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는 사사시철 말을 걸어온다. 걸음한 사람의 감정 변화 따라 고요하거나 활기차거나 음산하기까지 하다. 그림을 감상할 때 느끼는 여백같이 빼곡히 들어차지 않고 빈자리를 내준다. 그래서 문학으로 치면 시詩와 닮아있다. 무어라 한 마디 툭 던지고 상상을 자아내는 행간처럼 시시콜콜 갑갑하게 굴지 않는다. 사람에 비유하면 말수 적고 품 넓은 지기知己이다. 내가 공터란 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주경야독의 꿈을 안고 객지 생활을 막 시작한 해의 늦가을이었다. 그때 내 나이 열일곱이었는데 1976년 서울은 산업 열풍으로 몹시 분주했다. 신당동에 있던 소규모 봉제공장은 외가로 아저씨뻘 되는 분이 경영하고 있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시작한 그 길엔 나보다 몇 살씩이나 어린 꼬마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제법 텃세라는..
몇 해 전 일이다. 나는 어느 조그만 변두리 중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그때 내 자리는 어떤 여선생님의 건너편이었는데, 우리 사이에는 낡은 철제 책상이 두 개, 그리고 그 경계선쯤 되는 곳에 크리스털 꽃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흰 편이었고 치열은 아주 가지런했다.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 소녀처럼 해사했다. 그 크리스털 꽃병 같았다. 나는 가끔 꽃병 너머로 그녀 쪽을 건너다보았다. 그때마다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희고 가냘픈 손이 나의 시선으로 들어오곤 했다. 색종이로 별을 접고 있었다. 공책 한 칸 넓이만큼씩 잘라 놓은 색종이를 오각형이 되게 요리조리 접었다. 접기가 끝나면 손톱 끝으로 다섯 개의 귀를 살리면서 허리 부분을 살작 눌러 주면 금세 살아 통통한 예쁜 별이 태어나는 것이었다. ..
식탁에 오른 밥알의 진실은 알곡, 곧 곡식이다. 곡식은 수확된 농작물에서 탈곡한 것인데, 이 알곡을 추스리는 일을 타작이라고 하였다. 인류 역사에서 타작(탈곡)의 변천 과정을 더듬어 보는 것도 인류 발달사를 살펴보는 한 단면일 것 같다. 다 익은 곡식에서 알곡을 얻는 최초의 방법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 손바닥으로 부벼서 알곡을 골라내는 방법이었을 것 같다. 원시인들이 이런 방법으로 알곡을 골라 생식하였을 것 같은데 나의 추리가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소년 시절 농촌에서 자라면서 보리통금과 콩통금이란 서리를 해본 일이 있었다. 5월 중순경 보리밭이 누렇게 물들어질 무렵, 계곡이나 언덕 아래 으슥한 곳에서 풋보리를 꺾어다가 모닥불에 익힌 후 불에 탄 새까만 보리 모가지를 손바닥으로 부비면 뜨끈뜨끈한 통보리..
TV나 라디오 방송시설이 많은 세상이다. 시간마다 뉴스가 나오는데, 대부분 방송국의 뉴스 첫 소식은 정치권의 갈등과 싸움 이야기들이다. 정치 이야기가 끝나면 도둑놈들 이야기와 비리 폭로가 자주 나온다. 그래서 뉴스 보기가 싫어졌다. 일찍이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한 것인데, 사람들이 살다 보면 갈등도 생기고 욕심이 발동하여 악행도 자행하게 된다는 설이다. 이와 반대로 성악설이란 것도 생겼다.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도덕과 관습과 교육과 신앙에서 선이 창출되기도 하기에 인간사회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다. 인간사회에는 좋은 일과 착한 사람이 물론 많지만, 나쁜 일과 악인도 많다. 그 악인 중에서 여기서는 도둑, 도적 이야기를 전개해 보려는 것이다. 도둑..

어느 해 여름날 나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독도 땅을 밟았다. 울릉도 도동항을 출범한 유람선이 두 시간 반 달려 도착한 것이다. 잔잔한 바다였기에 우리들은 행운으로 독도에 접안했다. 놀이 심한 곳이기에 파도가 조금만 있어도 접안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늘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아온 독도, 꿈에 그리던 독도에 오르는 감격은 자못 큰 것이었다. 우리들이 탄 유람선이 부두에 접안하자 독도수호대 해양경찰관 칠팔 명이 맞이해 주었으며, 역시 우리 땅 독도를 지켜주는 갈매기 떼가 선회하면서 기쁘게 맞이해 주었다. 지금까지 독도는 서도와 동도 두 개의 섬인 줄만 알았는데 주변에 수십 개의 작은 바위섬들이 독도를 감싸고 있으니 말하자면 조그만 독도군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인공으로 선착장시설이 되어있는 곳은 동도이다. ..

동료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C 선생이 두통을 호소했다. 머릿속을 굵은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고, 그로 인해 직장생활도 원만치 않은 모양이다. 종합검진을 받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니 미칠 지경이란다. 그는 꼼꼼하고 성실하다. 여러 일에 관여해 시간의 틈새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그간 쌓인 스트레스로 머릿속 회로가 엉킨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해도 몸은 바쁘게 움직이던 때와 같은 주파수로 돌아간다니, 인체의 구조가 두렵고 신비롭기만 하다. C 선생의 병명은 ‘현대 문명병’이라 해야 할 것 같다.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병을 무엇으로 풀어야 할까. 내가 “연애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마디 던지니, 동료 하나가 맞는 말이라며..

일주일에 두어번 동네 목욕탕엘 간다. 모두가 벌거벗은 편안함과 평등함이 좋고,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고 생각에 잠기는 것도 한때의 즐거움이다. 또한 살내음 나는 여인들의 몸매를 읽어내려가며, 그들의 몸매에서 여인들의 역사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여인의 몸매는 각자 그만의 주제를 담고 있는 인생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해가는 모습은 나의 그림이기도 하여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다. 꽃봉오리처럼 봉긋한 유두의 부끄러움에서 나의 소녀 시절을 보고,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아낙네에게서 내 젊은 날을 떠올린다. 딱 벌어진 어깨와 늘어진 가슴, 층층이 주름 잡힌 배와 등판에 숨김없이 드러난 피곤의 자국에서 연민을 느끼고, 진흙팩이나 오이를 갈아 맛사지 하는 여인에게서 흘러가는 시간에 저항..

숫자와 사람의 운명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2'라는 숫자가 평생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벌써부터 의식하며 살아온 나는 때에 따라 '2'자에 관련된 여러 가지 생각들을 곰곰이 하게 되었다. 나의 생일은 1928년 2월 22일이고 음력으로 2월 2일이다. 나는 3남 2녀 형제중 2남으로 태어났다. 현주소는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220번지 한남하이츠 아파트 2동 1002호. 전화번호는 297국번에서 얼마 전에 2297국번으로 앞에 '2'자가 하나 더 붙었다. 나는 28세 때 2세 아래인 아내를 맞아 결혼하였다. 아내의 생일은 12월 11일이고 음력으로는 10월 22일이다. 그러나 어찌된 연유에서인지 혼인신고 하는 과정에서 12월 12일로 둔갑하였다. 누가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질..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