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습득 코너

야언(野言) 초(抄) / 신흠

부흐고비 2008. 3. 6. 20:55

 

야언(野言) 초(抄)


모든 병을 다 의약으로 고칠 수 있으나 속된 병만은 고칠 수 없다. 속된 병을 고치는 것은 오직 책이다.

술을 마심에 참맛이 있으니 취하는 데 있지도 않고, 취하지 않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얼굴빛만 조금 발개지는 사람으로는 소요부(邵堯夫)가 있고, 곤드레로 취하는 이로는 유백륜(劉伯倫)이 있다.

일은 알맞다고 느껴질 때에 그만두어야 하며, 말도 또한 뜻에 알맞다고 느껴지는 데서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만 허물과 뉘우침을 줄이고, 다함없는 흥취를 깨닫게 된다.

독서는 이로움이 있을 뿐 해로움이 없다. 시냇물과 산을 사랑하면 이로움이 있을 뿐 해로움이 없다. 꽃과 대와 바람과 달을 즐기면 이로움이 있을 뿐 해로움이 없다. 단정히 앉아 고요히 입 다물고 있으면 이로움이 있을 뿐 해로움이 없다.

차가 끓어 향내 맑을 때 손님이 찾아오면 기쁜 일이요, 새가 지저귀며 꽃이 지는데 사람이 없으면 또한 스스로 유연자적할 것이다. 참된 샘은 담담하여 맛이 없으며, 깨끗한 물은 순수한 향취가 없는 법이다.

뜻이 다하여 말이 그친 것은 천하에 지극한 말이다. 그러나 말이 그치고도 뜻이 다하지 않은 것은 더욱 지극한 말이 된다.

사람이 하루를 삶에 있어 혹 한 가지 선한 말을 듣거나, 한 가지 선한 일을 보거나, 한 가지 선한 일을 실천하였다면, 이 날이야말로 헛되게 산 것이 아니다.

시 짓는 일은 본성의 자연스러움에 맞아야 한다. 이에서 지나치면 뼈를 깎는 괴로움이 된다. 술은 사람의 정(情)을 기쁘게 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여기서 넘치면 정을 해쳐서 광탕에 빠지게 된다.

무척 고운 꽃은 향기가 부족하고, 향기가 많은 꽃은 빛깔이 곱지 않다. 그러므로 부귀한 모습으로 사치스러운 이는 맑은 기상이 적고, 그윽한 인품의 향기가 있는 이는 겉모습이 초라한 경우가 많다. 군자는 차라리 백 대(代)를 두고 향기를 낼지언정 한 때의 고운 빛을 구하지 않는다.

인의롭고 후덕한 것과 각렴하고 박정함은 더 사람다워지느냐 아니면 더 나쁜 사람이 되느냐의 문이 된다. 겸손하며 자제하는 것과 영일하여 자만함은 재화를 당하느냐 행복해지느냐의 문이 된다. 근면하며 검소한 것과 사치하고 태타함은 못 사느냐 잘 사느냐의 문이 된다. 천성을 잘 지켜 기르는 것과 욕망의 노예가 됨은 사람다워지느냐 마귀가 되느냐의 문이 된다.

문을 닫고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일과 문을 열어 놓고 그리운 손님을 맞이하는 일과 문 밖에 나가서 보고 싶은 곳을 찾아 즐기는 일은 곧 인간의 세 가지 즐거운 일이다.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먼저 그 정(精)을 귀히 여겨야 한다. 정이 가득 차면 기가 장대해지고, 기가 장대하면 정신이 왕성해진다.

마음이 비면 맑아지고, 자리가 확정되면 고요해진다. 말을 적게 하고 듣기도 적게 하면 정신과 목숨을 보존한다.

안으로 그 마음을 보면, 마음은 그 마음 될 것이 없으며, 겉으로 그 모습을 보면, 모습은 그 형체 될 것이 없으며, 그 사물을 멀리서 살피면, 사물을 그 사물 될 것이 없다.

천하의 일은 오늘 옳은 것이 내일에는 변하여 그릇된 것이 되며, 오늘 그른 일이 내일에는 변하여 옳은 것이 되며, 오늘의 은혜가 내일에는 변하여 원수가 되며, 오늘의 원수가 내일에는 변하여 은혜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떳떳하게 살면서도 변화가 올 것을 근심한다.

물은 잠기기 때문에 온축(蘊蓄)하여 오행의 정수가 되며, 불은 비양하는 까닭으로 발달하여 오행의 냄새가 되며, 나무는 창무하기 때문에 화려하여 오행의 색(色)이 되며, 쇠는 견고하기 때문에 충실하여 오행의 소리[聲]가 되며, 흙은 조화하기 때문에 자양하여 오행의 맛이 된다.

몸은 적연한 곳에 두어야 하고, 마음은 통연한 곳에 두어야 하며, 세사(世事)는 혼연한 곳에 두어야 하며, 일은 자연에 맡겨 두어야한다.

천하의 일은 그것을 쟁취하면 마음에 만족이 없고, 그것을 사양하면 언제나 마음에 여유가 있다.

물과 불은 서로 쓰이는 사물이나, 그 씀이 법도에서 벗어나면, 때로는 집을 망가뜨리게도 되고, 술과 떡은 늘 먹는 물건이지만 먹음이 법도에서 벗어나면, 때로는 몸을 해치게 된다.

덕으로 나아가고 업을 닦는 것은 자신을 바로 함만 같지 못하다. 자기를 바로 하면 남도 또한 바르고, 자기가 바르면 일도 또한 발라지니, 한결같이 자기를 바로 하면 천하가 만 번 변하여도 응변할 수 있다.

신흠(申欽)

'습득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뢰유(論賂遺) / 이익  (0) 2008.03.08
뱃삯과 뇌물 / 이규보  (0) 2008.03.07
도인도송 / 국선도  (0) 2008.03.04
[유머] 닭장사의 외침  (0) 2008.03.04
책 읽는 소리 / 정민  (0) 2008.03.02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