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식 시인

 

그때는 아팠지 / 문현식

셋이 앉아서/ 돌아가며/ 웃긴 얘기를/ 하나씩 하기로 했다// 나는 친구와 한 자전거로/ 내리막길 달리다가/ 자갈밭에 굴러/ 피투성이가 되었던 일을 말했다// 유진이는 계단에서 아래로 날아 떨어져/ 턱이 퍼렇게 멍들어/ 수염 난 어른처럼/ 얼굴이 변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재민이는/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그때 다친 발가락이/ 비가 오는 날이면 간지럽다고 했다// 우리는 웃긴 얘기를 하기로 했는데/ 아팠던 얘기를 하며 웃었다//

팝콘 교실 / 문현식

커다란 팝콘 기예 안에/ 옥수수 알갱이 서른 개가/ 노릇노릇 익으면서/ 턱턱 튄다.// 알갱이들아/ 계속 튀어라./ 멈추면 선생님이 냠냠/ 다 먹어 버릴지도 몰라.//

태풍 축구 / 문현식

유리창을 깨고 지붕을 날려 보낸다는/ 슈퍼 울트라급 초강력 태풍이 오면/ 운동장에 가서 우리 태풍 축구 하자.// 태풍이 등을 떠밀면 씽씽 달려 나가/ 축구공을 뻥 차서 태풍에 태워/ 그물 찢어지는 강슛 때리고 오자.//

학교 심장 / 문현식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 학교를 통째로 얼렸다.// 쌓인 눈은 그대로/ 운동장에 얼어붙었다.// 흔들리던 그네까지/ 공중에서 얼어붙은 날.// 빨간 두 볼 내밀고/ 하얀 운동장 가로지르는 한 아이는// 콩콩 콩콩 콩콩 콩콩/ 콩콩 콩콩 콩콩 콩콩// 학교의 심장.//

까치 / 문현식

하늘과 땅이/ 하얗게 맞닿은 아침./ 빙그르 날다가 앉는/ 작은 점 하나.// 오늘은/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눈 덮인 마을의/ 중심이 된다.//

형아와 나 / 문현식

형아는 6학년 졸업생/ 나는 1학년 입학생// 형아가 쓰는 일기는 비밀일기/ 내가 쓰는 일기는 그림일기// 형아가 먹는 약은 알약/ 내가 먹는 약은 물약// 형아가 잘하는 것은 공부/ 내가 잘 안 하는 것도 공부// 형아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

시험공부 / 문현식

다섯 문제 풀었을까/ 의자가 살살 간질이네/ 눈앞에서 글자들이 춤추네/ 어서 누우라고 침대가 말을 하네/ 고개를 점점 숙이네/ 눈이 점점 감기네//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선생님의 목소리가 따뜻하네/ 우리 아들, 건강하게만 자라렴/ 엄마 얼굴이 미소 짓네/ 마음 착하면 된 거야/ 누나가 머리를 쓰다듬네// 아직 환한 저녁/ 마음 편하게 자리에 눕네//

동그란 아침 / 문현식

네모난 정문을 지나/ 네모난 교실로 갑니다.// 아무도 없는 교실 문을 열고/ 네모난 책상에 가방을 걸고/ 네모난 책을 꺼내 사물함에 넣습니다.// 네모난 시계를 봅니다./ 영호는 언제 올까./ 책상에 걸터앉아 네모난 창문을 바라보며/ 가만히 기다립니다.// 저기/ 영호가 보입니다./ 멀리서 영호가 창문 쪽으로/ 신발주머니 빙빙 돌립니다.// 오늘 처음/ 동그란 아침입니다.//

학교 옥상 / 문현식

옥상 철문이 열려 있어/ 몰래 올라갔다.// 몰랐다. 교실 위에/ 이렇게 파란 하늘이 있었는지.//

비 오는 아침 / 신현식

봄날 아침/ 창밖에 비가 소리 없이 내립니다/ 운동장은 봄비에 푹 젖었습니다./ 회단에 노루귀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 비를 맞고 있습니다/ 창문까지 올라온 개나리가/ 오늘 아침에는 더 노랗게 보입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가만히 책을 읽습니다/ 선생님도 책을 읽습니다/ 비가 오는 학교/ 특별한 일은 없는데/ 참 조용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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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식 시인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2008년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가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춘천교대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과 함께 쓴 일기 모음집 『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를 냈습니다.

지금은 광주 하남교육지원청 장학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