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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작은 바보와 큰 바보 / 김태길

부흐고비 2023. 4. 26. 09:04

"바보가 되어라."

어떤 정신병 의사의 이 말이 내 마음에 들었다. 요즈음처럼 온갖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긴장을 풀며 살아가자면, 때때로 바보가 되는 것이 정신 위생을 위하여 좋은 방안이라는 것이다.

비단 긴장 완화를 위한 묘방(妙方)일 뿐 아니라, 처세 전반에 걸친 보다 근본적인 교훈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분노와 짜증이 치밀기 쉬운 맹랑한 세상이다.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활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대세가 그렇고 풍조가 그렇다. 사리(事理)를 따지며 흥분해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다. 공연히 신경만 피로할 뿐이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것만 같지 않다. 필경 바보가 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이 된다.

아예 바보가 되기로 은근히 다짐을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바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외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내면으로 옮겨가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제임스와 랑게의 심리설에도 분명 그 비슷한 암시가 들어 있었다.

우선 표정부터가 바보스러워야 한다. 입은 약간 벌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 눈에 광채가 돌거나 날카로운 기운이 서리면 큰일이다. 모름지기 거슴츠레하게 뜨고 끔벅여야 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연습만 좀 하면 그 정도는 곧 익숙해질 것도 같다.

내 서재에는 거울이 없다. 큰 경대가 놓여 있는 안방으로 간다. 마침 아무도 없다. 입을 약간 벌리고 멍청한 표정을 짓는 연습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찰나에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들어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얼른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바깥 날씨가 차냐고 물었다. 다른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 것을 가족이 안다면 실망을 할 것이다. 내가 바보가 된다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사람들 앞에서 바보 노릇을 하는 편이 마음 편할 것 같다. 마침 오후에는 시내에서 모임이 있으니, 밖에 나가서 바보 연습을 충분히 하리라고 마음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서 보니 생각보다 바람이 차다. 걸음걸이가 빠르면 무슨 의욕이라도 있는 사람으로 보일 염려가 있어서 우정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기로 한다. 그러나 날씨가 추운 탓인지 또는 내 평소의 습관 때문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걸음은 다시금 빨라졌다. 한동안 기다린 다음에야 좌석버스 한 대가 달달거리며 굴러왔다. 빈자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오륙 명의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서 앞을 다투다 문득 생각이 난다. 그렇게 약삭빠른 것은 바보에게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멈칫하는 사이에 꼴찌가 되고 말았다. 좌석버스는 천장이 낮다. 키가 큰 관계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되니, 이거야말로 정말 바보스러운 몰골이다. 소원대로 바보가 되었으니 마음이 편해야 할 터인데 중심을 잡기 어려워 몸이 괴로우니 마음도 따라서 편치 않다.

버스에서 내려 회의장까지는 걸어서 오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인파가 길을 메운 까닭에 빨리 빠지기가 어렵다. 사실은 굳이 빨리 걸으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바보로 자처하기로 정했다면 도리어 시간에 좀 늦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시간을 어기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에 눌려서 마음은 자꾸만 초조하다.

제시간보다 좀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머지 두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친구들은 내 안색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요즈음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다. 바보 노릇을 제대로 했다면 마음이 편할 것이고 따라서 안색도 좋아 보였을 것이다.

입을 반쯤 벌리고 눈을 끔벅이며 멍청한 표정을 짓는 따위의 외형(外形)의 변화로부터 시작하여 원하는 바보의 심정에 도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만 같다. 나 혼자 있을 때는 얼마든지 얼간이 같은 표정을 지을 수가 있지만, 남이 보는 데서까지 그렇게 할 수 있기에는 아직도 내 수양이 부족하다. 또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어야 할 터인데, 억지로 그런 외형을 꾸민다 해도 마음의 평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요컨대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웬만한 일은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할 수 있는 대범한 마음이 필요하다. 손해를 보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잊어버리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마음의 여유는 멍청하고 바보스러운 표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개꼬리 10년 묵어도 황모(黃毛)가 될 수 없듯이, 입을 반쯤 열고 눈을 거슴츠레하게 뜨기를 10년 계속한다 해도 결코 대범한 마음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신경에 걸리는 일을 보면 덮어두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큰 바보인지도 모른다. 못마땅한 일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이 오히려 진짜 바보에 가까울 것이다. 신경이 과민하여 작은 일에도 흥분하기 쉬운 것은 도리어 바보들의 특색이다.

알고 보면 바보의 길에서 산지 이미 오래다. 자기중심의 생각에 얽매여 작은 일에도 구애받고 그 구애로 말미암아 마음의 평화를 잃는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라면 거울을 보고 얼간이의 표정을 짓기보다는 별이 가득한 맑은 밤하늘을 우러러볼 일이 아니던가.

만약 자기중심의 생각을 버리고 세상 돌아감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면, 필경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을 잃는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닐까. 자기중심의 사고방식 대신에 일 중심의 의식 구조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일까. 타고난 바보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 그러나 순간적으로나마 가져보고 싶은 심경이다.



김태길(1920~2009): 수필가, 철학자. 호는 우송(友松). 충북 충주 출생. 일본 동경대학 법학부 수학, 서울 문리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국 Johns Hopkins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도의문화저작상 수상했으며, 서울대학교 교수, 철학연구회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윤리학』,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존 두이』, 『새로운 가치관의 지향』, 『웃는 갈대』, 『변혁 시대의 사회 철학』, 『빛이 그리운 생각들』, 『검은마음 흰마음』, 『마음의 그림자』,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흐르지 않은 세월』 등 다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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