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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정지용 시인

부흐고비 2021. 1. 18. 15:34

 












































  향수(鄕愁)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는 「조광문학」, 제65호(1927.3.)에 실렸다.
1927년이면 그의 나이 26세 때다.

 

 

유리창1 /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아갔구나!//

유리창2 / 정지용
내어다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앞 잣나무가 자꼬 커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히 가/ 유리를 입으로 쫏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섯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라ㅅ빛 누뤼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연정스레히/ 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마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현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는 고흔 화재가 오른다.//

바다9 / 정지용
바다는 뿔뿔이/ 달어 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었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루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굴르도록// 희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는 연닢인양 오므라들고.......펴고......//

비 / 정지용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장수산(長壽山)1 / 정지용
벌목정정(伐木丁丁)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 

 

삽사리 / 정지용

그날밤 그대의 밤을 지키든 삽사리 괴임즉도 하이 짙은 울 가시사립 굳이 닫히었거니 덧문이오 미닫이오 안의 또 촉불 고요히 돌아 환히 새우었거니 눈이 치로 싸힌 고삿길 인기척도 아니하였거니 무엇에 후젓허든 맘 못뇌히길래 그리 짖었드라니 어름알로 잔돌사이 뚫로라 죄죄대든 개올 물소리 긔여 들세라 큰봉을 돌아 둥그레 둥긋이 넘쳐오든 이윽달도 선뚯 나려 설세라 이저리 서대든것이러냐 삽사리 그리 굴음즉도 하이 내사 그대ㄹ새레 그대것엔들 다흘법도 하리 삽사리 짖다 이내 허울한 나릇 도사리고 그대 벗으신 곻은 신이마 위하며 자드니라.//

 

인동차(忍冬茶) / 정지용

노주인의 장벽(腸壁)에/ 무시로 인동(忍冬) 삼긴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무가 순돋아 파릇 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소리에 잠착 하다.// 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고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압천(鴨川) / 정지용
압천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임 보내기/ 목이 젖었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어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뿍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쌍 떳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마음/ 압천 십리벌에/ 해가 저물어… 저물어…//

이른봄 아침 / 정지용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여 들어와/ 참한 은시계로 자근자근 얻어맞은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러져,/ 수은방울처럼 동글 동글 나동그라져,/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쥐나 한마리 훔켜 잡을 듯이/ 미닫이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 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 새이로/ 빠알간 산새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듯./ 새새끼 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휘파람이라./ 새새끼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 저쪽으로 돌린 푸로우피일--/ 패랑이꽃 빛으로 볼그레 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깎어 세운 대리석 기둥인 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이글거리는/ 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받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띠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오노니,/ 새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말 / 정지용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즘잔도 하다 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편인 말아,/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이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백록담 / 정지용

1/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 박힌다. 바람이 차기도 함경도(咸鏡道)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팔월(八月) 한철엔 흩어진 성진(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산(山)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 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 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육천척(海拔六千?)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녀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山)길 백리(百里)를 돌아 서귀포(西歸浦)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매-움매-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여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濟州)회파람새 회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굴으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때 솨-솨-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측넌출 긔여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조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삭갓나물 대풀 석용(石茸)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高山植物)을 색이며 취(醉)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여 산맥우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壯嚴)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긔지 않는 백록담(白鹿潭) 푸른 물에 하눌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白鹿潭은)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백록담(白鹿潭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홍역 / 정지용

석탄 속에서 피여 나오는/ 태고연太古然히 아름다운 불을 둘러/ 12월 밤이 고요히 물러 앉다.// 유리도 빛나지 않고/ 창장窓帳도 깊이 나리운 대로 -/ 문에 열쇠가 끼인 대로-// 눈보라는 꿀벌떼처럼/ 닝닝거리고 설레는데,// 어느 마을에서는 홍역이 척촉처럼 난만하다.//



나비 / 정지용
시키지 않은 일이 서둘러 하고 싶기에 난로에 싱싱한 물푸레 갈어 지피고 등피燈皮 호 호 닦어 끼우어 심지 튀기니 불꽃이 새록 돋다 미리 떼고 걸고 보니 칼렌다 이튿날 날짜가 미리 붉다 이제 차츰밟고 넘을 다람쥐 등솔기같이 구부레 벋어나갈 연봉連峯산맥길 위에 아슬한 가을 하늘이여 초침 소리 유달리뚝닥거리는 낙엽 벗은 산장 밤 창유리까지에 구름이드뉘니 후 두 두 두 낙수 짓는 소리 크기 손바닥만한어인 나비가 따악 붙어 들여다 본다 가엾어라 열리지않는 창 주먹쥐어 징징 치니 날을 기식氣息도 없이네 벽이 도로혀 날개와 떤다 해발 오천척 우에 떠도는 한조각 비맞은 환상 호흡하노라 서툴리 붙어 있는 이 자재화自在畵 한폭은 활 활 불피여 담기여 있는 이상스런 계절이 몹시 부러웁다 날개가 찢여진 채 검은눈을 잔나비처럼 뜨지나 않을가 무섭어라 구름이 다시 유리에 바위처럼 부서지며 별도 휩쓰려 내려가 산아래 어늰 마을 우에 총총 하뇨 백화白樺 숲 회부옇게 어정거리는 절정 부유스름하기 황혼 같은 밤.//

 




정지용(鄭芝溶, 1902.5.15.~1950.9.25.) 시인
충북 옥천(沃川) 출생.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시-정지용문학관

정지용선생의 작품 안내 정지용선생의 시, 산문의저작권은 정지용선생의 유족에게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www.o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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