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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함께 한 세 사람이 들어간 다방은 한산하였다. 음악도 쉬고 있었다. 별다른 용건이 없었기에 이런 얘기도 하고 저런 얘기도 하는 가운데, 화제가 재주 있는 사람들 이야기로 비약하였다. 화제를 그리로 옮긴 것은 그 자신이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인 가선생이었다.
백낙준 선생과 유진오 선생 같은 장수하신 명사들의 증언을 언급해 가며, 가선생은 춘원의 재주를 말하고 또 육당의 박식을 말하였다. 그리고 그밖의 여러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 화제에 올랐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생존해 있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 가운데서 재주로 알려진 사람들의 이름도 등장하였다.
초인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활기에 가득 차게 마련이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았다는 옛날 장사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일곱 가지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는 천재의 이야기도 그렇다. 그것도 마치 자기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신이 나고 듣는 사람도 기운이 난다.
그날 우리의 담화도 처음에는 그렇게 활기에 차 있었다. 작고한 선인들 가운데는 재와 덕을 겸비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분들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찬양과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진심으로 찬양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들에게로 옮겨지자 사정이 좀 달라졌다. 요즈음은 그토록 큰 재주의 소유자도 적거니와, 재주와 덕을 갖춘 사람은 더욱 귀하다는 투의 비관론이 등장한 것이다.
자연의 풍경은 먼 곳에서 바라보는 편이 더 아름답듯이, 인물도 시간의 거리를 둔 후세의 시점에서 볼 때 더욱 위대하게 보이는 심리가 있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동시대인은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후자에 대한 평가의 태도를 인색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어쩐지 사람들이 점차 좀스러워져 간다는 인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재주가 비상한 사람'은 우리 주변만 하더라도 얼마든지 손꼽을 수가 있다. 그러나 '큰인물'이라는 뜻도 겸한 '대재(大才)'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는 바로 이 사람이라고 누구나가 손꼽을 만한 사람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열대 지방에 가보면 온갖 식물들이 모두 대형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우리나라에 서는 화분에 가꾸기에 알맞은 작은 꽃나무로만 알았던 유도화가 거인처럼 자라서 이층집을 내려다보는가 하면, 기껏 커도 줄기의 높이가 한 자를 넘기 어려운 일년초로만 알았던 생강이 사람의 키보다도 높이 우거져 옛 동산의 작은 대숲을 연상시킨다.
언젠가 필자가 필리핀에 여행했을 때, 장충체육관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수관(樹冠)으로 하늘을 덮다시피 한 거목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신기하기에 무슨 나무냐고 이름을 물었더니, 그곳 소년은 아카시아라고 대답하여 무식한 나그네를 두 번 놀라게 하였다.
인재도 시대의 풍토 여하에 따라서 거대한 인물로 자라기도 하고 잔망한 재주꾼으로 풀리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현대라는 사회의 풍토가 도무지 인재의 구김살 없는 성장을 위해서 적합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치 빠르게 잔재주를 부리지 않으면 자칫 낙오자가 되기 쉬운 각박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먼 앞을 내다보고 느긋하게 자신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재'니 '천부의 재능'이니 하는 말이 암시하듯이, 탁월한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옛적부터 있었고, 심리학자 가운데도 지능지수를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른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운동선수의 소질이 풍부한 어린이는, 어떤 훈련을 쌓느냐에 따라서 세계적인 육상 선수가 될 수도 있고,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될 수도 있으며, 또는 지방 소도시에서만 알려진 삼류 만능선수에 머무를 수도 있다. 사람의 두뇌도 어떻게 훈련하느냐에 따라서 잔재주에 밝은 인품을 얻을 수도 있고, 지덕을 겸비한 대재를 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나 교사와 같은 타인이 시키는 훈련도 중요하지만, 자기 스스로의 정진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훈련은 더욱 중요하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힘을 가진 것은 나 자신의 의지이며, 나의 생애에 대해서 일차적인 책임을 질 사람도 나 자신이다. 바른 뜻과 강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작품화할 수가 있다.
의지는 자유라고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의 의지는 사회 현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재질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사회 현실에 민감하다.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면 결국 그 영향 아래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꼴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대의 풍토가 그 시대에 배출되는 인물들의 규모와 유형을 정한다는 견해에 일리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의 풍토니 사회의 풍조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용감한 사람들은 시대의 풍토에 항거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모든 것을 시대와 환경의 탓으로 돌리고 바라보기만 할 게재도 아닌 것 같다.
졸업 정원제 따위의 괴상한 제도를 도입하여, 영재의 양성을 표방하는 대학의 풍토까지도 각박하게 만든 기성세대가 우선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정자로 하여금 그런 제도까지 창안하게 만든 젊은이들도 시각을 달리하여 우리의 현실을 원대한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한다. (1983. 7. 21.)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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