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죽음을 준비한다 / 오문재

부흐고비 2021. 1. 14. 08:54

불치병을 판정받고 죽음을 준비 한다.

내게도 죽음이 다가왔다. 생로병사가 아직은 멀리 있는 줄 알았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준비도 없이 가기 보다는 주변을 정리하고,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를 지지해 주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해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비록 나에게 마음과 뼛속까지,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들 또한 나와 인연이 있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으므로...

마음에 떨림과 무서움이 엄습했다. 생, 로, 병까지는 이해를 하지만, “사”까지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백세 시대인데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까기를 수용해야 내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면서 고통을 겪고 태어났다. 사라질 때도 고통을 겪으며 가야 형평성이 맞는다. 그래도 “생”과 “로”에서는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음을 기억하고 추억으로 떠올린다.

울고불고 할 시간이 없다. 깔끔하지는 않아도 주변을 정리하고,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가족들과 이웃들과 재미있게 즐기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을 많이 보고,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떠날 때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마음은 이렇게 생각하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숨 쉬기가 곤란하다든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된다면 이 생각도 장담할 수 없다. 천상병 시인은 아름다운 세상, 소풍 잘하고 간다고 인생을 노래했다. 나는 천시인보다 훨씬 부족한 사람이다. 나도 세상을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간다고, 감사하다고 노래하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죽기 전에 대학교 공부를 하고 싶었다. 마흔 세 살에 수능을 보고, 마흔 네 살에 만학도로 청주 대학교에 입학했다. 시집 <고향에 가고 싶다> 과 수필집 <아버지>도 내고, 작가로 등단<천마, 나를 찾아 날아오다>도 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용기를 갖고 도전하고 이루었다. 음악에 대하여 전혀 모르면서 색소폰과 오카리나를 배우고 싶어 배웠다. 신나고 재미있게 배웠으며 봉사한다고 우쭐거려 보기도 했다. 배우는 것에 많은 갈증을 느껴 몸을 돌보지 않고 좌충우돌 덤벙댔다. 그래서인지 후회는 남지 않는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너무나 잘 한 결정들이었다. 혼자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도움을 받으며 도움을 주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더니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요즘은 딸과 남편, 아들에게 집안 살림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은행도 다니며 정리하고, 보험 증권을 보며 딸에게 사후에 정리해야 할 것들을 알려 준다. 집안의 중요한 사항들을 남아 있을 가족들에게 알려준다. 장기 기증 의사도 상의해 본다.

냉동실에 냉장고 안에 쌓아 둔 인생의 무게가 산처럼 무겁다. 천년만년 먹고 살 것처럼 쟁여두고 쌓아 두었었다. 냉장고에 쌓아 둔 많은 먹거리들도 끄집어내어 버린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 미련 떨었던 것을 헛헛하게 쓴 웃음으로 웃어 보았다. 내가 천국으로 떠나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내 물건들과, 소지품이 쓰레기로 버려질까 생각하니, 인생은 욕심으로 채우는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진리가 이렇게 늦게 깨달아질 수 있을까. 인간은 우매하기 때문에 바닷물로도 채울 수 없는 욕심을 부리고 사나보다. 성경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많이 읽었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솔로몬이 후세사람들을 위해 기록해 놓은 말씀이 이제야 새록새록 빛을 발하는지... 다른 종교도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성현들도 이런 말을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끝없이 욕심을 채우려 하고 있다. 나도 그랬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니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 해도 변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삶을 더 붙잡고 발버둥 치고 해 봐야, 더 사는 것도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부르면 가야하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태어남과 죽음은 누구나 반드시 겪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우리의 인생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닌 익어가는 것이다. 나도 이 시점에서 익은 것일까 반문해 본다. 내 인생이 잘 익었기 때문에, 가을철 홍시처럼 맛있게 익었기 때문에, 떨어질 것이니 하나님이 천국으로 부른다고 생각한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나무는 마지막을 단풍으로 장식한다. 나뭇잎까지 다 떨구고 나목으로 겨울을 맞는다. 나뭇잎은 갈 때를 알면 미련을 갖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내가 누린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잘 익어서, 죽음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랑 받았으니 행복하게 떠날 수 있다. 받은 사랑을 다 갚지 못하고 떠나게 됨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마음을 정리하니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에 감사한다. 열심히 살아준 나에게 고마웠고 나를 도와주고, 용기와 희망과 칭찬을 해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하고 형제자매에게 감사하고, 함께 살아 준 남편에게 감사하고 엄마라고 불러주고 사랑해준 딸과 아들에게도 고맙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한다. 안녕.

※ 필자이신 오문재 수필가는 충북수필문학회 회원으로 2018년 10월 13일 작고하셨습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소유와 영원한 사랑 / 오문재  (0) 2021.01.15
천마, 나를 찾아 날아오다 / 오문재  (0) 2021.01.14
초짜 할배 / 이용수  (0) 2021.01.13
토막 생각 / 박연구  (0) 2021.01.12
대전 발 영시 50분 / 유병근  (0) 2021.01.12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