은/ 부끄러우니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까//

아내의 비밀을 엿보다 / 서봉교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는/ 마술의 주기를 알지 못했다/ 아니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결혼 18년차, 살면서 늘어가는 새치를/ 발견 하기란 쉽지 않은 일/ 세면장에서 몰래 몰래 희석한 검은 옻을 칫솔로/ 바른 다는 것을 안지는 몇 해 되지 않는다/ 아침 식탁에서 아주 당당히 젊어지는 약을 섞는 아내를 보고/ 아! 이제 아내도 나이를 먹는구나/ 나란 인간 만나서 남이 낳은 아이의 두 배를 낳고/ 큰 아들 하나 더 키우면서 살다보니/ 고생 끝에 죄 없는 새치만 늘어나는데/ 염색약을 사다 줄줄만 알았지 정작 머리에 발라 주지 못한/ 불쌍한 인간이 나였구나/ 출근 하면서 승용차 미러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 또 보면서/ 염색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휴대폰 단축키를 길게 아내에게 눌러본다.//

법흥사 해우소에서 / 서봉교
법흥사 둘러보고 가는 길/ 잠시 덜으러 해우소에 들렸더니/ 근심을 덜어내는 처사님들이 쭈뼛쭈뼛 서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주머니에서 울려 퍼지는 핸드폰 소리/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앉아서 덜던 처사도 서서 지퍼를 내리던 처사도/ 부엉이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기는 마찬가지/ 도를 깨치고/ 경지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야 굳이 법당뿐이랴/ 그것이 법흥사 마당이던 해우소이던/ 깨치면 될 것을/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울어대는 벨 소리를 그대로 두고 돌아서면서/ 전화는 잠시 후 받으련다.//

*요선정(邀僊亭)에서 / 서봉교
보름이 지나고 달 숨으면/ 요선암(邀仙岩)엔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신선들 서너 분 요선정 마루에서 바둑을 두는데/ 버섯은 평생 따 보지도 못한 중생 하나가/ 감히 선녀들은 훔쳐보지도 못하고/ 바둑 두는 분들께 들킬까 살금살금 송이를 찾아 산에 오르다가/ 눈이 딱 부딪히고 말았다/ 관우같이 길고 흰 수염을 한 신선이/ “헛 고놈 참 제법일세, 내 요선정에서 천년이 넘게 바둑을 두었지만/ 인간이 찾아오기는 처음이야 그래 넌 우리를 닮고 싶은 게냐?/ 아니면 풍류를 즐기고 싶은 게냐?”/ *미륵불의 왼쪽 수염을 슬쩍 당기는데/ 꿀 먹은 벙어리인양 미륵불에 한참동안 합장하고 보니/ 그 신선들은 온데간데없고// 요선정 마당 한 가운데/ 5층 靑석탑만 덩그러니 서 있더라//
* 요선정: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1호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위치 함.
* 미륵불: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요선정 옆 바위 한면에 음각으로 새겨놓은 마애불좌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4호.

​박새의 주검 앞에서 / 서봉교
참 복도 지지리도 없는 년이지/ 지난달 몸을 풀고/ 새끼들은 삼칠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자산 적멸보궁 범종소리로 잔뼈 굵은/ 황금장송의 구멍 속/ 반 득도한 벌레 잡아 새끼들 먹이려다/ 가족건강 백일기도 오던/ 서울 차랑 정면승부를 할 줄이야/ 추돌한 놈도 나도 마음은 하나일지니/ 극락에는 가고 있을 것이고/ 혹 운이 좋아 도니(度尼)의 눈에 띄면/ 장례야 치러 줄 테지?/ 초혼은 하지 말아줘/ 부고도 내지 말고/ 화장은 더더욱 하지 말고// 무심한 수놈이/ 까놓은 새끼들은/ 둥지 채 부처님 전에 올려놓고.//

부부 / 서봉교
좀처럼 샤워를 할 때/ 등을 밀어주지 않는 아내에게/ 새벽 잠꼬대로“여보 등 좀 밀어줘”했더니/ 난데없이 척추가 아파 엎드려 웅크려 자고 있는/ 내 등을 벅벅 긁는 것이었다/ 살짝 실눈을 뜨고/ 덕석을 어미 소에게 씌워주는 주인 눈치를 보듯/ 살피는데 분명 아내는 눈을 감았으렷다/ 그러면서 시원한 등 뒤로 잠시 생각해본다/ 죽어 꺼부러지려고 해도 신랑은 있어야 하고/ 허깨비 같아도 마누라도 있어야 한다고/ 그 긴긴밤 등을 누가 긁어 줄 것이며/ 늙어서 새 따먹는 소리는 또 누가 받을 것이며/ 말 상대는 누가 될 것인가// 짐짓/ 오늘 아침 밥상이 기대된다.//

순대국밥집에서 / 서봉교
주말에도 일에 몰두하다/ 점심시간이 간 줄도/ 몰랐는데// 애들과 아내는/ 문자도 하지 않고/ 자장면을 시켜 먹었단다.// 길 잃은 수캐처럼/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들어간 곳// 사골 순대국 한 사발에/ 뭔놈의 찬이 이리많노// 얼큰하게 양념을 넣고/ 밥을 말으니/ 너무 시원해// 어젯밤 회식한 아내는/ 몸 조리 할 테고/ 면을 먹은 녀석들이 허기 질테니/ 속도 풀리고 애들도 먹이려고/ 안주인을 불러 포장을 부탁하니/ 세 시간 참아서 화장실 가는 여자처럼/ 눈웃음을 친다// 셈을 마치고/ 들고 나서는 데// 내 속 같이 매운 하늘에서/ 옥황상제님이 떡 시루를 엎었는지/ 폭설 내려 주신다.//

이발소 가는 날 / 서봉교
주천에서/ 유일하게 세 개 있는 이발소는/ 매월 7일 날은 사이좋게 문을 닫는다// 6일장을 놓친 아랫골 김영감/ 잠긴 문을 당겨 보지만/ 용빼는 재주는 없는 듯/ 칠십도 넘은 탓에 미용실 갈 엄두도 못 내고// 이젠 할망구 이빨만큼/ 듬성듬성 남은 턱 수염을 쓸어 담으며/ 쩝쩝 입맛을 다시며/ 허 참!/ 나오지도 않는 애꿎은 헛기침에/ 새 시장 대폿집의 정선과수댁이 생각나고// 혈압 약 사오라고/ 세종대왕 몇 분 쥐어주던/ 할망구 체온은/ 아직 오른손바닥에 남았는데// 내 오늘은 필시/ 이 년과 독대해서/ 요절낸다고 객기를 부리면서/ 대포 먹고 남은 돈으로 약을 사 가리라/ 다짐을 하고 또 다짐하고 나서야/ 정선집으로 향하는데// 오늘따라/ 다 죽고 몇 남지 않은 친구 놈들도/ 보이질 않으니/ 이런 횡재를!// 돌아서는 그 모습을/ 이발소 네온사인이 미소를 지으며/ 망산의 빙허루랑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부적(符籍) / 서봉교
하나로마트 서쪽 기둥에/ 하도 쓰레기를 버리길래/ 시뻘건 매직으로/ "제발 쓰레기 좀 버리지 마셈"/ 싸라기 밥 먹은 솜씨로/ 방을 하나/ 거참 신기하게/깨끗해// 무식한 귀신 *마빡에는/ 부적도 안 붙는다는데/ 여름 휴가객들은/ 그래도 유식한가보다// 약藥발을 잘 받는 것이.//
* 마빡: 이마를 속되게 이르는 말.

계모같은 마누라 2 / 서봉교
우리 집사람은/ 술 먹고 늦게 자는 날만 일찍 깨운다// 이슬에 취해 거실에 쓰러지 자다 기상해보니/ 새벽 4시 40분/ TV를 켜고 박지성 축구를 보고 있는데// 5시 20분경/ 마누라 왈/ 자기야 아들 우유 타/ ’네‘// 후반전이 끝날 무 또 한소리 한다/ 밥 앉혀/ 쌀을 담궈났길래/ 그냥 부으려는데/ 큰소리로/ 쌀 씻어/ ’네‘// 어제 직원 문병차 가서 먹은 술도/ 해독이 덜되었는데/ 새벽의 마누라 투정은/ 예쁘게만 보인다// 하기야/ 딸 셋에 아들 하나 키우면서/ 맞벌이 한지가 13년/ 이젠 져야한다// 마지막 남은 후반전 경기의 누스 타임 같은/ 꿀잠에 마누라가 빠져 있을 때// 싱크대에/ 각개 전투로 널브러진/ 그릇들을 정렬해야한다// 손에는 주부 습진이/ 걸리거나 말거나//

계모같은 마누라 3 / 서봉교
우리 집사람은/ 늘 시인들 모임하는 날만 화를 낸다// 어제도 문협일로/ 밤 12시 40분쯤에 들어갔더니/ 밥도 남겨 놓지 않았다// 매일 남편에게 하는 이야기/ 시인들 있구리 터지는 소리한다고//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원룸을 얻어 나가든지 당신이 나간다고// 어제는 큰맘 먹고 이혼 서류를 가져 왔다나/ 아침에 들이밀기에/ 군말 없이 인감도장을 찍어주고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집을 펼쳐 본다// 낼 아침 가정법원에/ 접수하거나 말거나//

맞벌이 낭군의 소원 1 / 서봉교
가끔은 마누라 몰래/ 사무실에 휴가를 내고서/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척 하고는// 다시 들어오는 집/ 마누라는 출근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로 혹은 유치원으로 간/ 그 빈 아파트// 그 널따랗고 허허한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싶다// 아이들 방 정리며/ 급하게 마치고 간 아침 식사의 뒷자리/ 그리고 몇개 남은 빨래들/ 치우다 보면 땀도 날 것이고/ 어느새/ 마누라의 마음을 잠시 느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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