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난(蘭)과 수석(水石) / 박두진

부흐고비 2021. 3. 5. 12:34

난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었다. 난을 그만두고 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난과 돌을 다 좋아하게 되었다.

난은 난대로 좋고 돌은 돌대로 좋아서 각각 좋아하게 된 것이지만 난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극히 자연스러운 일, 으레 그래야 할 일,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물론 꼭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법은 없겠지만 난을 좋아하다가 돌까지를, 그리고 그 난과 돌을 다 같이 좋아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로서는 다시없는 청복(淸福), 다시없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난을 난대로만, 돌을 돌대로만 아는 것으로 그쳤다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을 알았기 때문에 돌을 더 알 것 같고 돌을 앎으로써 난을 더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다. 이 자연의 정수이자 놀라운 순수, 한 뿌리 풀로서의 난과 한 덩이 돌로서의 수석은 서로서로 완전히 이질, 대조, 대척(對蹠)적이면서 그 극(極), 고고(孤高)와 초연(超然)에서 근원은 하나에 있다. 난이 정(情)의 극치라면 수석은 의(意)의 극치, 난이 부드러우면서 의연하다면 수석은 강(剛)하면서 지혜를 감추고 있다. 아니 난의 고고와 어질음에 대해서 수석은 불기(不羈)이면서 차라리 성자(聖者)롭다. 난이 청초(淸楚), 고아(高雅), 순미(純美)한 품격이라면 수석은 뇌뢰낙락(磊磊落落) 고(古)하고, 괴(怪)하면서도 관용자수(寬容自守)한다. 기(寄)하되 가볍지 않고 , 항(抗)하되 오(傲)하지 않고, 하나의 완벽한 개성으로 한 개 작은 수석이 능히 기세로도 아아(峨峨)한 태산준령(泰山峻嶺)이 필적한다. 수수투루(授수透淚), 누천만만년(屢天萬萬年)의 시련과 열력(閱歷)이, 그 대자연의 오묘하고 주도한 조형적 배려가 하나의 응고된 결정(結晶), 멀리 인지를 초원한 예술의 일품(逸品)으로 우리 앞에 있는다.

수석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그 수석을 찾아 나서고 찾고 발견하고 캐내는 과정으로 달리게 한다. 태산준령을 그 봉우리와 능선을 걸어서 넘고 경개(景槪)와 정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맑은 물 강변 역력한 돌밭을 곡괭이를 들고 헤메며 바로 태산준령의 또 하나의 응결체(凝結體), 변화무쌍하고 정교, 웅혼(雄渾)하기 이를 데 없는 소자연의 경이를 탐색 발굴해내는 것이다. 형태와 규모, 질과 색에서부터 경(景) 상형(象形) 상징(象徵) 추상(抽象)으로 가려보면서, 수석을 캐는 사람 자신이 하나의 조형 예술가의 특유하고 개성적인 심미적 자질과 능력을 구사하면서 무사(無邪)한 동심의 세계로까지 몰입한다. 단양, 울산, 옥천, 점촌, 양수, 덕소에 이르는 북한강, 남한강, 금강, 오십천 어디에나 수석은 그 만고의 신비와 미를 간직한 채 숨어 있다.

여기에는 고괴(古怪)해서 그 앞에 미전이 무릎을 꿇고, 하배(下拜)했다는 옛 기위(寄威)한 돌을 방불케 하는 돌을 만날수 있는가 하면, 아주 세련된 초현대적인 조각으로 저 에밀 지리오리나 앙리 아맏 잔 아르푸나 아몽그롱의 작품을 갖다 놓은 것 같은 순 칠오석(柒烏石) 추상작품을 캐어낼 수도 있다. 대자연의 비장의 작품은 그 찾아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또 실지로 드러나 있다.

난이나 수석을 사랑함은 다 속기(俗氣)를 벗어나 초연한 경지에 다다르는 하나의 길일 텐데 요즈음 나는 너무 수석에 마음이 이끌려 도리어 속기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나 아닌가 스스로 경계하며 있다.

 




박두진(1916~1998) : 경기도 안성 출신

1939년 <문장>지를 통해 등단.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3인 합동시집 <청록집>을 간행, 청록파 시인으로 불려졌다.

<해>을 비롯해 <사도행전>, <수석열전> 등의 개인 시집과

<시와 사랑>, <한국현대시론> 등 시론집들이 있다.

 

 

 

 

박두진문학관

 

www.anseong.go.kr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영이 / 피천득  (0) 2021.03.08
주변 정리 / 성은숙  (0) 2021.03.05
나의 등단 이야기 / 이정림  (0) 2021.03.05
목향木香 / 정목일  (0) 2021.03.05
감자탕 집에서의 회상 / 한기홍  (0) 2021.03.04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