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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버지를 읽는 시간 / 문경희

부흐고비 2023. 6. 4. 04:31

모니터가 연신 빽빽거린다. 그래프의 파동도 눈에 띄게 느슨해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의료진을 호출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구경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식이라는 참담한 이름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기기의 타전을 당신의 고별사인 듯 참담하게 받드는 것뿐이다.

​ 아버지는 수식어를 즐기지 않는 분이셨다. 다정다감한 어록을 자랑하는 달변가는 더더욱 아니셨다. 당신 안에서 거르고 걸러진 언어들만 간결체의 어투로 나지막이 발설되곤 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입에서 때와 장소에 위배되는 헛문장이나 비문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 말줄임표가 자주 등장하는 아버지의 수사법은 쉬 해독될 수 없었다. 나는 징검돌처럼 띄엄띄엄 도달하는 몇 마디만으로 미꾸라지 밸 따듯 당신을 건너뛰었다. 오독으로 당신을 헛짚었던 불상사마저 부모라는 무한자애를 뒷배삼아 은근슬쩍 당당했다.

​ 사방팔방 튈 궁리만 하면서도 규칙이라는 안전선을 지켜냈던 것은 당신의 알뜰한 화법 때문이었다. 말하지 않는 당신의 말을 어림치며 지레 나를 단속하곤 했으니, 다다익선만이 진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하여,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조차 당신만의 오래된 문체를 훼손할 의향이 없으신가 보다. 내내 굳건한 침묵만을 물고 있는 입술을 깨울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언제부터인가 현실 밖의 세상을 넘나들이 하시던 아버지였다. 의사는 뇌에 심각한 오류가 생겼다고 했다. 유난히 잦았던 낙상도 그로인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술만이 길이라는 의사에게 이렇다 할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험난할 것이나,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위에 당신을 세워야만 했다.

​ 구새 먹은 나무처럼, 당신은 세월이 만들어 놓은 허방을 수없이 껴안고 계시는가 보았다. 겨우 한 고비를 빠져나오면 또 다른 고비가 발목을 잡았다. 인디언 서머 Indian Summer처럼, 고비와 고비 사이, 그 짧은 시간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안온한 일상의 최대치였다. 결국 당신께는 두 번의 오류가 더 찾아왔고 그때마다 수술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삼세번의 고갯마루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아무리 고달파도 견뎌주셔야만 한다고, 천근만근 무거운 숙제를 당신께 짐 지웠다. 사각의 링에 갇힌 고독한 파이터처럼, 늙으신 아버지는 사력을 다하는 것으로 응답을 주셨다. 덕분에 한없이 강파른 하루들일지라도 끝내 긍정의 문장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 몸무게 49kg, 나이 80세. 언제 그토록 당신을 반납해버렸는지, 차트 속의 아버지는 보잘 것 없었다. 두툼한 양장본의 백과사전 같던 당신께서 납작한 문고판이 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눈 밝던 청춘의 필독서에는 왜 『아버지』가 없었던 것인지, 뒤늦은 후회만 왈칵왈칵 목구멍을 넘어왔다.

​ 내 삶이라는 서가에서 가장 오래 꽂혀 있던 아버지였지만 표지는 물론 속지까지 나달거리는 동안 곰살궂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가깝기에 무성의했고, 늘 그 자리에 계실 것이기에 유예해도 되는 아버지였다. 식상하고 고리타분한 말씀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므로 읽지 않아도 읽은 것과 진배없다는 오만으로 당신을 호도했는지도 모른다.

​ 나는 세상을 닫고 아버지만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채 몇 쪽도 나아가지 못하고 덮어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 다. 어설픈 연민으로 당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겁 없고 외람된 짓거리인지만 거푸 확인했다. 한 생애를 버겁게 이끌고 온 아버지를 읽는 일이란 수많은 자책과 회한과 눈물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 자식이라는 숙제에 떠밀리느라 정작 아버지의 목차에 아버지는 없었다. 그것이 부모라는 이름의 운명이라 눙쳐도 애달픈 일이었다. 당신의 시간 속에 얼룩처럼 번져있는 내 이기利己의 흔적들을 발견하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통한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서야 깨달음을 던져주는 조물주의 빤한 악취미를 비켜가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 벼락공부를 하는 아이처럼 두서없이 아버지의 문장에 밑줄을 그어댔다. 토씨하나도 건성으로 넘길 수 없었다. 불안과 공포가 교차하던 눈빛과 고단함을 달싹이던 입술, 그리고 당신을 훑고 나온 배설의 흔적들까지, 읽을거리는 무궁무진했다. 파르라니 수염을 밀고 민트향 나는 스킨을 발라드리면 푸르던 당신의 한때가 유추되고, 두껍게 자란 발톱을 깎다 만난 티눈은 평생 숨어 흘린 눈물의 은유였다. 나는 말끔해진 당신을 향해 ‘새신랑 같은 울아버지!’라며 흔해 빠진 직유나마 아낌없이 남발했다. 주름진 입술을 비집고 나온 미소는 나를 신명나게 만드는 별책부록이었다 할까.

​ 잠시도 덮어둘 수 없는 책처럼, 꿈속에서도 아버지가 궁금했다. 어제와 달라진 아버지에 환호했고, 어제와 달라져버린 아버지에 절망했다. 당신이 욕심이라면 그 욕심은 점점 남루해졌다. 아버지의 귓속으로 수없이 안부를 여쭈며 아직은 이승을 적고 계신 당신의 주소지에 안도를 해야 했다. 어느 날 문득 눈도 귀도 입도 닫아버리신 것은 끝을 선언하는 당신만의 완곡한 화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의사는 아버지에게 남은 삶이 48시간 정도라고 했다. 허락받은 고작 이틀 동안, 당신의 페이지는 한 줄도 나아가지 못했다. 한 점, 문장부호로라도 당신을 발견하고 싶었지만, 푸우, 이따금 허공으로 게워내는 날숨만이 아버지가 동원할 수 있는 구두점인 모양이었다. 그것의 성분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회한인지, 나는 감히 해석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이제 그래프는 수평선을 닮아간다. 아니, 수평선이 되었다.

​ 의사는 능숙한 손길로 콧줄을 빼고, 소변줄도 제거한다. 비계를 걷어내듯, 당신을 구속하던 링거줄도 하나씩 철거한다. 눈부신 현대의 의술로도 끝내 리모델링되지 못하신 아버지. 야속하게도, 그토록 애타게 꿈꿔왔던 자유는 삶이 끝나는 지점에 예정되어 있었던가 보다.

​ 아버지는 산 자들의 세상을 넘겨다 볼 수 없고, 나는 당신의 절필을 인정해야 한다. 오래 탈고 되지 않을 전설처럼 구구절절 선명한 아버지지만, 떠난 이는 누구나 흐르는 물처럼 잊혀지는 것. 세상에서 영원히 봉인되어버린 당신은 살뜰히 기억하는 이들에게만 드문드문 발췌될 것이다.

​ 사자死者들의 처소로 당신을 모신 밤, 서쪽하늘이 환하다. 죽음, 그 쓸쓸한 퇴장에 바치는 헌사 같다. 못다 둥근 달 하나 조등처럼 걸어두고 삶을 떠난 아버지를 사무치게 읽는다. 축축한 눈물의 붓으로 차마 적을 수 없는 이별을, 이월 열사흘, 기우듬한 달의 정수리에 적바림해 둔다.
// 제21회 김포문학상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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