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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한 여름 햇살이 마을 구석구석에 내려앉는다. 성안숲의 소나무는 강렬한 빛의 기운을 받아 기개에 날개를 달았다. 모습은 드러나지 않지만, 자양분을 위로 밀어 올리고 있을 뿌리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마을 입구로 들어선다. 길게 이어진 돌담길이 굽은 나무줄기 같다. 뿌리가 준 양분을 곁가지로 배달하는 줄기처럼 골목길은 이 집 저 집으로 삶의 지혜를 수없이 날랐으리라.
돌담을 이루는 돌의 모습이 가지가지다. 길쭉한 돌과 납작한 돌, 둥근 것과 모난 것, 머리보다 큰 돌과 주먹보다 작은 돌이 각자의 자리에서 평안을 붙잡고 있다. 이런저런 사람이 만나 서로 보듬고 감싸며 살아가는 한밤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듯하다.
‘골목 끝에 무엇이 있을까.’ 설레는 마음이 걸음을 재촉한다. 돌담을 벗어나자 잔디 깔린 넓은 마당이 가슴에 와락 안긴다. 듬성듬성 놓인 징검돌 끝에 우람한 누각이 앉아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군위 대율리 대청’이다. 조선 전기에 세워졌지만, 역사의 파고를 넘으며 깨어지고 서기를 거듭했다. 대들보에 걸린 대율동중서당(大栗洞中書堂)이란 현판이 부림 홍씨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장소였다고 일러준다. 노래헌(老來軒)이라고 쓰인 또 하나의 편액이 눈길을 끈다.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 담소가 늘 오고 가니 소통은 일상이 되었으리라.
댓돌을 힘주어 밟고 대청에 오른다. 아름드리 두리기둥이 대청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넓은 마루가 벽 하나 없이 시원하게 트였다. 두리기둥과 눈인사하며 한 바퀴 돌아본다. 빗장 없는 골목이 사방으로 뻗었다. 삶의 가시를 안은 발자국이 수없이 이 길을 따라 대청으로 올라왔을 게다. 뿌리가 생명의 물을 줄기로 올려보내듯 대청은 돌아가는 발걸음에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실어 보내지 않았을까.
대청은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마루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도 수없이 들었으리라. 뉘 집 딸이 어느 반촌으로 시집갔고, 누구는 떡두꺼비 같은 손주를 봤고, 비가 오지 않아 벼 이삭이 말라 가슴이 탄다는 이야기.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젖어 오는 물기를 닦아서인지 마루판과 기둥이 원래 색은 간데없고 빛바랜 무채색이다. 숱한 이야기가 스며들었을까. 매끄럽던 바닥에는 갈라진 틈이 즐비하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느라 가지고 있던 진액은 진즉에 말라 버렸다.
어느 해 밤이 토실하게 몸을 불릴 무렵, 한밤마을은 엄청난 산사태와 물난리를 맞았다. 산 중턱을 받치고 있던 돌들이 경사면을 따라 굴러내렸다. 쓸려 내려온 흙과 돌이 길을 막고 장독을 부수고 밭을 뭉갰다. 마을은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날의 일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수마가 할퀸 가슴을 안고 마을 사람들이 대청마루로 달려온다. 대청에 오르자마자 참았던 울분을 쏟아 낸다. 깨진 장독은 사면 되고 뭉개진 밭이야 다시 일구면 된다. 하지만 황천을 건너간 혈육은 부르고 애원해도 돌아오지 못한다. 같은 날 제사 지내야 하는 식솔들의 애끓는 울부짖음이 대청에 가득하다.
가슴속에서 쏟아져 나온 말이 대청 공간에 휘감기며 섞인다. 손을 상한 이는 발을 다친 이웃의 걸음이 되고 발을 상한 이는 손을 다친 이의 주먹이 되자고 다독인다. 거침없이 부는 바람이 하소연을 밖으로 나르고, 서로를 보듬는 말이 아픈 가슴을 삭인다. 마루판 사이에 굳게 선 두리기둥이 중심이 되었는가. 기왕이면 저 돌로 돌담을 쌓자고 마음을 모은다.
‘우리’가 된 마을 사람들이 길과 밭에 뒹구는 돌을 모아 담을 쌓는다. 단란하게 살던 집을 허물어버린 원수 같은 돌, 떠올릴수록 마음을 짓누르는 돌이지만, 고이 들어 차곡차곡 쌓다 보니 꼬여있던 마음이 풀린다. 혹시라도 흘러내릴까 서너 겹으로 두껍게 담을 올린다.
길을 막던 돌이 담에 앉아 정갈해진 골목을 내려다본다. 생명의 씨앗을 실은 바람이 불어와 담장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곳에 삶의 터전을 이룬 호박과 담쟁이덩굴이 돌담과 어우러지며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허문다.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돌을 덮은 이끼도 두터워졌다. 한밤마을의 역사는 이렇게 돌담을 낳았고, 골목골목 돌담에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쌓여있다.
‘대율리 대청’은 여느 집의 대청과 달리 방이나 벽이 없다. 방을 만들거나 벽으로 둘러싸면 마음이 닫히기에 사방을 터놓은 것이 아닐까. 여기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으니 속내와 겉내가 다르지 않다. 나와 남 사이에 선이 없으니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대청을 짓는다. 수백 명이 SNS에서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공간이 따로따로이니 벽을 없애기가 쉽지 않다.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으니 온전히 하나 되기가 어렵다. 카페에서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탁자에 삼삼오오 앉는 공간은 이미 다름을 전제로 한다.
닫힌 공간 속에서 너와 나, 우리가 하나 되는 길은 멀어 보인다. 그래도 대청마루의 트인 기운이 스며들면 SNS나 카페 모임에도 소통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마음속에 한 채의 대청마루를 짓고 ‘소통정(疏通亭)’이란 현판을 단다.
대청의 공기를 크게 마신다. 가슴이 뻥 뚫린다. 오랜 시간 채워졌던 소통이 공간에 가득하다. 안과 밖이 다 보이고 잠금과 닫힘이 없다. 숨김이 없고 막힐까 걱정이 없는 세상이 바로 낙원이다. 열린 공간에서는 마음도 저절로 열리는가 보다. 어디선가 ‘우리가 남이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방이 활짝 열린 대청에 사물을 둘로 가르지 말라는 불이사상(不二思想)의 꽃이 만발했다.
잔디마당 가장자리에 배롱나무꽃이 마당을 환하게 밝힌다. 피는 가지가 다르고 송이마다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색깔은 모두 선명한 홍색이다. 다른 골목길을 달려와 대청에 모여 서로를 보듬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꽃을 보는 듯하다.
/ 2022년 경북문화체험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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