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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내 마음의 연鳶 / 현정희

부흐고비 2021. 3. 29. 09:10

오름에 오르면 연鳶을 날리고 싶어진다.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앉아 마음으로 방패연, 가오리연을 날린다. 가느다란 실에 매달린 연은 바람을 타고 ‘소요유逍遙遊’를 즐기며 창공을 날아오른다.

예전에 소년들은 추수가 끝나면 텅 빈 들에 나가 연을 날렸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의 모습은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어 무한한 꿈을 안겨준다.

아버지는 어린 남동생에게 방패연이나 가오리연을 만들어 주곤 했다. 내 동생은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연날리기에 성공한다. 희열감이 충만한 소년의 모습은 방패연의 오방색처럼 빛난다. 소년 시절의 연날리기는 바다 건너 저 너머의 세상을 꿈꾸게 했다. 나는 연날리기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환희에 가득 찬 모습으로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연을 보면, 내 마음도 미지의 세계로 날아올랐다.

연은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꿈이다. 선조들은 연날리기를 즐겼다. 농한기인 음력 12월 중순경부터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 밤에 ‘액막이 연날리기’를 하면서 끝낸다. 직사각형 모양의 방패연은 독특한 방구멍이 있다. 연에 방구멍을 냄으로써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메워주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강한 바람을 받아도 잘 견딘다. 연을 과학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 민속놀이를 즐긴 선인의 지혜가 놀랍다. 색상도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상징하는 오방색이다.

이젠 연날리기 풍경을 내 고향에서 볼 수 없지만, 경주·밀양·울산·의성 등 경상도 지방에서는 해마다 연날리기 행사를 열어 보존하고 있다. 방패연과 가오리연뿐만 아니라 창작 연을 날리며 새해 소원을 비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요즘은 왜인지 연날리기 풍경이 자꾸 떠오른다. 내 마음의 연을 날리는 상상을 해본다. 저절로 신명이 난다. 방패연·문수연·보현연·가오리연…. 순풍이 불어온다. 연아, 하늘 높이 날아올라라. 너와 나,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 되어 날아오른다. 우주여행을 하면서 풍요로운 기운을 마음껏 주유한다. 연은 마음이 우주에 닿았는지 유유자적하다.

나의 소망이 하나 더 생겼다. 훗날 손자 손녀가 태어나 자라면 들판에서 연을 날리며 꿈을 키워주고 싶다. 하지만 아이는 드론을 들고 나타나 고공 영상을 찍느라 여념이 없겠지. 연이 진화하여 탄생한 듯한 드론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다. 드론은 행사에서도 벌처럼 윙윙 날아다니면서 동영상도 찍고 단체 사진도 찍는다. 드론을 볼 때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의 모습이 연상된다. 연은 아득히 먼 곳을 동경하며 날아가 무한한 기쁨을 안겨준다. 아이에게 바람결을 타고 출렁이는 빛의 세계를 연으로 보여주고 싶다.

가정마다 가족끼리 서로 보이지 않는 연을 마음으로 날리고 있다. 자녀는 부모의 연이다. 그리운 사람은 보이지 않는 연줄로 연결되어 있기에 이심전심하는가 보다. 팔순을 넘긴 부모님은 마음으로 네 자녀 연줄을 꼭 붙들고 있는 듯하다. 두 아들과 두 딸을 향한 그리움의 주파수를 늘 보내며 지낸다. 내 마음에도 그리움이 전해온다. 그런 날은 고향으로 달려간다.

“마음에서 전송되는 파동은 가장 정교하고, 따라서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다.”라고 찰스 해낼Charles F. Haanel이 말했듯이, 사랑보다 더 높은 주파수가 세상에 또 있을까. 부모님은 노쇠하여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생명줄을 간신히 붙잡고 있다. 사랑의 눈물에 담긴 주파수는 내 마음에 고주파가 되어 흐른다.

나도 세 자녀 연줄을 마음으로 붙잡고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줄을 굵고 짧게 잡았다. 자녀가 점점 자라면서 줄을 가늘고 느슨하게 잡는다. 모진 바람을 잘 견디는 연처럼 제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이 의젓하다. 내면에 잠재한 무한한 힘을 믿고 긍정의 돛을 품고 살다 보면, 성공한 연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으리라.

“아들아, 딸아, 우주는 온갖 좋은 것을 주는 멋진 곳이란다. 따뜻한 미소는 기적을 이룬다. 고귀한 네 꿈을 적극 지지하마. 마음껏 꿈을 펼치면서 날다가 지치면 언제든지 돌아와 쉬어라.”

내 마음의 연은 멀리 날아가 세상 구경하기에 바쁘다. 먼 하늘을 날아다니는 연을 기특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내 품으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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