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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침 식탁 / 김소경

부흐고비 2021. 3. 25. 08:52

한가하게 아침나절을 보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 했더니, 얼마 전 혼례를 올린 이웃의 새댁이었다. 혼사를 잘 치렀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오겠다는 말씨가 곱다. 시댁 어른의 뜻에 따라 온다는 것이겠지만 성품이 보이는 듯한 예절바른 말씨였다.

얼마 후, 대문을 들어선 새댁은 과일 바구니를 안고 있는데, 석류가 몇 개가 보였다. 귀한 열매라고 하였더니, 신혼 여행지에서 가져온 것이라면서 수줍게 웃는다. 혼사를 치르고 아직 남은 일이 있을 터인데, 내 집으로 새 사람을 보낸 그 댁 인품이 돋보였다.

새댁과 담소를 나누면서, 내게도 저런 때가 있었나 하고 회상이 되었는데, 새댁은 좋은 말을 해 달라고 한다. 주례사 말씀대로 살면 된다고 하였더니, 그 날은 그런 말을 귀담아들을 여유가 없었다면서 웃는다. 이제 먼 길을 같이 갈 동반자를 만난 것이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남편 아침밥을 거르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미운 짓을 하더라도 사는 동안은 그리하라는 내 말에, ‘그렇게 될까요?’ 하는 표정이다. 아침 식사는 건강을 지켜 주는 것이고, 그래야 행복한 가정이 된다는 말에 이내 수긍을 한다. 새댁의 방문은 내게 신선한 하루를 열어 주었다 할까. 새사람을 배웅하고 나서 나는 삼십여 년 전 우리 내외의 약혼 사진을 꺼내 보았다.

흑백 사진 속의 얼굴은 그저 행복에 겨워 있는 표정이다. 세월이 지나 지금의 나는, 철이 났다고 해야 할지 순수를 잃었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흑백 사진 속의 내 얼굴과 남편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내가 새댁에게 아침 식탁에 대해 알려준 것은 아내의 자리가 홈 닥터와 다름없다는 생각에서이다. 지금 사람들은 예전 같지 않아서, 식구가 때마다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아침 식사를 함께한다는 것은, 가족이 화합을 이루는 소중한 자리가 된다. 식탁에서의 대화는 하루를 열어 주는 창문 같은 것이라 할까. 내가 새댁에게 아침상에 대해 말한 것은, 하루의 시작을 잘 하며 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껏 그렇게 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다. 남편에게 아침밥을 거르게 한 적이 있는데, 어떤 일로 말다툼을 하고 나서였다.

지난 일이지만, 내가 그때 아침상을 차렸더라면 화해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때를 거르면서 티격태격해 봤자 여기까지 살아올 것을, 서로가 굶으면서까지 속을 끓일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새댁에게 한 말은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굶지는 말라는 것인데, 어차피 웃고만 살 수는 없는 남남의 만남에서, 서둘러 화해를 하면서 살라는 뜻이었다.

아침 식탁에 기울이는 정성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여유와 건강이 허락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제주도에 갔을 때 이중섭 기념관을 둘러보고 새삼스럽게 느낀 점이 있었다. 전해들은 얘기는 있었지만, 한 평 남짓 좁은 방과 딸린 부엌을 보는 순간, 고단하게 살다 간 육친의 거처를 보는 듯하였다. 비좁은 방에서는 살을 대고 정을 나눌 수가 있었겠지만, 그 부엌에서는 불을 지필 먹을거리가 없었다고 들었다. 피난 시절에 누구나 궁핍하게 지냈지만, 그런 속에서 배를 곯아가면서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일생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의 작품은, 예술 이전에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일깨워준다 할까.

이중섭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는 묵언을 들은 셈이다. 그곳을 들러 온 이후 식탁을 차릴 때면, 가난한 화가의 밥상을 떠올리게 된다.

이제는 그런 궁핍에서 벗어난 식탁 문화가 되었지만, 우리는 또 다른 걱정을 해야 한다.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만, 보기 좋게 생긴 것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온갖 유해 물질 속에서 식탁에 오르는 찬거리 하나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별 수 없이 주부는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성이 깃든 식탁은 가정에 행복을 지켜주는 시작이다.

남자나 여자나 요리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정서가 풍부한 사람이라고 본다. 이런 사람들이 차린 아침상을 받고 대문을 나서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는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갈 때면 조금 못생긴 것을 고른다. 되도록 공해가 없는 것을 찾는 까닭이다. 한 번은 생선을 고르면서 국산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주인의 말이 바다 속에서 이쪽으로와 잡히면 국산이고, 저쪽에서 잡히면 수입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맞는 말 같기 도 해서 할 말이 없었는데, 한 끼 밥상 차리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문호 투르게네프는 정갈한 식탁을 준비하고 있는 여인이 있다면, 자신의 재능과 바꾸겠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에서 가족이 모여 앉은 식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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