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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를 거닐면서 깨닫는다. 사랑은 빼앗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놓아 주고, 지켜 주고, 비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개인 간의 사랑은 작은 것이요, 사회와 국가와 인간을 사랑함은 큰 것이다. 진향은 백석을 사랑하고 백석을 극복하고 승화시켜, 무소유의 이론을 완성한 최초의 사람이 아니던가. 아무나 실천할 수 없는 숭고하고 장엄한 인간 정신이다.

삼각산이 한 여인을 품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길상화 보살의 숨결과 사랑을 느낀다. 아니 삼각산이 여인을 품은 것이 아니다. 여인이 열두 폭 치마로 삼각산을 휘감아 품었다. 한 순간의 진리가 천년까지 갈까? 아니면 만년까지 갈까? 아마도 지구가 존재하는 한 영원하리라 믿는다.

진향은 무소유 어느 대목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기에 인간사에 길이 남을 비우고, 떠나기를 실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큰 산인 길상화 보살. 길상사를 탄생시킨 법정과 무소유와 길상화 보살의 삼각관계는 과거 어느 지점에서 씨앗으로 분리 되었다가,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났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다음 인연이라는 열매를 통해 결실을 보게 되었으리라.

삼각산에서 분 향기 풍기며 진향으로 세월을 농락하다 무소유를 만났다. 법정이라는 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빈손으로 훨훨 떠나니 대장부의 기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과거라는 허울을 훌훌 벗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한 사람.

맑고 향기로운 인향을 세계만방으로 날리니 님의 향기는 영원하리라. 삼각산보다 더 큰 산이기에 삼각산을 품은 여인이라 명명하고 싶다. 기도하는 사람들과 가족, 연인들이 그 분들을 추억하며 걷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곳을 산책하며 백석도 부러웠고, 사람과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길상화 보살도 부러웠다. 비움의 정신을 아낌없이 주고 떠난 법정스님과 길상화 보살. 두 분의 유골이 뿌려진 이 터전에서 우리가 배우고 실행해야 할 무언가를 깨닫는다.

옛 말씀에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속담을 곱씹어 본다. 한 남자를 지극히 사랑했다 자유를 주고, 인간세상에서 도(道)를 닦다 한 줄 말씀에 깨달음을 얻고, 무소유의 정신세계에 푹 빠졌으리라.

비움의 산봉우리에 도달한 아름다운 마음씨는 성현 같은 경지가 아니면 행할 수 없는 지극히 높은 경지이리라. 평범한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생로병사의 정해진 길이지만, 법정과 길상화 두 분의 무소유 길은 아름답게 빛나고 빛나리라.

법정 스님은 무소유 이론을 정립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신 분이라면, 길상화 보살은 무소유를 실행한 단 한사람일 것이라는 결론이다. 어느 분이 더 훌륭한가는 가릴 수 없는 노릇이다. 법정 스님이 있었기에 무소유의 원리가 세워졌고, 길상화 보살이 있었기에 무소유의 아름다움이 완성되었다. 두 분의 아름다움이 인향으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두 분을 가리켜 옥석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불가분의 원칙이 아닐까?

비우고 떠남은 죽을 자들이 행해야 하는 미덕이 아닐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예의가 아닐까? 아니면 살아 있을 때 죽음을 예비해야 할 산 자들의 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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