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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김형오 시인

부흐고비 2021. 3. 26. 08:49

까치밥 / 김형오


열매
다 털리고
푸르던 살과 뼈
차근차근 내어주고

벼랑을 만날 적마다
출렁출렁 일어서던 강

뱃속 껄렁껄렁한
문자 속 다 지우고
서리 내린 이른 아침
눈 비비며 보네

가지마다 저 까만 젖꼭지
어머니 아 어머니!

 

어머니 / 김형오

그리 서둘러/ 돌아설 참이십니까// 삐진 발목 만져주시던/ 두 손 뒤로 접으시고/ 정녕 몰라라 하시렵니까// 핑계만 어여쁘게 펄럭이는/ 이놈은 아직 여기에 있고// 어머니 거기는/ 오늘따라 바람이 찹사온데// 거울 앞을 막 지나/ 홀로 흔들리시며 그리/ 하셔도 되는 겁니까// 어머니//

꽃을 다시보면 / 김형오

가지 하나에서/ 잎이 열리고 꽃불 진다는 게/ 사뭇 다른 말 같아/ 눈치 없이 물어보고 있습니다// 하루 밀치고 나서면/ 갈래 길 한쪽에 모개로 걸어/ 뒤태 기웃거리지 말라 하시던/ 어머님 말씀 깜박 잊고/ 대낮에 어둠같이 허덕입니다// 꽃을 다시 보면/ 저 많은 일들이 어찌 다/ 같은 가지에서 이루어지나요//

첫사랑 / 김형오

밤새/ 비가 퍼붓더라니// 앞 냇물이 불고/ 눈치 없이/ 나도 따라 불어/ 붕 떠가는 거// 그래서/ 곧 큰바다에/ 들게 되는 거// 한참 이 멀미를/ 어쩌면 좋아//

언덕을 오르다가 / 김형오

언덕// 히말라야/ 무턱대고 기어오르라/ 세워 놓은 게 아니다// 달마저 보름걸이 더듬어 뜨라고/ 길 될 만한 길목마다/ 눈비 뿌려 꽁꽁 얼려 놓았지/ 자꾸 미끄러져 내리더라도/ 나이아가라 서너 가닥/ 골짜기 어디쯤에서/ 홀로 부풀어 울지 말라고// 물 언덕/ 우습게 덤비지 말라고//

물보라 / 김형오

물이라면 물/ 알다가도 거 모르겠습디다// 저들끼리 앞 다투며 치받을 때는/ 버들치 따위 끼어들지 말라더니/ 새털구름 그림자 얼씬만 해도/ 시름시름 앓는 척 무너져// 그믐달 속눈썹에/ 크렁크렁 매달리며/ 어디라도 꼭 철벅대면서// 무르팍 여울여울 여물다/ 풀포기 밑동을 무릇/ 무름하게 적시며// 물보란들 여태/ 제 한길 속을/ 차마 알겠습니까//

판소리 세 마당 / 김형오

열예닐곱 제 때깔로/ 그넷줄에 속치마 얼비친다고/ 나서서 말리지 마셔요// 한 줄 빨강댕기 물들어/ 목에 와 휘감기는 메질 뒤에/ 거듭 사또님께서 나무라시면/ 두 무릎 꿇고 받아 주셔요// 버선코 지긋이 받치다 말고/ 님 앞에 우르르 넘어지며/ 덜 미쳐버릴 몸매로// 거짓말 하나 가만하게/ 쑥대머리 밤바람 탄다 해도/ 어둑어둑/ 밀어보셔요//

첫사랑 / 김형오

밤새/ 비가 퍼붓더라니// 앞 냇물이 불고/ 눈치없이/ 나도 따라 불어/ 붕 떠가는 거// 그래서/ 곧 큰바다에/ 들게 되는 거// 한참 이 멀미를/ 어쩌면 좋아//

겨울 묶다 / 김형오

섣달 그믐이다// 나무들 모두 제자리에서/ 웃통을 벗고/ 철철 매 맞다가/ 밤새 눈 이바지로// 어깨죽지 안쪽에 씨눈 감추고/ 버팀을 서로 배끼며// 한 겨울 묶어/ 하얐다//

좁쌀맨-최전승 교수 / 김형오

꼬불칠 줄 아는 사람들은/ 눈썹을 지그시 날리면서/ 허드렛물 쓰기를 돈 쓰듯 한/다지요/ 전승님이나 우리 같은 좁쌀과 쪼다들이/ 한 푼도 몇 쪼가리로 다지다 못해/ 좁게 쌀 한 됫박 맨입에 비비며/ 주머니 속에서 꾸물거릴 때마다/ 하루씩 사는 일이 헛도는 것 같아서/ 낯 굵어 숫제 쪼다 아니면/ 어느새 우리는 좁쌀맨이다//

해바라기 말 / 김형오

나라고 어찌/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겠어/ 여태 보채며 숨겨온 걸/ 오늘 저녁 불어 버리면/ 밤마다 내려와 소복소복 자라는/ 새끼별 다 놓치고/ 첫 새벽/ 샘물 길러오는 너의 옆모습/ 다시는 못 볼까봐/ 이러고 있는 거야/ 속엣말 하나 이름보다/ 못이룸들 더 키워야 해//

예순여섯 / 김형오

예순여섯/ 밥먹는 일만 배웠소//


 

 

김형오(金炯吾) 시인은
1943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서 자람.

순창농고, 성균관대학교와 美 아이오나 대학에서 배움
'시문학'으로 글마을에 올라와 '한국문인협회'와 '미주문인협회' 회원.
수상 : 한국한글학회회장상, 한국문학예술상
시집 : '하늘에 섬이 떠서'  ‘풀씨를 심는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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