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바쁘고 바쁜 세상 / 김태길

부흐고비 2023. 4. 27. 09:09

사무장과 경민이는 비빔냉면을 시키고 나는 돌솥비빔밥을 주문하였다. 여자 종업원이 주방을 향하여 "비냉 둘, 돌밥 하나!" 하고 소리쳤다. '열무비빔밥'은 열밥'이고 '콩나물밥'은 '콩'이란다.

배달원 머슴아가 금속 배달통을 들고 비호처럼 달아난다.

돌솥비빔밥을 돌이라 말하고 비빔냉면을 비냉이라고 줄여서 말하지 않는 나 자신도 그리 여유로운 시간을 느긋하게 살고있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다음 손님을 의식하며 쫓기듯 점심을 먹고 나면, 겨우 차 한 잔 마시곤 약속에 묶여서 가 볼 데가 있다. 표가 날 정도로 해놓는 일도 없는 주제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과 몸이 바쁜 일정이다. 명색이 학자 또는 문필가로 되어 있어서,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에도 마음은 이리저리 헤매기에 대체로 분주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연발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나는 바쁘다는 것이 자랑거리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할 일이 없어서 하루하루가 권태로운 것보다는 다소 바쁜 편이 바람직하다고 믿어 왔다. 특히 정년 퇴임을 맞이했을 무렵에는 장차 시간이 남아 돌아가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예상과는 달리, 정년 퇴임 후에도 여전히 바쁜 일정이 되풀이하는 것을 알고 내심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온 지도 10년 가까이 된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바쁘게 돌아가는 나의 생활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문득문득 회의를 느낀다. 세상의 분위기에 끌려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다. 그 옛날 느긋하고 한가롭게 살던 시절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매우 소중한 것이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이 고개를 든다.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떠밀려서 세월을 보냈다. 기왕이면 '업적'이니 '발자취'니 하는 이름이 붙는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성취욕이라는 것은 자칫 사람을 앞만 내다보도록 만들기 쉽고, 과거 또는 현재 속에 담겨 있는 귀중한 것들을 잊게 한다. 앞으로 이룩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무지갯빛 무엇을 쫓는 가운데, 이미 내 손에 넣었던 것 또는 지금 확실히 잡을 수 있는 보배로운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한가롭던 시절에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 앞만 보고 분주하게 사는 가운데 잃고 있는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밝히기에는 나의 말이 부족하다. 다만 다소 막연한 표현이 허용된다면, 그것은 '정(情)'이라는 것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정의 기쁨이라든가 정담의 즐거움이라든가 그런 것들.

청소년기에는 '사랑'이니 '우정'이니 하는 말로 불리는 인간관계를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믿은 적도 있었다. 너무 완벽한 것을 원했던 까닭에, 결국 그것은 비현실적인 소망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으로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 생각하면 길이길이 잊을 수 없도록 신세를 진 사람들도 많고, 현재도 마음과 마음이 가까운 친구들이 적지 않다.

그 잊지 못할 친구들 또는 마음으로 가까운 친구들과 조용히 만나서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웃고 이야기하는 여유가 거의 없다. 가끔 동창회다 축하회다 하는 모임에 나가서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마음을 열고 깊은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모이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고 떠들썩한 분위기여서 농담 섞인 이야기로 웃고 즐길 수는 있으나 조용히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아니다.

'동지애'라는 것은 집단적으로 생길 수도 있으나, 우정은 원칙적으로 일대일(一對一)의 관계 속에서 싹트고 자란다. 그것은 두 사람의 특수한 만남과 관계가 있고, 두 사람의 개성과도 깊은 관계를 가졌다. 깊은 정담을 나눌 수 있기 위해서는 국외자(局外者)의 개입이 없어야 하며, 시간에 구애됨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 그러한 시간을 갖기에는 우리들의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

'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루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이상(李箱)의 저 유명한 '권태(倦怠)'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일제 시대의 가난에 찌든 농촌.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또 어제 같은 나날이 계속되는 단조로움. 오늘도 보는 김서방은 어제 본 그 김서방이고, 오늘 보는 흰둥이와 검둥이는 내일도 또 보아야 한다. 그곳에는 변화도 없고 흥분도 없으며, 희망이라는 것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무작정 넓다란 백지 같은 '오늘'이 되풀이할 뿐이다.

이상이 문학 활동을 했던 1930년대 우리나라의 벽촌(僻村) 젊은 천재 작가 이상은.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권태로움'으로 파악하였다. 조선조 시대의 낙향한 선비들 가운데는 같은 곳에서 '한가로움' 또는 '평화로움'을 발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은 상황이 보는 사람의 주관을 따라서 이렇게 보일 수도 있고, 저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돌솥비빔밥'을 '돌밥'이라고 줄여서 불러야 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오늘의 서울 한복판에서도 권태로운 하루를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한가로운 정담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권태로움에 차라리 빨리 하루 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무료한 노인의 처지를 벗어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한가로움을 즐기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나의 부족함 탓이다.

지금은 직장이나 조직에 꽉 묶여 있는 상태는 아니다. 나의 일정표는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바를 따라서 짤 수 있을 정도의 자유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히 마음이 분주하다. 이런 글을 쓴 다음에도 여전히 또 그렇겠지.

앞으로 기력이 떨어지고 폭삭 늙게 되면 몸과 마음의 분주함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한가로움을 즐기기보다는 권태로움에 지칠 가능성이 높다. 더 늙기 전에 한가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슬기가 아쉬운 요즈음.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