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를 잘라 보면 안다. 한가운데를 톱으로 자르면 동심원의 나이테 무늬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이 장작을 팰 때처럼 세워 놓고 자르면 그 동그라미들은 온데간데 없고 물결처럼 흐르는 나무결의 곡선 모양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나무로 죽창을 만들 때처럼 사선으로 비스듬히 쳐 보면 동그라미도, 줄무늬도 아닌 타원형 파문이 생겨나게 된다. 같은 통나무인데도 자르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 전연 다른 무늬가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무늬도 그와 같이 변한다. 슬픔이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가난이 풍요로 바뀌기도 한다. 나의 운명, 나의 가정 그리고 사랑과 사업, 또 이념이나 나의 조국-- 그 모든 것들이 통나무를 자를 때처럼 다르게 변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내 삶의 통나무를 잘라 보고 찍어 ..

능수버들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오면서 사람처럼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그 나무는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꾸미려고 꽃을 세 번이나 피운다. 이른 봄에 돋아나는 연두색 잎이 첫 번째 꽃이다. 그때 능수버들은 벚나무나 살구나무처럼 나무 전체가 꽃나무로 보인다. 진짜 꽃은 4월쯤에 노랑꽃을 피운다. 다음은 소설이 지나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노르무레한 단풍이 든다. 단풍이 진노랑으로 변하면 들판에 꽃나무가 서 있는 것 같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옷을 벗어서인지 단풍든 자태가 더욱 아름답다. 이렇게 당년에 꽃을 세 번 피우므로 삼화류(三花柳)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능수버들은 한파에 강하다. 입동이 지나도 월동준비는 접어두고 만만디로 놀기만 한다. 한파가 닥치면 나뭇잎을 얼릴 것 같아 마음이..

동이 틀 무렵에 범어공원 등산로를 오르다가 길바닥으로 기어 나온 지렁이를 보았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이다. 그들은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지나간 자리에는 고상한 빗살무늬가 그려진다. 지렁이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산 밑에 개울이 있으리라 믿는 것 같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개울에는 물이 없으니, 이를 어쩌랴. 한 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고 폭염주의보만 내린다. 낮은 찜통더위이고 밤은 열대야이다. 그들이 움직이는 속도로 보아 물이 없는 개울이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차례오동이다. 길바닥을 자세히 보았더니 사람들이 토룡을 밟아서 성한 놈이 없다. 지렁이는 몸에서 나온 진액으로 땅에 엉겨 붙어있다. 개미가 달려든다. 쇠파리가 경고 사이렌을 울리며 넘보기 시작한다. 모르고 한 짓이지만 생명..
나이가 들수록 탄력을 잃어 가는 피부처럼 금방 지은 밥인데 윤기가 없다. 어려서 먹던 싸래기로 지은 것도 아닌데 현란한 세상에 고급스러워진 혀끝이 변덕을 부리는가. 맛을 잃어버린 슬픔을 알아버렸을 때 오는 허기, "식욕은 성욕이요, 성욕은 성취욕이라. 식욕이 없어지는 것은 살맛을 잃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선생님을 뵙기 위해 서울 외곽에서 흙과 남은 인생 보내시는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의 대쪽같은 성품이 묻어나는 집안 구석구석은 서재에 고서를 꽂아 놓은 듯 정갈히도 삶의 흔적들이 꽂혀있다. 모처럼의 시골 정경을 가슴에 한컷 담아두려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헛간 가장자리에 천년의 한(恨)을 머금고 녹이 슬어 있는 무쇠 가마솥이 눈에 스친다. 귀퉁이가 뭉게져 떨어져 나가 있다. ..
직접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녀의 유언은 좀 충격적이었다. 친구의 친구이니 좀 촌수는 멀지만 같은 또래의 나이인지라 그 이야기는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있다. H는 말기 암으로 죽음을 선고받고 있었다. "나도 놀랐어. 그렇게 사랑이 대단한 건지......" 내 친구는 곧 죽음을 맞이할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H는 평범한 주부였고, 성실한 삶을 살아왔었다. 자녀는 둘, 모두 장성했고 대학생이 되어있었다. 남편과도 그때까지 별 의견 충돌 없이 살았고 그 덕분으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모범부부로 부르곤 했다는 것이다. 살림도 짭짤하게 알뜰히 살아 냈고 그것에 별로 회의나 갈등도 보이지 않았던, 그야말로 '문제없는 삶', 만족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온 여자였다는 것이다. 바로 그 행복의 주인공이..
농사꾼 아버지는 천하제일이 논농사였고, 그 다음이 자식농사였다. 아버지 덕분에 나는 평생 동안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퇴직하면서 우연히 독서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지역아동센터’에 주당 2시간씩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 모양이 되었다. 같은 또래의 손자와 놀아본 경험이 있으니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며 시작하였다. 첫 대면 시간에 “나는 책 읽어주는 할아버지야. 앞으로 그냥 할아버지라 불러도 되고, 줄여서 ‘핫배!’라 불러도 좋아” 하면서 말을 붙였다. 핫배란 말은 손자 녀석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어서 이 아이들과 서로 친근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한번 불러보라 했더니 장난끼를 더해서 합창으로 소리치는 외침이..

샘물을 길어 머리를 감은 어머니는 손바닥만 한 거울 앞에 앉았다. 빗어 내린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이리저리 비틀어 다듬은 후 은비녀를 끼운다. 그리고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선반 위의 동백기름을 내려와 손바닥 위에 기울인다. 몇 방울을 손바닥 전체에 묻혀 머리에 바른다. 머리카락이 반짝거리며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거울을 다시 한번 찬찬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에 만족이라는 단어가 스친다. 동백기름병을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는 엄마의 얼굴이 곱다. 어머니가 아껴 둔 동백기름으로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시각에 아버지는 마당이며 골목을 쓸었다. 그 날은 삼십 리 밖 재 넘어 사는 총각이 누나 얼굴을 보러 오는 날이었다. 무슨 일에나 정성을 기울이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들에게 백년손님 후보가 오..
마침내 아파트를 팔았다. 꼭 30년 동안이나 소유한 집이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그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두 아이도 낳고 키웠다. 그곳에서 가정의 미래를 설계하고 이런저런 꿈들을 가꾸기도 했다. 작은 다툼도 있었다. 지난 연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그 집을 삼십 년 만에 결국 팔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처분하려고 했으나 마음속 계산과 조건이 여의치 못해 지금까지 끌고 왔다. 팔고 나니 앓는 이를 빼버린 것과 같아 시원했다. 이 년마다의 전세 계약이나 예고 없이 닥치는 잔잔한 집수리는 불편함을 주었던지라 묵은 숙제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하고 후련했다. 정말 잘했다 싶었다. 부동산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내를 쳐다보니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그 연유를 알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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