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읽기

별밤에 / 이정숙

by 부흐고비 2022. 7. 5.

해가 이지러질 때마다 비상등마저 없는 순도 백 퍼센트의 어둠이다. 어둠 속에 별들이 등불이 되어 지상으로 총총 걸어와 등대가 된다. 어렸을 적 산골집에서 모깃불 연기가 눈을 찌르는 바람에 하늘을 올려다본 밤하늘이다. 희망과 꿈을 안고 어머니가 누에고치 세 벌 밥 주고 올려다본 그때의 그 별빛, 세월이 지나동경이었던 별이 이젠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했다.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별이 되어 있다니 그만큼 오래 살았단 뜻인가? 이 호젓한 망망한 사막에 혼자 던져져 있는 것처럼 외로움이 엄습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하늘의 별이 된다고 했던가? 홀연히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이 보고 싶어진다.

영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떠난다. 지구 밖 하늘에서 뛰놀며 이승을 바라보고 있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여, 이 땅으로 내려와 내 손을 잡아주오. 나를 기억하는 그들을 마음 안에 담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봄이, 가을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가면서 팽팽했던 사랑도 주름이 지긴 했지만, 나의 가슴에서 그들은 나무가 되어 계속 자랐다. 어느 땐 그 나무에서 꽃도 피었다. 그들을 향한 사랑의 여정은 내 생이 다할 때까지 떨칠 수 없어 계속될 것이다.

별이 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밝은 불빛은 내 기억을 자꾸만 지워 잊혀가고 있었는데 그리움이 다시 해산달(産月)이 된다. 윤동주가 별을 쳐다보고 책상을 같이 썼던 그리운 아이들의 이름 패, 경, 옥 하나하나를 불렀듯이 나도 나를 떠나 하늘의 별이 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둘 불러본다. 관계만큼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해주신 부모님, 오랜 투병으로 고생하다 간 남편, 평생 학자로 살았지만, 자존심이 강해 당신이 몸담았던 대학병원을 거부하고 작은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간 오빠,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노래를 불러주면 마치 노래를 이해하는 듯 눈물 그렁그렁하던 네 살 밖이 아이, 그리고 사랑했던 많은 인연들……. 밤하늘에서나를 내려다보며 초롱초롱 다가오는데 깨금발 딛어도 끝내 손잡지 않는다. 합쳐질 수 없는 이승과 저승의 거리인가.빛으로라도 내려와 편안히 쉬었다 가라고 게르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연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그대들은 빨리 가버렸는가. 생각하면 참회가 많아지는 사람들이다. 조지 무어 말처럼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아 세상을 헤매지만, 집에 돌아와서야 그것을 발견한다.’라고 했듯이 떠나버린 것은 왜 뒤늦게 그리움이 지극해지는가?

내 가슴에 절규와 참척의 아픔을 남겨두고 떠난 이들이 세월로 지워진 지금 다시 이별의 그 순간처럼 아픔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별 하나하나에 그리운 사람들을 호명하며 옛사랑을 끄집어낸다.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 대부분은 스치고 지나갔지만 스밈으로 연이 맺어진 사람은 나름 특별한 관계가 되었었다. 사랑하다가 떠나보내야만 했던 사람들이 몽골의 밤하늘에 별처럼 또렷하게 반짝반짝 빛난다. 이승을 떠난별들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다들 모인 모양이다. 오랜만이라고 서로 수인사를 하는 것 같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몽골에 온 것이 아닌데도 난 지금 슬픔 영혼을 붙들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움에 눈물짓는다.없다고 안 보인다고 모두 사라진 것일까.떠난 임들이여!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 털어버리고 하느님과 즐겁게 지내시다가 때가 되면 나도 불러주시오. 하며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렸다. 별을 쳐다보며 걷다가 웅덩이에 빠졌다는 탈레스처럼 나도 온전히 별에 취한 밤이다. 아니 그리운 임들에게 젖어 드는 시간이다.

현대는 빛 오염으로 그 소중하고 아름답던 별들은 사위어가고 낭만도 점차 멀어지게 하고 있다. 사막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은척박함속에서도 지나간 인연을 소환해 많은 이야기를 하게 했다.사라진 것에 대한 상실과 부재의 고통, 한번 온 것은 가고 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 서글픔과 그리움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인사하고 오늘 밤은 별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아기가 엄마 품에 잠들 듯 감미로운 잠에 스르르 빠져들었다.


 

이정숙 님은 《수필과비평》 등단. 국제 PEN한국본부 전북위원장, 한국미래문화부위원장. 전라북도 수필분과위원장, 가톨릭문우회부회장 역임. 수필집 『지금은 노랑신호등』, 『내 안의 어처구니』, 『꽃잎에 데다』, 『계단에서 만난 시간』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음 동화 / 강돈묵  (0) 2022.07.06
녹음일기(綠陰日記) / 원종린  (0) 2022.07.05
별밤에 / 이정숙  (0) 2022.07.05
화두(話頭), 혹등고래가 풀다 / 김원순  (0) 2022.07.04
황덕도 / 심인자  (0) 2022.07.04
대구탕을 끓이는 시간 / 정희승  (0) 2022.07.01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