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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언저리에 장미를 가져다 심은 지 몇 해, 그새 가늘던 줄기는 제법 굵직하니 키를 키웠고, 작고 몇 안 되던 여줄가리 이파리는 짙은 녹색을 띤다. 빨간 장미를 내심 기대했건만 연분홍색이라 눈길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꽃말처럼 ‘행복한 사랑’을 받지 못한 이 연분홍 장미는 앵돌아진 성깔로 담장 한 귀퉁이에서 매양 햇살에 졸기만 한다.           

 

내가 붉은 장미를 좋아하는 건 '열렬한 사랑, 절정, 기쁨, 아름다움'이 전해주는 절대성 때문이다. 장미는 다채로운 색깔로 사람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그중에서도 붉은 장미는 그 색깔처럼 영혼까지도 유혹한다. 세상의 꽃들 중 ‘여왕’이라는 찬사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검은 장미를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소유하고 싶은 갈망도 없다. 어둠과 배신이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거니와 ‘흑(黑)'이 주는 거부감 때문이다. 파란 장미에도 마음이 간다. '불가능의 극복'을 뜻하는 그 꽃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의 많은 과학자가 연구를 거듭했다. 지난 2004년 일본의 플로리진이란 회사가 유전자 변형을 통해 파란 장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탄생이다. 이렇게 장미는 새로운 변화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늘 양면성을 갖는다. 최고의 꽃이라 불리는 장미도 이를 벗어날 수 없다. 밝음과 어둠, 화려함과 영락, 환희와 슬픔, 그리고 묘약과 독약처럼... 영원히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 장미도 결국 시들어 사라져 버린다. 영원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도 그렇다.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에. 시간 안에서 탄생하고 죽는 존재인 인간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 불안에서 몸부림치는 인류가 고안해 낸 것은 종교이다.

 

종교와 장미는 역사의 한 줄기를 같이 한 적이 있다. 장미(rose)는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중세로 넘어오면서 ‘어린 양의 순결한 피’를 상징한다. 동시에 중세의 화려한 교단을 상징하기도 한다. 장미라는 허울 속에 가려진 황금으로 치장된 욕망과 부패, 광기 어린 지배욕에 불과한 이름뿐인 벌레 먹은 장미. 입으로는 성스러운 척 주의 길을 따른다고, 청빈이라고 말하면서 안으로는 금으로 치장하고, 민초들의 어려운 살림을 주의 이름으로, 장미의 이름으로 갈취하고 풀때기 같은 것을 선심 쓰는 양 던져 주면서 살아가라고 한다.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 악마라는 공포를 조장시키며 '마녀사냥'을 일삼았다. '장미전쟁' '장미십자회'가 그 때문에 생겨났다.

 

누군가는 장미를 이야기할 때 가시에 찔려 죽어간 릴케의 사랑을 말하지만,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마지막 장을 왼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작가가 1980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도서관 장서를 둘러싼 음모를 다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곳을 봉인하려는 자와 세상에 꺼내 놓으려는 자가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시학 2권'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에 대한 원리를 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책이다. 범인은 웃음을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신학자들은 신앙은 근엄해야 하고, 사람들은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고 믿으며 웃음을 멀리했다. 죽임을 당한 수도사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우화와 관련한 작업을 할 만큼 호기심 많고 진보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시학 2권의 유일한 필사본이 장서관의 '아프리카의 끝'이라는 밀실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침을 묻혀가며 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범인이 발라놓은 치명적인 독을 먹고 죽는다. 이 모두가 새로운 변화에서도 신(神)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는 장님 수도사 호르헤의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누구나 꿈꿨을 '장밋빛 인생'이 언제쯤일까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다. 삶 속에 온전히 꽃을 들여오지 못한 채 헛헛하게 살았다. 인생을 통해 갈구하는 '행복'은 찰나처럼 순간으로 다가오기에 영원불변의 바람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장미의 아름다움에 갇혀 자유의 빈곤에 허덕이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름다운 배면에는 가시와 독이 있다.

 

무심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쨍한 볕을 온몸으로 받는 장미가 눈에 들어온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라고 노래하건만, 지금 내 눈에 한 떨기 장미는 그저 장미다.

 

◆ 김철희 주요 약력

△월간 한국수필(2019)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산문, 리더스에세이 회원 △에세이스트작가회의 경북지회장 △수필집 '흰눈과 돼지고기'(2023) △경북작품상(2023)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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