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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어떤 목적을 세우고 살게 마련이라고 전제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행복'이라는 말을 좁게 이해하여 어려움이 없이 안락한 삶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에 일생을 바친 의사(義士)나 죽음을 무릅쓰고 험준한 고산에 도전하는 산악인의 목적은 안락한 삶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말을 넓게 해석하여 인간으로서의 깊은 만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별다른 무리가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인간을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삶을 갖는 일이다. 인간으로서의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인간다운 삶'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다면, 우리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다운 삶을 갖는 일이라고 일단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삶이 인간다운 삶이냐는 물음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우리네 보통사람들을 위해서는 우선 기본생활의 안정이 있어야 사람다운 삶의 길이 열린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기본생활의 안정 없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보통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네 보통사람들을 위해서 우선 앞서야 하는 것은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생활의 안정이다.

보통사람들의 사람다운 삶을 위한 바탕으로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어느 정도의 건강이 앞서야 뜻을 펴가며 살아갈 수 있거니와, 뜻을 펴지 못하는 삶을 사람다운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건강은 기본생활의 안정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다. 건강이 없이는 기본생활의 안정을 얻기가 어렵고, 기본생활의 안정이 없이는 건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새나 짐승은 건강하게 사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인간 의 경우는 건강한 생존만으로는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깊은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건강한 생존이라는 바탕 위에 무엇인가 더 보태지는 바가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기본생활의 안정과 건강은 사람다운 삶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일 뿐이며 그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기본생활의 안정과 건강 위에 또 추가되어야 할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 아무도 반대할 수 없는 결정적 대답을 내린다는 것은 아마 원칙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인생관을 따라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꾀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옳은 대답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부르는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다.

건강한 생존에 추가해야 할 것으로서 나는 우선 자기 능력의 개발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만으로 깊은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인간에게 생물학적 욕구 이상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며, 그 생물학적 욕구 이상의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정신적 존재로서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고자 하는 욕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잠재력으로서 숨어 있는 가능성이란 본래 개발 내지 실현을 위한 소질이거니와, 인간의 경우에도 각각 자기가 타고난 소질의 개발을 바라는 원초적 소망이 있다. 이 원초적 소망이 달성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잠재능력의 개발이라고 해서 반드시 거창한 업적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크고 화려한 꽃에만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아담한 꽃에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듯이, 비록 작고 소박한 잠재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개발되는 것은 값진 일이다. 각자는 자기에게 가능한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며, 반드시 남을 능가해야 한다는 생각은 경쟁 사회가 빚어낸 그릇된 관념이다.

만족스러운 삶을 위하여 추가해야 할 조건으로서 둘째로 손꼽고 싶은 것은 각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위해서 쓸모가 있는 일꾼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간이 자기의 삶에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공동체를 위해서 있으나마나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기가 어렵다.

공동체를 위해서 쓸모없는 사람이 얼마나 불행한가는 할 일 없는 노인들의 처지가 말해 준다. 옛날의 노인들에게는 어린이를 돌보는 일, 또는 농사를 위한 조언을 하는 일 따위의 구실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가족 안에서 떳떳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핵가족 제도가 일반화하고 대중매체가 날로 새로운 정보와 생활의 지혜를 공급하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구실이 아주 적다. 현대 노인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 점에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앞에서 말한 소질의 개발과 지금 말하고 있는 공동체를 위한 떳떳한 구실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질의 개발에 있어서 성공을 거둘수록 공동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공동체를 위해서 일을 하는 가운데 소질이 더욱 개발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나의 소질을 개발하는 것 그 자체도 뜻있는 일이지만, 개발된 나의 능력은 공동체를 위해서 요긴하게 쓰임으로써 더욱 값진 것이 된다.

만족스러운 삶, 즉 행복을 위해서 세 번째로 추가하고 싶은 조건은 원만한 대인관계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 섞여서 살게 마련이거니와 자기와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과의 인화(人和)가 잘되면 삶이 즐겁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삶이 괴롭다. 개인주의의 심성이 강한 현대인도 사회적 동물이기는 마찬가지여서 타인의 사랑에 대한 소망은 누구에게나 절실하다. 이 소망이 잘 이루어지면 빈곤과 한미(寒微) 속에서도 마음이 풍요롭고, 이 소망이 무너지면 부유와 권세 속에서도 삶이 허망하다.

인화는 개인에게 행복을 약속할 뿐 아니라 집단의 번영을 위해서도 큰 힘이 된다.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들은 기꺼이 서로 돕는 까닭에 기도하는 일이 성공할 확률이 높고, 그것이 원만하지 못한 사람들은 서로 방해하는 까닭에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인화가 잘 되는 집단은 협동과 단결을 통하여 번영으로 전진하고, 인화를 얻지 못한 집단은 대립과 알력 속에서 몰락을 자초한다.

금력과 권력 또는 사회적 지위가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반드시 생각은 그렇지 않더라도 무의식중에 그런 외면적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은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의 일반적 추세이기도 하다.

경제적 가치나 사회적 지위 등의 외면적 가치도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현대 산업사회에 있어서 경제력은 만사의 기본이며, 사회적 지위도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매우 소중한 것은 보람된 삶을 위해서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그것들 자체가 보람된 삶의 핵심은 아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인 인간적 가치 또는 내면적 가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외면적 가치 또는 도구적 가치의 지나친 상승으로 내면적 가치 또는 인간적 가치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음에 현대 문화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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