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병원에 다닌 지 꽤나 오래되었다. 의대생으로서 6년, 그리고 환자로서는 11년.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일주일 가량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렸다. 열이 좀 떨어지는가 싶더니 온 몸이 퉁퉁 부어올랐다. 근처 병원에 입원을 하고 이런저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고 심해지기만 했다. 힘들게 추가 검사를 하고 난 며칠 뒤 의사가 병실에 들어와서 부모님을 따로 데리고 나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그날 밤새 울었다.
독서 수업에서 그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순간이 있나요?”
수업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떠올려 보려고 했다. 가족들이랑 바다에 놀러 갔던 것? 강아지를 키우게 된 것? 어떤 게 내 터닝 포인 트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선생님이 말했다.
“터닝 포인트라는 것은 본인이 모를 수가 없어요. 겪으면 바로 이거구나, 하고 알게 되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몇 년 후 병원에서 단숨에 알아버렸다. 아, 이거구나, 이게 바로 그 순간이구나.
의학 공부를 하다 보니 내 병에 대해서도 자연히 배우게 되었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주로 젊은 여성에서 발생한다. 전신을 침범할 수 있다. 증상으로는 피부 발진, 극심한 피로감, 관절 통증. 장기를 침범하게 되면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수많은 동반 가능한 질환들. 강의록에 적혀 있는 글자들은 건조하고 납작하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어떤가.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말은 평생 완치가 없다는 말. 젊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한다는 말은 그러니까, 네 친구들은 다 멀쩡한데 너만 이상할 거라는 말. 평생 나만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듯한 그 느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는 말. 오랫동안 혼자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의대생들은 강의록 너머의 사람을 볼 수가 없다. 그들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의대에서 쉴 새 없이 공부하고 평가받다 보면 당연한 결과다. 병원에서는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진료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는 전국의 중한 병이라는 병은 다 모이는 4차 대학병원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효율을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하게 된다. 대학병원에서 환자는 증상이 되고 의무기록이 되고 검사 결과가 된다. 내가 병원에서는 그냥 부종을 주소로 내원한 21세 여성인 것처럼 말이다. 내가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진료실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지, 내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미안해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진 말이 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남들도 다 힘들어.”
하지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그런 말이었다. 나는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내 친구들은 다 아무렇지 않은데. 다들 건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한데 나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산정특례를 받으면서 대학병원에 다니지 않았고 약 부작용으로 얼굴이 퉁퉁 붓고 뼈가 약해지고 관절이 아파 걷다가 주저앉을 일이 없었다. 나에게는 나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같은 경험을 하고도 즐겁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도무지 들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사건은 영혼의 각도를 틀어놓는데, 결코 수정될 수 없는 비틀림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여러 차례 관통하다 보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백은선, 1g의 영혼)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그날 이후로 내 영혼의 각도는 비틀렸다.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사실 지금도 꽤나 마음에 든다. 누구나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그 모든 것들을 나는 이제 제대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떠날 수 있다는 것.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행복을 유예해서는 안 된다는 것. 모두가 각자의 아픔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애써 미워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그 사실을. 나는 그 사실들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어서 삶의 모든 순간이 충만해졌다. 놀랍게도 나는, 다른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지금보다 행복할 자신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 나도 그러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아픈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누군가 가장 약해지는 순간에 제대로 위로하기 위해, 진짜로 마음에 와닿는 말을 해 주기 위해서.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 나는 분명 내가 어떠한 연결점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앞으로, 이런 말을 해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
“저도 그랬어요. 젊은 나이에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살아 보면 막상 그렇지만은 않아요. 다 괜찮아지는 날이 오더라고요. 가끔은 내가, 남들보다 훨씬 행복한 것처럼 느껴져요.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거든요. 지금이 인생의 최저점이에요. 이것만 이겨내면 뭐든 견딜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같이 잘 살아 봐요. 제가 계속 옆에서 도울게요.”
/ 제12회 한국의학도수필공모전 금상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여름날의 스케치 / 김학 (0) | 2023.06.25 |
---|---|
추석이 되어 소망한다 / 구효서 (1) | 2023.06.25 |
쇠물고기 / 홍윤선 (0) | 2023.06.18 |
꽃을 세우다 / 조현숙 (1) | 2023.06.18 |
묘박지에 피는 꽃 / 김순경 (0) | 2023.06.18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