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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소멸에 관하여 / 권민정

부흐고비 2021. 2. 21. 08:36

어쩌면 지금 내 나이가 그런 나이인지 모른다. 딸이었다가 엄마, 할머니까지 된 지금 몸은 아내, 엄마, 할머니 쪽에 있으나 마음은 내 어머니의 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출근하듯이 어머니에게 가자고 진즉 마음을 먹었으나 일주일 만에, 그것도 주무실 시간이 다 되어가는 이 밤중에 겨우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갔다.

몇 달 사이, 어머니의 육체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깜빡거리고 있다. 신체의 모든 기능이 다 떨어졌는데 그중에서도 인지능력이 더 떨어졌다. 어머니가 뭐라고 혼잣말을 하신다. 입 가까이 귀를 대고 들어본다. 어머니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어린 자식을 찾고 계신다.

“얘들이 왜 이렇게 늦지?”

“엄마, 엄마 딸 여기 있어요. 집에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를 보면 반가워서 활짝 웃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웃지도 않고 시선을 거두어 버린다. 어머니는 딸을 옆에 두고도 딸을 찾고 계신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나는 너무 서운해 눈시울이 더워진다. 어머니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너무 낯설어 심연 깊은 곳으로 시선을 거두신 것 같다.

나는 어머니의 양말을 벗기고 얼음처럼 찬 발과 장작개비처럼 마른 다리를 손으로 주무르고 비빈다. 기분이 좋아진 어머니는 스르르 눈을 감는다. 침대 곁에서 깊이 잠들 때까지 손을 꼭 잡고 있으면 편안한 얼굴이 된다. 잠든 어머니의 얼굴을 본다. 희고 연한 피부라 더 그런지 검버섯이 유난히 많아 보이고 주름살투성이가 되었다. 어머니의 노년이 참 힘들다.

곱던 어머니, 두 발로 걷던 어머니, 나를 보면 좋아서 웃던 어머니, 상냥하고 인자했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 버렸다. 어머니 아파트에 가서 밤늦게까지 놀다 돌아올 때면 차를 타는 곳까지 따라 나오시며 “이 어두운 밤길을 어떻게 너 혼자 보내니?” 하고 오십 넘은 딸의 손을 꼭 잡으시고 놓지 않으시던 어머니는 사라졌다. 이제는 영영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런 시간은 흘러가버렸다. 모래알이 우리들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듯이 모든 기능이 서서히 소멸되어 가고 있는 어머니를 보는 일은 처연하다.

텔레비전에서 별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본 적이 있다. 별도 생로병사를 겪는다고 한다. 오리온자리에 있는 한 별이 수명을 다해 죽어 가는데 이 별이 죽을 때는 굉장한 빛을 발하며 찬란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찬란한 소멸을 말하고 있었다.

소멸에 대해 생각한다. 동백꽃처럼 절정에서 추락하는 것은 아름답긴 해도 너무 애석한 것 같고, 목련처럼 꽃잎 하나하나 생로병사를 끝까지 다 치러내는 것은 너무 처참해서 가엾고, 매화나 벚꽃처럼 꽃잎이 낱낱이 바람에 날려 꽃보라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보기 좋았다. 꽃보라처럼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138억 년 전 실재했던 빅뱅을 전파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망원경을 통해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싶어 하던 우주 탄생의 비밀을 하나씩 밝히고 있다. 138억 년 전에 사라졌던 현상을 지금 이 지구에서 망원경을 통해 본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 본다. 흘러 가버린 세계, 시간의 진행과 더불어 파괴되고 소멸된 것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망원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면 그 기구를 통해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들을 수 있을 텐데.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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