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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제2의 집 / 오문재

부흐고비 2021. 1. 15. 08:51

건강했던 젊은 시절에는 제2의 집이 나에게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노라니 변수가 생겼다. 싫고 좋고가 없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예전 대가족시대에는 웃어른께서 병들면 자식들이 봉양하고 병수발을 들었다. 그리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받들었다.

지금은 핵가족시대이고 가족들이 먹고 살아야 하니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건강한 가족들은 경제생활을 꼭 해야 한다. 삶을 살아야 하니까.

살다 보니 나도 병이 들었다. 집에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다 사정이 생겨 청주 시립 요양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요양병원으로 오니 마음은 착잡했지만 가족 모두가 사는 길이라 생각되어 결정을 했다. 청주 시립 요양병원으로 오니 의사 선생님, 간호사, 요양보호사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 내가 이곳으로 와서 가족들이 직장생활이나 생업에 전념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부모가 되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살아왔는데도 인생은 마음 먹은 대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 며칠간은 낯설고 적응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소리와 걱정을 해서 사실은 나도 요양병원이 두려웠다. 꼭 어린이집에 아이를 떼어 놓고 직장으로 가는 엄마를 보며 우는 아이의 심정 같다고 해야 할까? 내가 결정한 일인데도.

차츰 적응되겠지 하며 휠체어를 타고 요양병원을 둘러보니 환자들에게 좋은 조건, 쾌적한 환경이다. 병실 침대에서 밖이 훤히 보인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보이고 사계절의 변화도 보일 것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도 보인다. 변두리라서 공기도 좋다. 더 좋은 것은 집에서 가깝다는 점이다. 가족이 지척에 있다는 안도감도 마음에 편안함을 주었다.

병원에 종사하시는 의사 선생님들의 친절함과 자상함도 입원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간호사들이 밝은 얼굴로 가족처럼 대해 주는 태도가 좋다. 더구나 각 병실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들의 헌신적인 보살핌은 감동이다. 집에서 내 가족을 보살피는 것처럼 한다. 물론 교육을 받고 많은 경험이 있어 척척 박사들이 되었겠지만….

궂은일을 하는 이분들의 이른 아침의 일상은 전쟁을 치르는 병사들 같다. 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장단점이 보일 것이다. 나도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인지라 그때는 서로 소통의 방법을 모색하든지 조율을 하면 또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퇴직하면 나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이 일에 종사하려고 했었다. 겁도 없이.

그런데 보통 마음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짧은 시간을 지켜 본 요양보호사들의 일은 확고한 직업의식과 봉사정신이 함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무토막 같은 환자들의 늘어진 몸을 다루는 솜씨는 힘 좋은 남자들 같다. 하체를 쓸 수 없는 나는 무거운 쇳덩어리, 나무토막이다.

처음 며칠은 예민해져 온몸과 마음이 곤두서고 신경이 날카로워서 요양보호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짧은 소견으로 그분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런데도 나를 이해해 주려고 노력해서 고마웠다.

운동 삼아 휠체어를 타고 건물을 돌아다녀 보았다. 2009년 9월 남상우 청주시장 재직 시에 건축된 요양병원으로 시설이 좋다. 건물구조가 ㅁ자 형식과 유리로 지어졌는데 동서남북 어디를 다녀도 막힌 곳이 없고 탁 트여 마음속과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층층마다 ㅁ자 복도를 운동장 삼아 환자들이 운동을 한다. 복도를 돌아보니 학교 운동장만큼의 넓이가 될 것 같다. 눈, 비가 와도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도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다. 또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맞춤형의 물리치료로 환자들의 건강과 기분을 맞추어 주고 건강해지도록 최선을 다한다. 모든 직원들은 환자들에게 따뜻한 미소로 대해 주고 가족처럼 대하여 준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어도 마음과 느낌으로 알 수 있지 않는가. 첫 느낌이 끝까지 가지 않던가. 설사 첫 인상과 다르더라도 크게 차이는 없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다른 요양병원은 가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내가 느끼는 이곳은 제2의 집이다. 앞으로 더 겪어봐야 알겠지만 아직은 좋다. 이렇게 자랑해도 모자라지 않음은 내가 이곳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치료와 요양을 해서 두 다리로 걸어 나가는 기적을 체험할지 생을 마치게 될지는 신의 영역이라 나는 알 수가 없다.

이곳에서 가장 적응 안 되는 것은 저녁 일찍 불을 끄고 자야 되는 것이 고역이다. 집에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열 시, 열한 시, 열두 시에 잤었는데….

이제는 백세시대 아니 장수시대라서 집에서만 요양과 간병을 할 수가 없다. 가족들은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삶을 꾸려 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 중에서 장기적으로 병을 치료하거나 요양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요양병원에서의 생활도 고려해야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장수 시대에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령화 시대가 왔으니 국가차원에서도 국민의 질병에 맞추어 요양의료 보험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국민의료공단에서도 의료비만 징수할 것이 아니라 각 시, 도에 요양병원을 짓고 국민들에게 저렴하고 양질의 의료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어느 나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가 잘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남북한 상황이 그렇지 못하니 국민복지로 국가 예산을 많이 쓸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그리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이용할 때 병원에 들어가는 금액이 더 저렴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많은 혜택이 환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국가는 좋은 요양병원을 더 많이 지어 장수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저렴하고 양질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들을 배려해 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모든 국민들은 나라를 위해 각종 세금을 아낌없이 바쳤다. 그러므로 늙고 병들고 힘이 없을 때, 국가에 낸 세금은 당연히 국민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그래야만 독거노인들의 고독사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할 것이다.

현재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어려운 시절 이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치고 국가 발전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많다.

편안하게는 아니더라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국가차원에서 의무를 다해 주어야 도리에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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