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다크 블루, 모노톤 블루, 아이스 블루…. 20여 년 동안 색의 농도에 따라, 바지의 모양에 따라 많이도 모았다. 특별한 모임에도 눈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청바지를 입는 것이 더 편하고 자신 있다. 요즘 들어 살아온 연륜이 낯설게 느껴진다. 때로 내 몸을 휘감은 나이테가 육칠십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묘한 감정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나 낯선 숫자가 만들어내는 감상에 휘말려 실제 나이보다 늙게 살고 싶진 않다. 나는 젊음의 한 끝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산에 오르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없는 썰렁한 방이지만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방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 마련한 규칙 중의 하나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도 그런 의도의 일환이다. 청바지..
손자 아이를 잃었다. 지난해 세모에 생후 8개월 난 손자를 멀리 보냈다. 여덟 달 동안 집과 병원을 오가다 급기야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로 버티었으나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생명 있는 것은 모름지기 한번은 아름답게 불타오른다던데, 여린 싹을 채 틔우기도 전에 떠났다. 손자도 손자거니와 금쪽같은 아이를 잃어버린 둘째 아들과 며느리의 탈기하는 모습은 차마 보기 어려웠다. 복을 아껴야 한다는 석복(惜福)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마음이 얇은 데다 입마저 가벼워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못하고 다녔으니 무슨 복이 뭉근하게 고일까. 모든 것이 내 탓이다. 나는 피난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웃에 온전한 가정이 없었다. 엄마 아니면 아버지가 없었고, 아버지가 있으면 술주정뱅이이거나 무능력자 또는 지독한 의처..
저는 요즈음 산책을 즐깁니다. 매일 근처 강변길을 따라 한두 시간을 걷다가 돌아옵니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 앙증맞은 노랑머리 유채꽃, 평화롭게 노니는 오리 떼의 아침 나들이를 함께하고 나면 몸이 새털처럼 가볍고 맑아집니다. 저녁나절 산책길은 주로 운동하는 사람들로 부산합니다. 주변 아파트에서 나온 어린아이부터, 노약자까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제 가정과 사회에서 할 일을 얼추 마친 중년 부부들이 많습니다. 한정된 시멘트 상자 안에서만 살아가는 이들이 이렇게라도 자연에 몸과 마음을 비비며 호흡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은 여간한 다행이 아닙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갈밭이었던 강변을 미끈한 산책로로 닦은 것은 참 잘된 일입니다.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걸음걸이는 참 다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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