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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바다를 건널 때 / 최순희

부흐고비 2019. 11. 28. 08:54

바다를 건널 때 / 최순희
The 수필, 2019 빛나는 수필가 60인 선정작


바다는 내게 원래 동해나 남해가 전부였다. 특히 남해, 올망졸망한 작은 섬들이 쉼표 마침표처럼 아기자기 떠 있는 통영 앞바다와, 삼천포에서 창선대교를 건너 다랭이논을 향해 해안도로를 달릴 때면 차창 밖으로 윤슬 일렁이는 그 남해바다가 좋았다. 한 자리에서 깊고 그늑하지 못 하고 갯벌을 적나라하게 벌거벗기며 하루 두 차례씩 들락날락하는 서해바다는, 그 누렇다는 소문과 함께 내게 서해바다도 바다냐는 비아냥을 함부로 내뱉게 했었다.

그러던 내가 서해 바닷가에 들앉아 산다. 이 섬에 흘러들게 한 우연인지 필연인지에 매일매일 감사하며 산다. 어느덧 만 4년, 공항 근처에 그의 은퇴 후엔 멀리 있는 피붙이들 만나러 날아가기 편하겠단 막연한 이유로 집을 마련해두긴 했어도, 정말로 들어와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 해 갓 이사 오던 무렵에는 아파트 주변은 온통 황무지였다. 부엌 창밖 왼쪽으론 막 조성이 끝난 작은 공원이 있고, 그 나머지는 저만치 바닷가까지 죄다 구획정리만 된 채 휑하니 버려진 빈 땅이었다. 저녁 무렵, 아픈 그에게 먹일 무언가를 끓이고 달이고 졸이고 덖다 말고 문득 창밖을 내다보면 그 빈 황무지 조각 사잇길을 어느 시골 오지의 군청버스처럼 털털거리는 낡은 버스가 한참 만에 한 대씩 지나가곤 하였다.

사월 중순 이사 오던 날 밤, 무심히 밖을 내다보던 나는 오싹 소스라쳤다. 바다에서부터 자욱이 밀려오는 밤안개 속에 유령처럼 희붐한 작은 물체가 어둠을 가르며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눈에 힘을 주고 지켜보니 전조등을 밝힌 버스였다. 그때는 아직 가로등도 설치되기 전이라 더 유령 같아 보였을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서비스 세계 일등을 자랑하는 첨단 국제공항이 지척인 곳에 이런 황무지가 있다니. 그리고 그 황무지 한 귀퉁이 우뚝 솟은 시멘트 벽 안에 말기암 환자 남편과 내가 옹송그리며 들어와 앉아 있다니. 하늘도시 일곱 개 단지의 공식 입주가 시작된 지도 이미 다섯 달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우리 단지 천 육백 여 세대의 입주율은 채 이십 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넉 달 후 그가 떠나던 무렵까지도 우리 층 네 가구 중 다른 세 가구는 여전히 빈 집이었다. 마트에라도 다녀올 때면 내 발소리에 놀란 나는 누가 뒤쫓아 오는 것만 같아 헉헉거리며 달음질을 치곤하였다.

아아, 아득도 해라…….

나는 마치 누가 등이라도 떠밀어 들어오기라도 한 듯, 어쩌다 이렇듯 비현실적인 시공간 속에 들어와 앉게 되었는지 매번 어리둥절해지곤 했다. 이상한 것은, 그러나 이름 그대로 무진장하게 펼쳐진 하늘과 햇빛과 바람 말고는 급하게 들어선 간이 식자재 마트 하나 외엔 아직 아무것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던 이 하늘도시가, 나에겐 날이 갈수록 바로 그 텅 빔과 황량함과 고적함 때문에 점점 더 가슴에 사무치며 다가들더란 점이다. 개발 따위 안 되어도 좋았다. 아니, 안 되는 게 더 좋았다. 내게는. 그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텅 빔과 황량함과 고적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적막한 섬 집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을 때, 나를 염려한 주변에서는 다시 뭍으로 돌아오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지극히 단순 간결해진 내 삶이 마음에 꼭 들었다. 조금 불편한 대신 한껏 허락된 이 맑은 공기와 아낌없는 햇빛과 탁 트인 하늘을 다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특히 도시와 이 섬 사이엔 인천 영종 두 멋진 대교가 있다.

도시의 소음이 문득 그리워질 때면 그 다리들을 건너 서울나들이를 하거나 공항 인파에 섞여 들어가 본다. 때로는 지극히 도시적인 인간인 내가 영종댁이 되어 이 낯선 바닷가에 엎디어 살아가는 것을 신기해하는 벗들이 바다를 건너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중세 성채의 여주인이 해자 위로 가로놓인 개폐교를 올렸다 내렸다 하여 손님을 맞거나 바깥나들이를 하듯, 마치 내 인생의 이쯤에, 이만큼의 안전거리에서, 마침내 내 삶을 나의 자유의지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기나 한 듯한 과장된 자유를 맛보곤 한다. 그리고 그 자유가 어쩐지 그가 내게 준 마지막 사랑이며 선물처럼 여겨져 마음 시큰해진다.

처음 일 년쯤을 나는 종일토록 소파에 널브러져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내가 무엇을 더 했어야 그를 살려낼 수 있었을까, 멍하니 되짚어보곤 했다. 개구리나 매미가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자욱한 해무가 거실 창가까지 밀려들었다. 뱃고동이 부웅 울거나, 한낮의 고요적적을 뚫고 원주민 동네 전소쯤에서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 컹, 들려오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나는 잡풀이 우거진 들판 길을 지치도록 걷거나, 뒷동산이나 이 섬 한가운데의 백운산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보곤 했다. 때로는 공항신도시를 지나 호젓한 마시란 해변으로 달려가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대개 휘황한 낙조와 만났다. 크고 붉고 덩실한 해가 삽시간에 바닷물에 풍덩 빠져들며 선혈 낭자한 뒷모습을 남기는 광경은 아무리 자주 목도해도 경이롭기 그지없는 장관이었다.

이즈음엔 저녁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인천대교 초입까지 자전거를 달린다. 길 왼쪽으론 바다와 나란히 레일바이크장이고, 오른쪽으로는 캐러밴 캠핑장과 물때에 따라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옛 염전 둘, 그리고 다시 캠핑장과 공원들이 이어진다. 길 잃은 칠게 한 마리가 내 앞을 벌벌 기어 달아난다. 옛 염전 갯벌에 저어새 떼가 하얗게 앉아 있다. 내가 되돌아올 때쯤엔 염전에 물이 거지반 차서 새떼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인천대교 두 개 주탑엔 아름다운 불빛이 켜질 것이다.

영고성쇠니 채움과 비움이니 하는 낱말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쏴아 쏴아 바닷물 들어오는 소리에 맞춰 페달을 밟는다. 맞은편 산등성이에 석양이 활활 타오르는 둥근 쟁반처럼 멈칫, 걸려 있다가 이내 미끄러져 사라진다. 낙조를 바라보면 슬프다지만 내겐 아직은 그저 아름답다는 찬탄과 감동이 훨씬 더 크고 깊다. 최소한 저 해는 내일도 우리 동네 작약도 앞바다쯤에서 다시 떠오를 것이고, 그런 당연한 일이 왜 이렇게 감사하고 큰 위안인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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