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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텃밭에서 글밭으로 / 조윤수

부흐고비 2021. 3. 22. 08:36

언 땅이 녹자 묵정밭을 갈기로 했다. 운동 삼아 우리는 한 열흘 동안이나 돌을 골라냈다. 큰돌은 밭두둑에 보기 좋게 쌓아두었다. 잔돌까지 골라내고 보니 흙이 모자랄 것 같았다. 잔디밭 깔 때 쓰는 마사토를 섞으니 어느 정도 보드라운 밭이 되었다. 거름도 적당히 넣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야 처음 해본 호미질이었다. 몹시 힘들었지만 신나는 일이었다. 이래서 노동이 신성하다는 것인가.

어떤 모양으로 꾸밀까 생각했다. 고추밭을 세 이랑쯤 만들면 100모는 심을 수 있겠다. 고추는 5월 초쯤 심어야 하니 우선은 비워둔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채를 심을 곳을 중점적으로 만들었다. 상추, 쑥갓, 뿌리와 잎에 영양이 많은 비트, 칼슘이 많은 아욱과 케일도 심어야 한다. 밭 가장자리로는 옥수수를, 일조량을 생각하여 거리를 두고 심는다. 토마토는 큰 나무처럼 자라니 넓게 자리를 해준다. 거름도 멀리 해주어 뿌리가 튼튼히 뻗어나가게 한다. 호박은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채소다. 덩굴이 다른 채소를 해방하지 않게 비탈진 한쪽에 미리 구덩이를 파놓았다.

텃밭을 가꾸는 일을 할 때는 여름 하루해도 짧기만 했었다. 파종을 한 다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새싹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호박씨를 묻어 놓고는 궁금해서 흙을 살며시 들쳐보기도 했었다. 이른 아침 새들이 창을 두드리면 눈을 비비면서 먼저 밭으로 가본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할 때는 자연은 더 이상 예찬의 대상이 아니었다. 자연의 일부인 나 자신도 흙 자체가 되어야 했다. 해거름 때가 되고 둥지에 모여든 새들의 재잘거림이 잠잠해질 때야 호미를 든 채 밭둑에 주저앉아 반딧불이를 기다리며 앞산을 넋 놓고 쳐다보았다. 모기가 손등을 꼬집어야 집안으로 들어왔다. 허겁지겁 라면으로 저녁을 때울 때도 있었다. 그런 때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나”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였다.

손목과 발목에 힘이 없어지고 아파트 생활을 하는 요즈음도 이른봄이 되면 저자거리에 나오는 모종을 보면 괜히 마음이 바빠질 때가 있다. 직접 가꾸어 먹는 신선한 맛과 이웃과 나눠먹던 즐거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까닭이다.

우연찮게 발을 들여놓은 평생교육원 수필반이다. 흙과 함께 낙원촌 운동에 참여했던 15 년의 기간이 사치스런 관념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실학(實學)이었다면, 다시 하게되는 글공부는 새로운 관념으로 세상을 보는 공부가 되는 셈인지도 모른다. 천연농법을 하기 위해 오염된 땅을 십 년 동안이나 갈아엎고 새 땅을 일구었던 새 농민들처럼 오염된 내 관념의 때를 벗는 신귀거래사(新歸去來辭)였는지도 몰랐다.

다시 학생이 되는 기분은 신선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의 자세가 상기되었다. 첫째는 학교에 결석하지 않고, 둘째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며, 숙제를 잘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학교지만 옛날 매일 학교에 다닐 때만큼이나 바쁜 것 같았다. 결석하지 않고 교수님 말씀대로 해보고, 숙제도 꼭 꼭 하다보니 일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공부하는 틀이 잡히는 것 같다. 수 없이 수필 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강의를 듣고 배웠지만. 수필이 어떤 글인가를 써 보라면 난 도저히 한 편의 수필로 쓸 수가 없다. 좋은 수필의 조건은 작물들의 생태를 익히는 것만큼 까다로웠다. 다만 지금까지 공부해본 요량으로는 내가 체험해보았던 텃밭 가꾸기가 떠오를 뿐이다.

수필 쓰기도 처음에 땅을 일구고 흙을 고르면서 밭을 만들 듯이 마음 바탕을 준비해야 한다. 부드럽고 영양이 좋은 밭이 될 때까지 사색의 과정이 필요하리라. 바른 말을 고르는 것과 문장을 만드는 기본부터 밭의 돌을 고르듯 해야 하는 것 같다. 밭고랑을 만들 듯 단락도 구분한다. 고른 흙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는 소재를 고르는 일이며,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먹거리가 생산되듯 주제를 살려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랫동안 주제에 맞는 소재와 전체의 조화를 생각하여 어떻게 구성해갈 것인가를 마땅히 깊게 천착해야 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하여 크고 작은 식물 배치를 하듯 소재를 적절히 안배해야 하는 것 같다. 밭 가운데 도라지를 심었더니 해마다 청초한 꽃이 피고 몇 년 후에는 튼실한 뿌리까지 얻을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필요 없는 잡초도 뽑아준다. 채소의 곁가지와 누렇게 변색되는 떡잎도 잘라내야 하리라. 여백을 살리기 위한 배경도 있어야 한다. 밭 가장자리에 심은 꽃 잔디와 도라지 꽃 무리가 돌담의 능소화와 어울려서 멋진 풍경이 되었던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이나 말처럼 잘 되지 않는 것은 텃밭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때와 마찬가지다. 밭이랑의 트리밍까지 면도한 남정네의 뒷머리 같이 깔끔한 모습으로 한 번에 완성해내지 못한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나 싱그러운 채소와 열매들을 수확 할 때는 그 어떤 보석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맛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대로 해 가는 즐거움과 보람을 누렸다.

밭에 다닐 때와 같이 내 주변은 여기저기 읽을거리며 강의자료와 과제물 등이 손질하지 않은 채소들처럼 쌓여져 간다. 땅을 일구는 일이 정진의 고통을 동반한 땀의 대가 없이 안 되었듯이 글 밭 가꾸기도 여간 힘든 과정이 아님을 날이 갈수록 절감한다. 노년기로 치면 청춘에 해당되는 나이라지만 아직 미숙한 솜씨에다 체력과 시력도 딸린다. 생활의 여적, 짜투리 시간을 잘 살려서 쓰는 묘술이 요구된다. 글을 쓰는 고통은 원석을 깎고 다듬어 보석을 만드는 고독한 연금술사 같다. 오지(奧地)에서부터 새 땅을 일구는 농부 같기도 하다.

“보석 같은 문체와 오묘한 깨달음이 절묘하게 융합됐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수필이 탄생한다. 장인의 솜씨, 작가의 에스프리, 구성의 기교는 영원한 과제라 하겠다.” 올 해 제 8회 신곡문학 대상을 수상하신 원로 수필가이신 김규련 님의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수필을 어떻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필가의 인격과 인생이 수필의 바탕이란 말씀은 정곡을 찌르는 말씀 같았다.

엉성하기만 한 내 글 밭에 심은 수필 나무 묘목에 새 싹이 텄다. 반가움과 기쁨보다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 하는 책임감이 앞선다. 수필이란 영원한 과제가 봄 날 아지랑이처럼 저 멀리서 가물거리는 것 같다. 텃밭의 작물이 사람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라듯 매일 잠깐씩이라도 글 밭을 산책해볼 일이다. 빈 마음에 소망하나를 담고 언제나 시작하는 기분으로…. 내가심은 나의 수필묘목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싹이여, 아름다운 모양을 뽐내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언젠가 누구라도 너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것이 너의 진짜 아름다움이 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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