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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문학대상13

징검다리 / 고경숙 징검다리 / 고경숙 제12회 신라문학대상 미루나무가 우뚝 선 강 어디에도 힘차게 흐르던 강물은 보이지 않는다. 작열하는 태양은 엷은 물안개를 골마다 피워올리고 있을 뿐 바람 한 점 없는 후덥지근한 날씨다. 수심 얕은 바닥에 돌덩이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다. 물에 반쯤 잠긴 채로 너스.. 2020. 2. 13.
벽(擗) / 석민자 벽(擗) / 석민자 제17회 신라문학대상 처 저 정! 소나무가 생으로 꺾여지며 내는 소리다. 사시장철 푸르자니 속까지 꽉꽉 채울 여력이 모자랐든가 살풋살풋 내려앉는 눈발에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양이 꼭 속이 빈 강정만 같고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가 꺾여져 내리다말고 .. 2020. 2. 10.
황혼 / 배형호 황혼 / 배형호 제18회 신라문학대상 돈 봉투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노란봉투에 공사대금을 넣어서 주었다. 돈을 세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냥 공손하게 받아왔다. 할머니가 세어서 건넨 돈을 할아버지가 받아서 다시 확인하고 넣어주는 돈을 또 셀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봉투속의 .. 2020. 2. 10.
매생이 / 박모니카 매생이 / 박모니카 제19회 신라문학대상 매생이국을 끓인다. 며칠 전부터 속이 편치 않다며 음식만 보면 손사래를 치는 남편을 위해서다. 파도처럼 일렁이며 끓어오르는 물에 낱낱이 손질한 생굴을 한 움큼 집어넣는다. 제 몸을 우려낸 굴의 육즙에 깨끗이 씻어 둔 매생이를 푼다. 제 생을.. 2020. 2. 10.
감은사지에 핀 사랑 / 전미경 감은사지에 핀 사랑 / 전미경 제21회 신라문학대상 이른 아침의 감은사지는 고요에 갇혀 있었다. 소리 없는 외침만이 정적을 흔들어 깨우는 아담한 곳이었다. 잠시 뒤 동해의 일출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더니 석탑을 비추었다. 햇살은 갈라진 틈새까지도 파고들었다. 감은사지는 비어 .. 2020. 2. 9.
인생시계 / 김제숙 인생시계 / 김제숙 제24회 신라문학대상 인터넷 주문으로 책을 샀더니 인생시계라는 것이 선물로 함께 왔다. 사람의 일생을 팔십 년으로 가정하여 하루 스물 네 시간으로 나눈 것이었다. 스프링으로 마무리한 수첩 모양인데 일 년에 한 장씩 넘기에 되어있다. 내 인생시계는 몇 시일까? 여.. 2020. 2. 9.
메주각시 / 박헌규 메주각시 / 박헌규 제25회 신라문학대상 절집 마당이 술렁인다. 이른 아침의 고요는 잰걸음으로 뒷산 인봉재(嶺)를 넘고 콩 익는 냄새가 산중에 진동한다. 검은 무쇠 솥 뚜껑을 비집고 나온 허연 김이 온 부뚜막을 휘감고 돌아 나풀나풀 춤을 추며 뒤란 장독대 사이사이로 숨어든다. 자주 .. 2020. 2. 9.
갈목비 / 전영임 갈목비 / 전영임 제26회 신라문학대상 어두운 터널의 수렁과도 같았던 시간들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다. 여우비가 내리던 날 금빛 모래 쓸리어 내리는 강을 건너, 진달래가 흐드러진 산길을 지나, 너울너울 꽃상여를 타고 먼 길을 떠나셨다. 살아온 인생길 가장 화.. 2020. 2. 9.
풀매 / 신정애 풀매 / 신정애 제28회 신라문학대상 두 개의 행성이 맞물려 돌아간다. 드르륵 드르륵! 어처구니를 잡은 손등 위로 더운 김이 솟아오른다. 밖엔 눈이라도 내리는지 소란하던 사위가 고요하다. 미열로 시작된 감기에 잣죽이 좋다며 엄마가 풀매를 돌린다. 따뜻한 방 안에는 어린 내가 누워 .. 2020. 2. 8.
작살고래 / 최경숙 작살고래 / 최경숙 제29회 신라문학대상 단번에 전광석화처럼 내 눈에 꽂혔다. 고래가 척추에 작살이 박힌 채 온 몸을 펄펄 요동치고 있다. 임신한 처와 자식을 떠나 화석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 같다. 암벽 속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하는 고래의 몸짓이 검푸른 파도를 밀어 낼 .. 2020.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