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면도사 아가씨 / 박재식

부흐고비 2021. 3. 20. 17:53

그 면도사 아가씨는 좀 수다스러웠다. 단골로 다니는 이발관이 어디냐, 면도를 해 주는 아가씨의 솜씨가 어떻더냐, 되도록 면도사도 단골로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수염의 결을 잘 알아서 밀기 때문에 피부에 무리가 안 간다는 등의 얘기를 간단없이 소곤거렸다.

누구나가 다 그럴 테지만 이발하는 시간, 특히 의자에 길게 누워서 면도를 하고 있는 동안은 느긋하게 오수午睡를 즐길 수 있는 십상의 기회가 된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도 하루의 행복을 찾으려면 이발을 하라고 했다던가. 그런데 이 아가씨는 그 모처럼의 행복을 부질없는 수작으로 박탈하려 드는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감고 아가씨의 요설饒舌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따지고 보면 면도하는 동안은 휴식을 누릴 수 있는 느긋한 시간인 반면에 항상 불안감이 가위 누르는 절박한 시간의 연속이기도 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미지의 면도사에 온통 생명을 내어 맡기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할까. 나는 예리한 면도날이 턱 밑을 흘러 목 줄기를 문지르고 지날 때마다 일본 작가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씨의 콩트 <면도칼>을 회상하면서 전율을 느끼는 버릇이 있다.

감기 기운으로 몸이 찌부드한 이발사는 면도를 하다가 실수 끝에 손님 얼굴에 약간의 상처를 낸다. 문득 신경질이 돋친 그는 흡사 고장 난 장난감을 부숴버리는 성난 아이처럼 면도칼로 손님의 급소를 찔러버린다.

콩트의 줄거리를 좇아 그 섬뜩한 장면을 상상하면 쾌적하게 몸을 받쳐주고 있는 의자가 갑자기 바늘방석으로 변하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 면도사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다면? 나의 얼굴이 불구대천지 원수놈의 얼굴을 닮았거나 혹은 잠재하고 있던 변태적인 호기심이 순간적인 살의로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피해망상 속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무력하게 견뎌내자면 흡사 내가 도마 위에 얹혀 있는 물고기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망상과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면도하는 동안에 잠들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치 큰 수술을 받는 동안의 마취와 같은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나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가는 그 능란한 면도 솜씨에 장단이라도 곁들이듯이 쉴 새 없이 얘기를 소락소락 귓속에 불어넣는 것이다.

“손님 중에는 모근까지 깊게 파내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있는데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피부를 상하게 되거든요. 나이가 드실수록 피부가 약해지니까 자주 면도를 하시는 것도 좋지가 않아요. 집에서 면도를 하실 때도 모근을 거슬러서 밀지 마시고, 매끈하게 깎이지 않더라도 그냥 결을 따라 위에서부터 밀도록 하세요. 선생님도 이젠 피부를 잘 보호하셔야 할 나이가 되신 것 같아요.”

나는 슬쩍 눈을 뜨고 아가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방금 들려준 말에 와 닿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눈꼬리에 잔주름이 잡힌 약간 혼기를 넘긴 듯한 나이의 아가씨였다. 입술에 루즈가 퍼렇게 바랜 값싼 화장을 한 조금 야하게 생긴 얼굴이었으나 부드럽게 내려뜬 눈매가 자상한 마음씨를 말해 주는 듯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느닷없이 ‘면도와 인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솜씨나 나이로 보아 10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아가씨의 직업적 편력을 생각하며 느낀 감상이 아니다. 그 아가씨가 띄운 말에서 새삼스럽게 나는 나의 연령과 인생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숱한 면도를 하고 나의 인생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야릇한 감개가 가슴속에 번졌다. 실상 우리는 밥을 먹으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면도를 하고 산다.

나의 경우 20대에는 이틀에 한 번 정도, 30을 넘으면서는 거의 매일같이 면도를 하고 지냈으니 그 횟수와 깎아서 버린 수염의 길이를 따지자면 엄청난 것이 된다.

수염은 남성에 있어 성년의 표징이다. 내가 처음으로 코밑과 아래턱 언저리에서 거뭇거뭇한 수염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망조罔措함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어른이 된다는 두려움과 이제 어린시절과도 작별해야 한다는 아쉬움으로 나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이 서글펐다. 나는 그 수염을 간단없이 깎아내면서 성년기와 장년기를 지나 초로에 접어든 것이다. 그동안 면도로 인해 매일같이 거울을 대하여 왔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서 나는 주름져 가는 나의 인생을 목도해 온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기를 살아온 나의 인생이 한갓 얼굴의 배설물을 처리한 일과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이제는 소모되는 인생을 살갗으로 느끼게 하는 괴로운 작업으로 변한 것이다.

나의 가슴에는 조용한 슬픔이 피어올랐다. 처음으로 수염을 발견했을 때 맛본 감정이 나의 인생에 비낀 애잔한 꽃그늘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면 지금 나의 가슴에 미만하는 슬픔은 황혼에 들어서는 인생의 쓸쓸한 그림자와 같은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제가 너무 지껄여서 잠을 못 주무셨죠?”

면도를 끝낸 아가씨는 얼굴에 크림을 문질러주면서 짓궂게 웃는 눈치였다.

“면도를 할 때 주무시면 곤란해요. 잠버릇 나쁜 손님의 얼굴을 벤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가 아마 십 년 감수는 했을 거예요.”

티 없이 배시시 웃는 아가씨에게서 나는 뭔지 모를 따스한 정을 느꼈다.

그리고는 잠들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잠시의 휴식보다 더 길고 값진 인생의 휴식을 나는 이 아가씨로 하여 푸근히 누렸기 때문이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더 행복할까? / 반숙현  (0) 2021.03.22
중섭(李仲燮)씨와의 하루 / 박재식  (0) 2021.03.20
새벽 종소리 / 박재식  (0) 2021.03.20
구두 / 조일희  (0) 2021.03.19
<와> <과> / 서순옥  (0) 2021.03.19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