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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누가 더 행복할까? / 반숙현

부흐고비 2021. 3. 22. 08:32

오랜만에 비 그친 화단은 충분히 물기 먹은 꽃들이 오랜만에 보는 햇살 아래 기지개를 펴고 있다.

알록달록 자잘하니 서로 키재 듯 서 있는 다알리아는 참 귀엽다. 올봄에 사다 심은 알뿌리가 행여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곱게 자라 꽃송이는 작지만 아담스리 피어준 것이 참 고맙기만하다.

다알리아 꽃 뒤로 조선거미 한 마리가 한창 집짓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 비로 이쁘게 엮어 짜놓은 거미줄이 망가졌는지 이쪽저쪽 다니면서 꽁무니의 실을 뽑아가며 열심히 집을 짓는다.

설계도도 없이 어찌 살집을 저리 잘 짓는지 미물이지만 존경심이 드는게 "나는 저 거미만도 못한 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거미란 놈은 거미줄이 망가지면 그 즉시 보수공사를 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을 하는데 조그만 일을 하는데도 번민하는 나는 그런 거미의 저돌성이 부럽기까지 하다.

며칠 동안 내 뜰엔 참새들을 볼수 없었다.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으며 또 무얼로 배를 채울지 걱정이 됐는데, 혹여 사람도 굶는 지금 참새걱정하는 아줌마가 참 한심하단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버리는 밥찌꺼기 모았다 새 먹이로 주는 일이 뭐 그리 나쁜 일은 아닐것 같아서 여지껏 해온 일인데...

오늘은 오랜만에 해가 나자 참새들이 놀려와선 앞집 스레트 지붕에 앉아있다. 난 얼른 냉동실에 모아두었던 밥알들을 물에 담가 녹여선 채반에 받쳐선 뜰로 나갔다.

밥알을 둥그렇게 주먹밥으로 만들어서 지붕으로 던졌다. 참새들은 놀라서 날아갔지만 조금만 있으면 다시 모여 들여 맛나게 아침밥을 먹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뒤돌아서 마루로 올라서기 무섭게 한 무리의 참새들이 밥알로 몰려들어 사이좋은 식구처럼 둘러앉아 밥을 쪼아 먹는다 .밥알을 입에 문 참새들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쥐 죽은 듯이 보고 있다가, 나도 먹다 남긴 아침밥을 다시 먹었다.

참새들과 같이 아침밥을 먹는다. 참새는 맨밥을 잘도 먹는데, 나는 먹을 만한 찬이 없다 투덜거린다. 참새는 즐겁게 노래하며 먹는데 나는 툴툴대며 입맛 없다 한다.

참새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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