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신문]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 / 유휘량 우린 목이긴 걸// 기린이라 불러// 하필 넌 목이 길구나.// 누가 널 그리고 있는 걸 아니?// 그림자를 졸여 만든 잉크로// 괜찮아./ 너는// 그리는 동시에/ 사라지는 감각이 좋았다.// 따듯한 색은 대체로 몸에 좋지 않았던 그때// 핏줄엔 면역이 없어서, 핏줄에 묶인 몸이 싫다고/ 목에 핏줄 세우며// 새가 새를 잡아먹는 건 이상하다. 완벽한 새장을 만들기 위하여 가시밭에 두 손을 넣어두고 돌아왔다. 그 두 손은 그림자놀이를 통해 새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기린이 새를 입에 물고 불타는 머리를 흔드는 걸 보면 이상하다. 나무에 열리는 아가미는 싫어하면서 하루에 새 하나씩 꼬박꼬박 먹는 건 이상하다.// 몸을 벗고 남겨진 자신을 봐.// 복도..
누드 / 문솔아1 201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모두들 옷을 벗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긴커녕 깔깔대며 웃는 소리까지 들린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내연산 수목원, 화단에 핀 야생초들이 모두 누드다. 구절초, 꿩의비름, 물옥잠들이 나체로 피어 저마다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꽃들뿐만이 아니다. 울타리처럼 둘러선 물푸레나무, 서어나무, 오동나무들도 모두 나체다. 수목원 연못으로 흘러드는 시냇물 소리도, 화단가에 잠든 고양이털을 슬쩍 만지고 가는 바람도 누드다. 지금 막 덤불 위로 날아오르는 새들이며 백양나무 꼭대기 위로 흘러가는 솜털구름, 이 모든 것들이 누드다. 지금 이곳에서 누드가 아닌 것은 나뿐이다. 한때 누드 열풍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누드화장품, 누드폰,..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