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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에 대한 소질을 타고나지 못했다. 소년 시절에 닭을 그리면 오리 모양이 되었고, 백합을 그리면 호박꽃에 가깝게 보였다. 미술가를 부러워했지만, 화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정확한 말로 나타내는 일은 나에게는 닭이나 백합의 모습을 그리기보다도 더욱 어렵다. 정확할 필요가 없는 말, 이를테면 '안녕하십니까? 하는 따위의 의례적인 인사말이나 그 밖의 어떤 허튼소리라면 별로 부담없이 지껄일 수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이 요구될 경우에 적합한 언어를 찾아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말 가운데서도 정확성을 가장 요구하는 철학의 길을 택한 것이다. 어릴 때 말을 몹시 더듬어서 말을 적게 하는 직업을 원했던 것인데, 어쩌다 엉뚱한 길로 들어선 꼴이 되었다.
말을 일삼는 직업을 가진 탓으로 신문 또는 잡지의 기자로부터 인터뷰라는 것을 요청받을 경우가 있다. 기록이 되어 세상에 공개될 대담이다. 정확한 말을 구사할 자신이 없으니 사양해야 옳겠지만, 세상 사는 도리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설마 무엇인가 할 말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말을 할 의무조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대담의 자리에 마주 앉는다. 그렇지만 막상 말문을 열게 되면 생각과 딱 맞아떨어지는 말을 찾기가 어렵다. 시간은 흐르게 마련이고, 별로 값어치도 없는 말을 잇는 가운데 인터뷰는 끝을 내야 한다.
삶의 지침으로 삼는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우리 집 가훈을 간단하게 소개하라는 원고 청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말로 된 좌우명도 없고, 우리 집에는 말로 된 가훈이 없다. 명색이 윤리학자인데 좌우명 하나 없고 가훈조차 없다니 말이 아니다.
70년 가까운 세월을 아무런 원칙도 없이 마구잡이로 살아왔을 리는 만무하다. 직업이 대학교수라면서 원칙도 없이 아이들을 길러 왔다 해도 말이 안 된다. 바로 그 '원칙'을 말로 집어내면 좌우명이 되고 가훈도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말을 찾지 못했다. 생각이 좀 있기는 있으나 그것이 분명 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생각이 말보다 복잡하고 미묘하기 때문일까.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것은 감정의 심리가 아닐까 한다. 감정 가운데서도 특히 깊고 오묘한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사랑의 색깔은 태양의 빛과 구름의 그림자를 반영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의 표면보다도 영롱하고, 사랑의 마음은 필리핀 동방에 자리한 엠덴 해연 (海淵)보다도 밑이 없다.
내가 누구에게 대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 적이 있는지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우리 조상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형언하기 어려운 심정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 전할 수 있는 사랑보다도 전할 수 없는 사랑이 더 깊은 심정이 아닐까 한다. 마음은 끝이 없는데 말은 사물 또는 생각에 한계선을 긋는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말 또는 말 아닌 무엇으로 그 마음을 전한다. 우수에 잠긴 시선으로 전하기도 하고, 행주치마 끝을 입에 물고 전하기도 한다. 가장 사정이 딱한 것은 사랑할 처지가 못 되는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사랑이다. 그럴 때는 아닌 척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아닌 척해도 속마음을 들킬 때가 있다. 난처한 상황이기는 하나, 이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거니 하며 넘어간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이 흔히 쓰이는 모양이다. 아마 서양 말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사고방식의 변화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유행가 노랫말이나 텔레비전 연속극 등에서 '사랑한다'는 말과 자주 만난다. 상대편의 마음이 못 미더워서 "당신 정말 나를 사랑해요?"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묻지도 않는데 마치 약속어음에 도장을 누르듯이 '사랑한다'는 말에 감정을 싣기도 한다. 분명한 말로 의사를 밝히는 것이니 속 시원해서 좋은 면도 있고, 말에는 거짓이 있을 수도 있어서 순진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폐단도 있을 법하다. 아마 옛 풍속에도 일장일단이 있고, 새로운 풍속에도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약속어음을 함부로 끊는 사람은 부도를 낼 염려가 있듯이, '사랑한다'는 말을 엽차 마시듯이 자주 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적다.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것을 말로 나타내는 것이라면 나쁘다고 볼 이유가 없다. 그러나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깊은 마음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구세대의 생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명랑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고맙다'는 말을 자주 쓰자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의견 같아서 나도 그 말을 자주 쓰는 편이다. '사랑한다'는 말과는 달라서,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으나, 나는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특히 그 말이 잘 나오지 않는데, 그것 역시 내가 구세대 사람이기 때문인지 궁금히 여기면서도 아직 젊은 세대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말이라는 것이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연장은 못 되지만, 그래도 편리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기에 자주 쓰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데도 별수 없이 말의 신세를 지고 있거니와, 말로 생각을 그리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거듭 느낀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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