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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초짜 할배 / 이용수

부흐고비 2021. 1. 13. 09:08

반가운 소식이 왔다. 며느리가 손주를 잉태하였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새 생명을 드디어 맞이한다는 현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때가 내 나이 예순 일곱이었다. 친구들의 손자는 대부분 중학생 들이다. 내가 결혼한 지 십년이 지나 아들을 얻었으니 자연히 손주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며느리가 안 볼 때 자꾸 며느리의 배만 바라보던 십 개월이 왜 그리도 더딘지, 손가락으로 달수만 헤아리고 있었다. 드디어 손녀가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된 나는 며느리가 입원하고 있는 여성 병원으로 달려갔다. 강보에 싸인 손녀가 며느리의 품에 안겨 세상모르고 잔다. “너의 탄생을 축하한다!” 기쁨에 못 이겨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옆에 있어 그러질 못했다. 얼마나 오래 동안 기다렸던 일인가.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할아버지의 반열에 당당히 오른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의 합작으로 손녀를 낳았는데 내가 덩달아 당당해진다. 늦게 얻은 아들로 인하여 손녀가 늦었으니 그 목 타는 기다림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며칠이 지났다. 며느리가 산후조리하고 있는 병원에 갔다. 가만히 손녀를 들여다본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꼼지락 거린다. 손녀의 얼굴에 더 가까이 다가가 듣는, 새근새근 새어 나오는 숨소리가 경이롭다.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아기천사의 모습이 이러한가. 아기가 보스락 잠에서 깨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입가에 흐르는 미소가 할아버지를 환영이라도 하는 듯 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내게 손녀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말에 순간 초짜할아버지는 더욱 우쭐해졌다. 가슴가득 쏟아지는 기쁨에 양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여러 개의 이름을 곰곰이 되뇌어 보았다. 그중의 한 이름이 번개처럼 내 머리에 꽂힌다. ‘지은(智恩)’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라!’ 는 뜻으로 지은이라고 짓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이름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말했더니 아들과 며느리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태어난 지 어느덧 10개월이다. 어린 손녀의 옹알이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너는 좋은 부모를 만났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자꾸 주절거린다. 부모의 혜택으로 공부도 만족할 만큼 할 것이다. 전문인이 되려면 부단한 노력 없이 안 된다. 위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진다고 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이에게는 장사도 못 당한다더라. 그러다보면 행복을 누릴 것도 분명해 진다.

지은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우쭐대거나 교만한 사람이다. 너는 이름처럼 지혜롭게 행동하여라. 아직 첫돌도 안 지난 아이가 무엇을 알 거라고. 어린애가 생각하지 않는 말을 건네는 내 마음은 자꾸 초짜 할아버지의 표를 낸다.

요즈음 지은이를 일주일에 한번 씩 교회에서 만난다. 태어난 지 1년여 동안은 나를 알아보지 못해 내 곁에 잘 오지 않았다. 두 돌이 되었을 때부터 지은이가 나를 알아보고 쫓아온다. “지은아, 할아버지다.” 하면 지은이는 “하부지, 하부지” 하며 내 품에 안기며 뽀뽀를 해준다. 그리고 가녀린 녀석의 손이 내 손을 꼭 잡으며 같이 걷자고 팔을 당긴다. 손녀와 손을 잡고 걷는 이 기분은 초짜 할배가 된 사람만이 알 것이다. 손자가 없어 아쉬웠던 이전의 마음들이 한 순간에 녹아져 내린다.

몇 년 전이다. 친구가 “너, 지금까지 뭐 했노! 손자도 하나 없이”하고 말할 때 마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웃으며 농담으로 말했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더없이 서운했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그들과 함께 놀아도 된단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농담은 내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게 만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겠지만 자식 농사도 마음대로 안 되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지은이가 기다려진다. 지은이도 예배가 끝나면 나를 찾아다닌다. 멀리서 할아버지를 보고 뛰어오는 손녀를 보면 금방 기쁨이 아지랑이 피어 오르듯 한다. 지은이는 나를 볼 때마다 두 팔을 높이 들고 안아달라고 보챈다. 그런 지은이를 번쩍 들어 안으면 여리고 가는 두 팔이 내 목을 감는다. 내가 지은이의 등을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두드리면 지은이도 내 등을 두드린다. 순간 콧등이 찡해지며 눈물이 울컥 나오려는 것을 참는다.

요즘 초짜 할아버지는 손녀의 재롱에 넋이 나가 있다.

지난 3월 13일에 할아버지는 너의 가족과 함께 할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때 너의 아빠가 내게 “글쓰기 공부를 얼마나 했냐고” 물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지금 5년차 공부한다.”고 했다. 너의 아빠가 ‘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고 했다. ‘만 시간의 법칙이란 하루에 3시간씩 연습한다고 가정했을 때, 1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그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다.’고 말콤그래드웰의 저서《아웃라이어》에 나온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시간 외에 더 많은 시간을 글쓰기 공부에 투자했으니.....,’ 하며 말끝을 흐리더라.

네가 글을 읽을 때쯤이면 할아버지가 쓴 글을 읽다가 할아버지의 인생여정을 엿볼 수 있겠구나. 정년퇴임을 한 후 일없이 지낼 때이다. 하루하루가 무료하여 삶의 활력소를 찾다가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 어려운 공부를 왜 하느냐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배움에 목마른 나에게는 딱 맞는 일이었다. 글쓰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직장에 다닐 때처럼 쉼 없이 열심히 일하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런 말을 주절대는 내가 진짜 초짜 할아버지가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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