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야채트럭 아저씨 / 박완서

부흐고비 2021. 1. 29. 08:53

매일 아침 하던, 등산이라기보다는 산길 걷기 정도의 가벼운 산행을 첫눈이 온 후부터는 그만두었다. 산에 온 눈은 오래 간다. 내가 다시 산에 갈 수 있기까지는 두 달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걷기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지만 눈길에선 엉금엉금 긴다. 어머니가 눈길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치신 후 칠팔 년간이나 바깥 출입을 못하다 돌아가시고 나서 생긴 눈 공포증이다. 부족한 다리 운동은 볼일 보러 다닐 때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 타느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벌충할 수 있지만 흙을 밟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맨땅은 이 산골 마을에도 남아있지 않다. 대문밖 골목길까지 포장돼 있다. 그래서 아침마다 안마당을 몇바퀴 돌면서 해뜨기를 기다린다. 아차산에는 서울 사람들이 새해맞이 일출을 보러오는 명당자리가 정해져 있을 정도니까 그 품에 안긴 아치울도 동쪽을 향해 부챗살 모양으로 열려 있다. 겨울 마당은 황량하고 땅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그러나 걸어보면 그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씨와 뿌리들의 소요가 분명하게 느껴질 정도의 탄력을 지녔다. 오늘 아침에는 우리 마당에서 느긋하게 겨울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무들과 화초가 몇 가지나 되나 헤어보면서 걸어 다녔다. 놀랍게도 백 가지가 넘었다. 백 평도 안되는 마당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잔디밭을 빼면 나무나 화초가 차지할 수 있는 땅은 넉넉잡아도 삼십 평 미만일 것이다. 그 안에서 백 가지 이상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니. 물론 헤아려보는 사이에 부풀리고 싶은 욕심까지 생겨 제비꽃이나 할미꽃 구절초처럼 심은 바 없이 절로 번식하는 들꽃까지도 계산에 넣긴 했지만 그 다양한 종류가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던 것들이다. 이 나이에도 가슴이 울렁거릴 만한 놀랍고 아름다운 것들이 내 앞에 줄서 있다는 건 얼마나 큰 복인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고 하면 다들 채소를 심어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나도 첫해에는 열무하고 고추를 심었었다. 그러나 매일 하루 두 번씩 오는 채소 장수 아저씨가 단골이 되면서 채소 농사가 시들해졌고 작년부터는 아예 안 하게 되었다. 트럭에다 각종 채소와 과일을 싣고 다니는 순박하고 건강한 아저씨는 싱싱한 채소를 아주 싸게 판다. 멀리서 그 아저씨가 자기 트럭에 싣고 온 온갖 채소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뭐라도 좀 팔아줘야 할 것 같아서 마음보다 먼저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그를 기다렸다가 뭐라도 팔아 주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아저씨도 손이 크다. 너무 많이 줘서 ‘왜 이렇게 싸요?’ 소리가 절로 나올 때도 있다. 그러면 아저씨는 물건을 사면서 싸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웃는다. 내가 싸다는 건 딴 물가에 비해 그렇다는 소리지 얼마가 적당한 값인지 알고 하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트럭 아저씨는 다듬지 않은 채소를 넉넉하게 주기 때문에 그걸 손질하는 것도 한 일이다. 많이 주는 것 같아도 다듬어 놓고 나면 그게 그걸 거라고, 우리 식구들은 내 수고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뒤란으로 난 툇마루에 퍼더리고 앉아 흙 묻은 채소를 다듬거나 콩이나 마늘을 까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아니다. 뿌리째 뽑혀 흙까지 싱싱한 채소를 보면 채소가 아니라 푸성귀라고 불러주고 싶어진다. 손에 흙을 묻혀가며 푸성귀를 손질하노라면 같은 흙을 묻혔다는 걸로 그걸 씨 뿌리고 가꾼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끼게 될 뿐 아니라 흙에서 나서 자란 그 옛날의 시골 계집애와 현재의 나와의 지속성까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건 아주 기분 좋고 으쓱한 느낌이다. 어쩌다 슈퍼에서 깨끗이 손질해서 스티로폼용기에 담고 랩을 씌운 채소를 보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온 공산품 같지 푸성귀 같지가 않다.

다들 조금씩은 마당이 딸린 땅집 동네라 화초와 채소를 같이 가꾸는 집이 많다. 경제적인 이점은 미미하지만 농약을 안친 청정 채소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그것도 약간은 부럽지만 모든 채소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식을 아주 안 하고 살 수도 없는 세상이니 안전해야 얼마나 안전하겠는가. 하긴 주식으로부터 채소 과일 일체를 유기농법으로만 짓기로 계약재배해서 먹는 집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직은 특별한 계층 사람들 이야기고 나에게는 대다수 보통사람들이 먹고 사는 대로 먹고 사는 게 제일 속 편하고 합당한 삶일 듯 싶다. 무엇보다도 내 단골 트럭 아저씨에게는 불경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일요일은 꼬박꼬박 쉬지만 평일에는 하루도 장사를 거른 적이 없는 아저씨가 지난 여름 일주일 넘어 안 나타난 적이 있는데 소문에 의하면 해외여행을 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여비가 많이 드는 남미 어디라나. 그런 말을 퍼뜨린 이는 조금은 아니꼽다는 투로 말했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 풍요한 나라의 휴가철 그 아저씨야말로 마땅히 휴가를 즐길 자격이 있는, 많지 않은 어중이 떠중이 아닌 적격자가 아니었을까.

트럭 아저씨는 나를 쭈욱 할머니라 불렀는데 어느 날 새삼스럽게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작가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고 싶은 괴상한 버릇이 있는데 그에게 직업이 탄로 난 건 싫지가 않았다. 순박한 표정에 곧이곧대로 나타난 존경과 애정을 뉘라서 거부할 수 있겠는가. 내 책을 읽은 게 아니라 TV에 나온 걸 보았다고 했다. 책을 읽을 새가 있느냐고 했더니, “웬걸요, 신문 읽을 새도 없다”고 하면서 수줍은 듯 미안한 듯 어려서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읽고 외로움을 달래고 살아가면서 많은 힘을 얻은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그의 글쓰는 사람에 대한 존경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영화화된 걸 비디오로 본 적이 있어서 그럭저럭 맞장구를 칠 수가 있었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선생님도 ‘저 하늘에도 슬픔이’ 같은 걸작을 쓰시길 바란다는 당부 겸 덕담까지 했다. 어렸을 적에 읽은 그 한 권의 책으로 험하고 고단한 일로 일관해온 중년 사내의 얼굴이 그렇게 부드럽고 늠름하게 빛날 수 있는 거라면 그 책은 걸작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그의 덕담을 고맙게 간직하기로 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 장석주  (0) 2021.01.29
밥그릇 / 이종화  (0) 2021.01.29
선소리 / 정영숙  (0) 2021.01.29
월부 도둑 / 이응백  (0) 2021.01.28
잠박 / 이양선  (0) 2021.01.28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